이틀 만에 U턴한 한동훈, 정녕 윤석열과 공멸할 톈가
‘위법 계엄’ 외치면서 정작 탄핵엔 반대…헌정 파괴 엄호하는 꼴 속속 드러나는 계엄의 불법성, 윤석열 탄핵 외엔 해법 없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정국이 급변에 급변을 거듭하고 있다. 국회는 오는 7일 오후 7시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 6당이 공동발의한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 대해 표결하기로 했다. 6개 정당이 모두 탄핵에 찬성하는 상황에서 8명 이상의 여권 의원만 가세하면 윤 대통령의 탄핵안은 가결되는 형국이다.
그런데 계엄 선포에 “국민과 함께 막겠다”며 친한계 의원 18명과 본회의에 참석하는 등 단호하게 맞섰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탄핵에 반대하고 나섰다. 곧 정리될 듯하던 정국이 다시 혼미해지면서 현직 대통령의 무모한 헌정 질서 중단 시도에 대한 단죄가 더뎌질 상황에 놓였다.
한 대표는 5일 최고위원회의 후 “당 대표로서 이번 탄핵은 혼란으로 인한 국민과 지지자 피해를 막기 위해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이 의원총회에서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한 것을 추인한 것이다. 한 대표는 “대통령의 위헌적 계엄을 옹호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라며 “저는 계엄선포 최초 시점부터 가장 먼저 국민의 분노와 함께 했고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태에 관여한 군 관계자들을 즉시 배제해야 한다”고 하고, 윤 대통령의 탈당도 재차 요구했다.
한 대표의 말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윤 대통령의 계엄발동은 위헌이지만 그걸 이유로 탄핵하는 데는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대표는 자신의 입장이 바뀌지 않은 것처럼 강변한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이틀 전 계엄 선포 직후 진두에 서서 계엄해제 결의 찬성을 이끌던 모습과는 분명 다르다. 전날 나경원 의원 등 다른 중진 의원들과 윤 대통령과 면담한 후 입장이 바뀐 게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은 실제 “(윤 대통령과 한대표 면담에서) 두 사람간 견해차는 없었다”며 “윤 대통령은 민주당의 폭주를 알리려고 계엄을 선포했다”고 했다.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과 나와서 보인 태도에 괴리가 있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45년 전 신군부에 의한 헌정 질서 유린의 망령을 되살린 폭거이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에 K컬쳐로 이름높은 대한민국이 하루아침에 ‘여행 자제국’으로 떨어졌다. 미국의 커트 켐벨 국무부부장관이 “계엄 선포는 윤 대통령의 중대한 오판”이라고 한 이유이다. 대통령 스스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갉아먹은 일대 사건이다. 게다가 계엄발동을 둘러싼 불법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날 진행된 국회 국방위·행안위 긴급 현안 질의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박안수 계엄사령관을 허수아비로 만들어놓고 병력을 출동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윤 대통령 및 김 전 장관과 충암고 동문인 방첩사령관 등이 다수 개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회를 동원해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 신군부에 대한 끔찍한 기억을 되살린다. 대통령실과 김용현 전 장관은 불과 석달 전까지도 “계엄은 우리 머릿속에 없다. (계엄설은) 괴담이다”라고 했던 것을 완벽히 뒤집었다. 민주국가에서 도저히 묵과될 수 없는, 내란죄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할 사안이다.
한 대표는 탄핵이 아닌 다른 해법이 있으니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청구가 성급했다는 의견과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윤 대통령은 스스로 물러날 사람이 아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리를 지키겠다고 마음 먹었기에 비상계엄 선포라는 위헌적 행위를 감행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는 한 또 어떤 다른 방법으로 헌정질서를 어지럽힐지 모른다. 윤 대통령이 스스로 위헌적 행위로 정치적인 자폭을 한 이상, 하루 빨리 배제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다.
한 대표는 이날 “계엄 선포 당일보다 어제 그리고 오늘 새벽까지 더 고민이 컸다”고 실토했다. 스스로도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 대표가 태도를 바꾼 배경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곧바로 탄핵되면 민주당에 정권을 내줄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기 대선을 치르게 되면 현재 지지율에서 가장 앞서 있는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 후보가 되어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문재인 후보가 반사 이익을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상황을 떠올린 것이다. 결국 한 대표가 탄핵에 반대하는 바탕에는 그 자신의 집권욕이 깔려있다. 아무리 현실 정치라 해도 그건 잘못된 선택이다. 민생은 팽개친 채 자신과 부인의 안위를 위해 헌정 질서를 중단시킨 폭거를 앞에 두고 당리당략에 매달려서는 안된다.
국민의힘과 한 대표가 윤 대통령 탄핵을 놓고 입장이 오락가락한다면 자충수가 될 뿐이다. 2004년 초 당시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무리하게 추진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그런데 또다시 민심을 거스르려 하고 있다. 군사독재의 후신이라는 오명은 언제 떨칠 것인가. 모름지기 정치인은 태도가 선명해야 한다. 한 대표는 차기 대선에 나서고자 한다면 자신이 대통령직을 감당할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민생도 내팽개치고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대통령을 감싸면서 무슨 낯으로 표를 달라고 할 것인가. 여기서 자신의 민주주의를 향한 투철한 의식을 입증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윤 대통령과 같은 검사 출신이라는 점만 부각될 것이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 탄핵 대열에 동참하는 게 옳다.
이중근은 경향신문에서 34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2024년 퇴직한 뒤 뉴스버스 등에 칼럼 등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정치(정당·외교안보·총리실·중앙선관위·청와대), 사회(경찰·검찰), 국제부를 거친 뒤 논설실장·논설주간으로 경향신문의 논평을 책임졌다. 국가의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되고 집행되는지를 관찰한 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글의 무거움을 절감하며 정파적 보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하자’는 게 '신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