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과 이준석의 메시지 대응 누가 먹힐까
스마트폰 시대, 디테일·현장감·직설 화법·빠른 반응 요구 이준석, 시원시원한 화법·꾸밈없는 없는 행동이 특징 윤석열, 대권 행보 빨라지고 메시지 변화무쌍
요즘은 TV의 해상도가 높아지고 화면도 커져 실물로 보는 것과 TV화면을 통해 보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 TV드라마 속 등장 인물의 땀구멍까지 보일 정도다. 과거 배우들이 화면을 통해 전달될 결과를 감안해 과장된 분장을 하고 의상을 선택하던 시절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고해상 대형 TV의 특징은 있는 그대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디테일과 현장감까지 살린다. 억지로 꾸미는 것은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한 번 뱉은 말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도 큰 변화다. ‘조국의 적이 조국’이라는 뜻의 조적조는 조국이 과거 자신이 SNS에 쏟아낸 말에 의해 비판받는 현실을 비꼰 말이다. 조국은 ‘생각이 바뀌었다’고 천연덕스럽게 대꾸했지만 그 말을 접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이 일상화된 것도 큰 변화다. 거의 전 국민이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를 늘 지니고 생활한다. 뉴스가 거의 빛의 속도로 전달된다. 반응도 즉각적이다. 자극과 반응사이의 시차를 뜻하는 타임랙(time-lag)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중요한 점은 이런 현상이 좋은 소식, 알리고 싶은 소식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소식, 감추고 싶은 소식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변하면서 정치 커뮤니케이션도 적응할 필요가 있다. 기술적인 적응은 기본이다. 새로운 환경은 특정한 태도, 스타일, 자세, 원칙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보자. 꾸미거나 감추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솔직해야 한다. 애매모호한 화법보다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한 화법이 선호된다. 대중의 반응이 즉각적인 만큼 정치인에게 빠른 반응을 요구한다. 일관성이 매우 중요하다. 앞뒤가 다르거나 말을 바꾸는 것은 금물이다. 모든 것이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실수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신중하고 심사숙고하며 준비된 발언이 아닌 애드립을 삼가는 것이 좋다.
이준석의 당직 인선, 내부 관행·한계 못 뛰어넘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부상한 것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에 본래 잘 맞는 스타일이거나 잘 적응한 것이 한 몫 했다. 직설적이다. 에둘러 표현하는 법이 없다. 윤석열 전 총장에게 입당을 촉구하면서도 ‘윤 전 총장의 공정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른다’거나 ‘아마추어적’이라는 평가를 주저하지 않는다. 아빠찬스와 같은 음해에 대해서는 SNS를 통해 즉각 조목조목 반박한다. 구질구질하게 변명하지 않는다. 공정한 경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면서 자신이 엘리트주의자로 보여도 할 수 없다고 한다. 따릉이를 타고 출근하는 모습도 평소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 것에 비추어 꾸민 것으로, 즉 연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현충원, 천안함 유족 면담, 광주방문 등 일정을 소화할 때도 억지로 감동을 자아내려하지 않았고 담백했다.
이준석 대표의 취임 후 행보는 일반 국민, 특히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에 적합한 젊은 유권자들의 눈으로 볼 때 매우 성공적이다. 다만 정치는 혼자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이 대표는 당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에 모두 3선인 한기호 의원과 김도읍 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0선 대표도 당직 인선에선 선수라는 당의 관행을 깨지 못했다. 이 대표에게 많은 기대를 품은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윤희숙 의원같은 사람을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하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고 의아해했다. 또한 한기호 의원은 '5.16이 구국의 혁명' 이라고 말하고, 세월호 참사가 나자 "좌파단체와 좌파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정부 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에 대비해 좌파를 색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의 통합을 유지하기 위한 신중한 결정으로 평가할 수도 있지만, 직설적이고 솔직한 태도로 많은 점수를 딴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결정으로 보일 수도 있다.
윤석열, 특유의 직설 화법ㆍ거침없는 이미지 점점 퇴색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공보담당자를 정했고, 곧 사무실도 낸다고 하며, 6월 말이나 7월 초에는 공식 출마선언을 할 예정이라 한다. 6월 9일 우당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한데 이어 6.15남북공동선언 기념일에 맞춰 6월 11일 김대중 도서관도 방문했다. 그러나 그가 말로 또는 일정으로 시도한 일련의 커뮤니케이션, 즉 메시지에는 앞서 말한 환경변화에 비추어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지난 2주간 윤 전 총장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변화무쌍했다. 일정도 메시지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을 잇달아 만나면서 곧 입당할 듯이 보였다. 곧이어 죽마고우의 입을 통해 국민의힘 입당은 억측이며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하고, 조국흑서의 저자인 김경율 회계사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대변인을 통해선 국민의힘 만으로는 의미가 없고 압도적 승리를 위해 중도와 합리적 진보를 끌어안겠다고 발표했다. 대변인은 금태섭 전 의원이나 진중권 전 교수같은 사람들도 만나 의견을 청취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긍정적으로 답했다. 다음날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끊임없이 입당을 압박하는 국민의힘을 겨냥해 짜증이 난 듯 여야 협공에 일절 대응하지 않고 자신의 갈 길만을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다시 바로 다음날 일련의 민생투어를 가진 후 조만간 입당할 것이라 밝혔다. 어지간한 롤러코스터도 이 정도로 급하게 방향전환을 거듭하다가는 사고를 일으키기 십상이다. 윤 전 총장은 갈수록 과거의 직설적 화법을 통해 형성한 이미지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위험하다.
윤석규는 서울대 인문대를 졸업하고 YMCA 경실련 등에 몸담아오다 DJ정부에서 청와대 시민사회국장을 지냈다. 2002년 노무현 캠프의 상황실장을 맡아 노무현 대선 전략의 밑그림을 그린 ‘정치전략통’이다. SNS 등에서 합리적 진보 논객으로 활동 중인 그는 날카로운 정치 분석으로 정평이 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