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게시판 논란' 위기 맞은 한동훈, 침묵으론 고비 못넘어

‘따박따박’ 반박 스타일 버리고 모호한 대응 보수언론도 해명 촉구, 내로남불식이면 확장성 한계

2024-11-22     이중근 칼럼니스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2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56회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있다. 뒤편엔 나경원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권성동 의원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그의 모친·장인·장모·부인 등 가족 명의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를 비방하는 글이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대거 올라온 사건을 놓고 당이 시끄럽다. 지난 5일 한 유튜버가 한 대표와 가족 7명 이름과 같은 이름으로 비방글 1,100여건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고 폭로한 것이 출발점이다. 한 대표는 2주 넘도록 침묵으로 일관하다 지난 21일 “(경찰이) 철저히 수사하고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 자신이 쓴 글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지만, 가족 명의 글에 대해선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당무 감사를 통해 진상을 가리자는 요구에 대해서는 당원 개인정보 보호와 당내 분열 조장 우려를 앞세워 반대입장을 밝혔다. 친윤계와 친한계간 당내 갈등이 날로 증폭되고 있다. 

한 대표 측 주장대로 당원 게시판에 대통령 부부를 비판하는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할 수 있도록 해 소통을 활성화하자는 게 게시판의 취지인 것은 맞다. 그런데 그 내용이 같은 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살벌하다. ‘(김건희 여사는) 개목줄 채워서 가둬놓아야 한다’는 표현도 보인다. 윤 대통령으로부터 핍박받는 상황에서 다소 감정이 들어간 표현을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현직 대통령에 대해 이런 언사를 내부에서 쓴 전례는 없었다. 이 정도의 적개심이라면 윤 대통령에게 기대할 것도 없어야 한다. 한편으로 자신을 밀어줄 것을 바라면서, 다른 한편으로 등뒤에서 비판한 것은 문제가 있다. 배신자 프레임에 걸려도 할 말이 없다.  

더 큰 문제는 비판글의 수위나 성격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족 명의로 다수의 비방 글을 올렸다면 여론 조작에 해당할 수 있다.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은 익명이지만 본인 인증을 거친 당원만 글을 쓸 수 있다. 또 외국에서 접속할 경우, 신원확인도 엄밀히 하지 않고도 글을 쓸 수 있게 돼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인증을 거친 비방 글 명의자 중 일부가 한 대표 가족 이름과 동일하다면  조직적 움직임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실제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 등 당밖 사이트들에는 당 게시판의 글을 똑같이 ‘복붙’해 올린 흔적이 다수 보인다. 가족이나 댓글팀을 동원한 여론 조작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앞서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7월 “한동훈 법무장관 시절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는 팀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더 중한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한 대응이 한 대표의 평소 모습과 판이하다는 점이다. 한 대표는 매사 ‘따박따박’ 반론을 제기하며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는 대응으로 지지자들을 모아왔다. 사실 이번 사건은 어렵게 풀 일이 못된다. 한 대표가 가족들에게 댓글을 썼는지 물은 뒤 들은대로 밝히면 될 일이다. 당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게 범죄가 아니라니 수준에 맞게 해명하고 넘어가면 된다. 그런데 이 대표는 끝까지 진상을 밝히지 않아 의심을 키우고 있다. 윤 대통령을 향해 김 여사 의혹을 하루라도 빨리 털고가자고 한 것이 한 대표 아니었나? 

한 대표는 마치 자신에게는 한 점의 오점도 없는 듯 상대방을 향해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왔다. 박영수 국정농단 특검에서는 윤석열 수사팀장과 더불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최순실과 ‘경제공동체’로 묶어내 33년의 징역형을 구형했다. ‘사법농단’ 수사를 지휘한 끝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47개 혐의로 기소했다. 무죄 판결도 꽤 많이 나왔지만 그는 늘 확신에 찬 태도로 자신이 한 일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한 대표는 2017년 대선 과정에서 온라인 댓글 등을 통해 여론을 조작한 ‘드루킹 사건’으로 실형을 산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에 대해 “민주주의 파괴범”이라고 비난했다. 당 대표로서 그의 복권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자신과 가족에게는 너무나 관대하다. 

한 대표는 검사 시절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수십개짜리 휴대폰 암호를 끝까지 숨겨 ‘검언유착’ 의혹을 덮었고, 대선 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부부와 수없이 많은 통화를 하면서 무슨 의논을 했는 지 그 비밀도 지켜냈다. 딸을 해외유학시키는 과정에서도 편법을 썼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도 그대로 넘어갔다. 검찰이 이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는데, 조국 전 법무장관 가족에게 한 것처럼 탈탈 털어 수사하면 결과가 뒤집힐 것이라는 의심이 적지 않다. 일부 보수층으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확보하고 있지만, 단순한 법 기술자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그에게 미래는 없다고 나는 본다. 지금까지 그보다 더 열렬한 팬덤과 지지율을 보였지만 대선 가도에서 사라진 정치인들이 한 둘이 아니다. 

한 대표가 코너에 몰리자 지지자들이 강하게 결집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지난 대선 때 ‘김건희 리스크’가 있음을 알면서도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런데 이번엔 같은 방법으로 한 대표를 지원하고 있다. 보수와 국가를 위해 헌신할 인물을 찾기보다 당장 민주당을 이길 사람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대선에서 승부를 가르는 것은 역시 중도 유권자들이다. 한 대표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일관해도 그들이 지지할까? 조선일보 등 보수매체들도 사설로 한 대표를 비판했다. 보수층 내에서도 한 대표의 행동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매사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는 한동훈과 그 지지자들이 숙고해야 할 대목이다. 

이중근은 경향신문에서 34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2024년 퇴직한 뒤 뉴스버스 등에 칼럼 등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정치(정당·외교안보·총리실·중앙선관위·청와대), 사회(경찰·검찰), 국제부를 거친 뒤 논설실장·논설주간으로 경향신문의 논평을 책임졌다. 국가의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되고 집행되는지를 관찰한 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글의 무거움을 절감하며 정파적 보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하자’는 게 '신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