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동문서답·궤변의 140분 회견...김건희 특검 수용 거부

尹 "국회가 특검 임명하고 방대한 수사팀 꾸리는 나라 없다"

2024-11-08     이진동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7일 140분간 이어진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본인과 김건희 여사에게 제기된 여러 의혹들에 대해선 궤변과 핵심을 비껴난 장황한 동문서답으로 피해나갔다. 전체적으로 ‘사과’와 ‘죄송’을 여러차례 언급했지만, 정작 어떤 부분에 대한 ‘사과’ ‘죄송’ 인지에 대해선 두루뭉술했다. 

심지어 김 여사의 공천·인사 등 국정 개입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국정농단이라고 한다면 국어사전을 다시 정리해야 할 것 같다”고 하고, 녹음파일에 등장한 ‘김영선 해줘라’라는 육성에 대해선 “의견 개진”이라고 수사 가이드라인을 주는 듯한 발언을 했다. 야당이 14일 본회의에 상정할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야당의 특검 추천은 정치선동’이고 ‘헌법에 반하는 발상’ 등의 발언을 하며 '김건희 특검' 수용을 거부했다. 

윤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 참모진 전면 개편, 쇄신 개각, 김건희 활동 즉각 중단, 특별감찰관 임명, 국정기조 전환' 등 6가지를 요구해왔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윤 대통령 기자회견에 대해  입장을 내지 않고 침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 명태균 의혹 관련...궤변과 수사가이드라인

윤 대통령은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 의혹인 ‘김영선 해줘라’라는 공천개입 의혹에 대해 부인하는 답변이었지만 오락가락이었다. 윤 대통령은 “공천개입이라고 하는 것의 정의를 따져봐야 한다”면서 “당에서 진행하는 공천 가지고 왈가왈부할 수 없고, (당시) 인수위에서 진행되는 것 꾸준히 보고받아야해서 고3입시생처럼 바빴던 사람이다”고 말했다. 이어 “당에서 공천을 진행하며 중진위원들이 (의견을) 부탁하는 경우에도 누구를 공천해줘라 이런 얘기는 한 적이 없다”면서 “(명태균씨에 대해) 고생했다는 한마디는 한 것 같고, 무슨 공천에 대해 얘기한 기억은 없다”고 공천개입 의혹을 부인했다. ‘김영선 해줘라’라는 생생한 육성 녹음 파일에 대해 ‘전화 통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런 사실이 없다‘가 아니라 ’기억이 없다’고 변명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누구를 꼭 공천줘라 이런 것도 사실 얘기할 수도 있죠. 외압이 아닌 의견을 얘기하는 것이지만, 과거에도 대통령이 얘기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라고 했다. 설령 공천 언급을 했다고 해도 ‘의견 개진’이라는 궤변이다. ‘기억이 없다’와 ‘의견개진’은 현재 진행되는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올만 하다.

여론 조작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요구받자 “명씨한테 여론조사를 해달라는 얘기를 한 적은 없으며 (자신에 대한) 여론조사가 잘 나왔기 때문에 조작할 이유도 없다”고 했는데, 이 역시 궤변이다. 여론조사를 잘 나오게하려고, 여론 조작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인데, 여론 조사 결과가 잘 나왔으니, 조작할 이유가 없다는 동문서답인 셈이다.

또 “김건희 여사가 명씨와 대통령 취임 이후 수시로 연락했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언제까지, 왜 연락했는지 설명해 달라”고 하자 “아내 휴대폰을 보자고 할 수는 없어 물어봤더니, 몇 차례 정도 문자나 이런 걸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상적인 것들이 많아 이 자리에서 공개하기는 그렇다”고 답했다. 명씨가 김 여사와 수시로 통화했다고 하는데, 아직 확인도 하지 않고 ‘몇 차례 정도 문자’라고 했다. 다른 질문에선 “제 아내가 과오를 저지르고 불법을 저질렀다면 대통령이라도 디펜드 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아내 휴대폰’이라는 이유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은 모순이다. 

2. 거짓 해명 논란...‘참모의 답변 실수’ 참모탓

명태균 의혹이 제기된 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2021년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이후 명씨와의 연락을 끊었다”고 해명했으나, 대통령 취임 무렵 전화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거짓 해명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대선 이후 명태균씨와 정말로 소통을 끊었는지, 만약 또 통화나 문자가 공개된다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받자, “대선 당선 이후 연락이 와서 받은 적이 있고, 명씨가 선거 초입에 도움을 준다고 움직였기 때문에 수고했다는 얘기도 했다고 비서실에 얘기했는데, (대변인 등이) 이렇게 저렇게 얘기하기가 어려우니까 경선 뒷부분 이후에는 사실상 연락을 안 했다는 취지로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당선 이후에도 연락 받았다는 사실을 얘기했는데,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답변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취지다. 거짓 해명 논란에 대한 답변 대신 '참모 탓’으로 떠넘긴 것이다.

3. 김건희 국정개입 의혹...“국정농단 국어사전 다시 정리해야”

김 여사에게 제기돼 온 인사 및 선거 개입 등 국정 관여 의혹에 대한 입장을 묻자 “참모들한테 야단을 많이 친다는 말 듣고, ‘부드럽게 해’라고 하는 걸 국정관여라 할 수 없다”면서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을 좀 도와서 선거도 잘 치르고 국정도 남들한테 욕 안 얻어먹고 좀 원만하게 잘 하기를 바라는 그런 일들을 국정 농단이라 그런다면, 그거는 국어사전을 좀 다시 정리를 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김 여사의 공천 및 인사 개입 의혹 등을 ‘대통령에 대한 조언’ 정도로 비틀어 김 여사의 국정개입 의혹을 부인한 것이다.

4. 김 여사 활동 전면 중단...되레 제2부속실 설치

김 여사의 대외활동 전면 중단 요구에 대해선 “국민들이 좋아하시면 하고 국민들이 싫다 그러면 안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여론을 충분히 감안해 외교 관례상 또 국익 활동상 반드시 해야 된다고 저와 제 참모들이 판단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중단해왔고, 앞으로 이런 기조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답했다. ‘사실상 중단’이라고 했지만 김 여사의 대외 활동 전면 중단에 대해서도 완곡하게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중단’을 언급하면서 이날 김 여사의 공식활동을 보좌할 ‘제2부속실’ 설치를 한 건 모순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때 유튜버와의 7시간 통화, 종교인과의 대화, 그리고 명태균씨 사건 등 김 여사의 사적이고 비공식적인 활동들이 논란이 되는데 대한 조치를 묻는 질문에는 “앞으로 부부싸움 많이 해야 할 것 같다”면서 “순진한 면도 있고”라고 했다. 공사 구분 못하는 김 여사의 처신에 대해 ‘순진한 면’이라고 답변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어 “국민의힘 입당신청서를 통해 휴대폰 번호가 공개되자 하루에 문자 3,000개가 들어왔는데, 종일 사람 만나고 지쳐서 집에 와서 쓰러져 자고 일어나 보면 (아내가) 아침 5시, 6시까지 안 자고 엎드려서 계속 답을 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누구한테 도움을 받으면 말 한마디라도 인연을 탁 못 끊고, 말 한마디를 해도 고맙다는 얘기를 해야 된다는 그런 거를 좀 갖고 있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김 여사를 두둔했다.

 7일 시민들이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TV로 생중계되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5. ‘김건희 라인’ 인적 쇄신...“김건희 라인은 부정적인 소리”

윤 대통령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기한 한남동 7인회로 불리는 이른바 김건희 여사 라인에 대한 조치를 묻는 질문에 “김건희 라인이라는 말은 굉장히 부정적인 소리로 들린다”면서 “과거 육영수 여사도 청와대 야당 노릇을 했다는데, 대통령에 대한 아내로서의 조언 같은 것들을 마치 국정 농단화하는 것은 정치 문화상 맞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육여사 까지 끌어들여 ‘김건희 라인’의 존재 자체를 부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공직 생활을 오래 하면서 공사가 분명한 것을 늘 신조로 삼아 일을 했는데, 계통을 밟지 않고 무슨 일을 하는 거에 대해 받아들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면서 “자기 일 안 하고 엉뚱한 짓이나 하면서 말썽을 피우고 하면 딱 계통대로 조사하고 조치를 하겠다”고 답했다. 김건희 라인의 정리를 묻는 질문에 동문서답식 ‘보고 계통’ 등을 언급한 것이다.

6. ‘김건희 특검법’ 수용 여부...“특검은 정치선동”

윤 대통령은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기본적으로 특검을 하니 마니를 국회가 결정해서 또 국회가 사실상 특검을 임명하고 방대한 수사팀을 꾸리는 나라는 없다”며 “대통령과 여당이 반대하는 특검을 임명한다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헌법에 반하는 발상이다”고 말했다. 이어 “특별검사 업무도 사법업무인데, 이건 정치선동이다”고 했다. 명백한 사실 관계 왜곡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때도 야3당이 후보 2명을 추천해 박근혜 대통령이 이 중 1명을 임명했다. 또 야당이 추천권을 행사한 특검이 위헌이라는 최서원(개명전 최순실)씨의 헌법 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재판관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을 한 사실도 있다.

더욱이 특검의 최대 수혜자인 윤 대통령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의혹인 BBK특검에 파견 검사를 다녀온 뒤, MB정권 관리 대상 검사 중의 하나로 꼽혀 대검 중수부 1,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등 요직중의 요직을 돌았고, 2016년 국정농단 특검에서 특검수사팀장을 맡아 지금의 대통령 자리에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검과 관련한 답변 말미에 윤 대통령은 “제 아내가 어떤 과오를 저지르고, 불법을 저질렀다면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지만, 제가 검찰총장이나 대통령으로 있다고 하면 제가 할 수 없습니다. 아내에 대한 사랑과 변호 차원의 문제가 절대 아니라는 점을 말씀 드린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인식과 국민의 상식 간에 괴리를 보여준 발언이다. 국민 대다수는 지금 윤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대통령이 디펜드해선 안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국민 70%가 ‘김건희 특검’을 찬성하고 있다.

7. 지지율 추락...‘당과 소통 안돼서?‘ 

윤 대통령은 국민 5명 가운데 1명만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친한, 친윤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 건지(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 소통을 못했는데, 자주 만나려고 한다. 조직 내에서 서로가 삐걱거린다면 같이 운동을 하든지 등산을 가든지 하는 것도 좋은데, 같이 일을 하면 잘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 이유가 여권 내분 때문이라는 건지 답변만으로는 명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8. 기타 동문서답 

한동훈 대표와 갈등의 본질이 개인적인 감정의 문제라는 분석이 많다는 질문엔 “개인적인 감정 가지고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같이 하면서 공동의 어떤 과업을 찾아 나가고 공동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해 나갈 때 강력한 접착제가 되는 것이다. 이제 국감도 끝났고 순방 다녀오면 좀더 빠른 속도로 편한 소통 자리를 많이 만들려고 한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의 140분 기자 회견은 김건희 여사는 '순진한 사람', 김 여사 비판은 '의도적 악마화', 김 여사 라인은 '굉장히 부정적인 소리', 김 여사 의혹은 '침소봉대‘, '김 여사 특검은 '정치선동'으로 요약될 수 있다. ’사과 하라니‘ 한다는 식의 이날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겸허한 사과나 진솔한 반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평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