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의 범죄 앞에서 딜레마에 빠진 부모의 '혼돈과 위선'- '보통의 가족’
<보통의 가족>은 드러난 주제에 대한 감추어진 이유를 찾는 재미가 있다. 즉, 주제는 가치관과 신념이란 것이 자식의 범죄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폭로한다. 그런데 허진호 감독은 돈을 추구하던 형 재완(설경구)의 변심과는 달리, 정의를 주장하는 동생 재규(장동건)의 뒤바뀐 입장에 대해선 명확한 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재규의 급발진은 의문을 남긴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허진호 감독이 숨겨둔 힌트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언제 2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된다.
네덜란드 작가 헤르만 코흐의 원작 소설 <더 디너>에 한국적 상황을 잘 녹여내고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은 관객 몫으로 돌린 느낌이다. 원작은 이미 네델란드, 이탈리아, 미국에서 영화로 제작되었다.
현실(돈) 추구, 변호사 재완 vs 정의와 명분, 의사 재규
재완과 재규의 극단적인 성격(가치관) 대조는 영화 초반부에 시작된다. 재규가 자동차 사고로 목숨이 위태로운 한 아이의 생명을 살리는 동안 재완은 재미로 멧돼지 사냥을 하면서 생명을 죽인다. 재완은 수임료만 높다면 가해자의 변호를 맡아 고의 살인도 과실치사로 만드는 변호사다. 공교롭게도 재완이 맡은 가해자가 친 피해자를 재규가 수술하면서 형제는 입장이 갈린다.
원작의 제목이 <더 디너>이듯 영화에서도 3번의 저녁 식사는 중요하다. 처음 부부 동반 식사도 재완의 의지에 따라 재완이 원하는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재완은 재규에게 요구사항을 갖고 있다. 그중 하나는 피해자와의 빠른 합의를 종용하는 것이다. 재규는 거절한다. 그러던 중 재완의 딸 혜윤(홍예지)이 자신들이 폭행한 노숙자 사건을 재완에게 알리면서 상황은 변하기 시작한다.
2번째 식사만 하더라도 재완은 평소의 그답게 사건을 조용히 덮길 바라지만, 재규는 평소의 신념대로 자식들이 저지른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3번째 마지막 식사에서 이 둘의 입장은 완전히 달라진다.
설명된 재완의 변화
재완의 변화는 그가 변호한 재벌 집 자식의 몰상식한 태도에서부터 감지 된다. 피해자와의 빠른 합의를 위해 찾아가 사죄하라는 재완의 요구는 묵살 된다. 재벌 집 아들의 죄책감 없음에 적잖이 당황한 것 같다. 여기서 시작된 흔들림은 혜윤의 태도에 의해 강화되기 시작한다. 사람을 때려 인사불성을 만든 딸이 마치 아무 일도 없던 듯이 행동하는 것을 보며 생각이 복잡해진다. 더군다나, 노숙인이 죽었다고 했을 때 “그럼 된 거 아냐?”라고 하는 딸의 반응에도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본인의 잘못으로 사람이 죽었는데 죄의식은 커녕, 대학 합격하면 사주겠다던 자동차에 꽂힌 딸이 무섭기도 했을 것이다. 여기에 아내 지수(수현)가 혜윤이 무서워진다고 하는 말도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재완은 사망자 빈소에도 가보고, 사망자의 집에 들러 일종의 보상금을 두고 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생각 변화의 결정적인 계기는 우연히 엿들은 혜윤과 시호가 나눈 대화다. 노숙인은 어차피 일찍 죽을 사람이었고, 자신들이 아니어도 죽었을 거라는. 한마디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에 아마 소름이 끼쳤고, 자신의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선 자수가 최선이라 판단했던 것 같다. 관객은 이러한 재완의 행동을 통해 자식에 대한 변화된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설명되지 않은 재규의 폭주
허진호 감독은 재완과 달리 재규가 폭주한 이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지 않지만 곳곳에서 힌트를 암시한다. 우선, 재규는 교외에서 재완과 만나고 돌아오다 고라니를 자동차로 친다. 바로 이날이 시호의 범죄를 알게 된 날이다. 고라니도 죽었지만, 그의 차 앞 유리에도 거대한 흔적이 남는다. 바로 이 지점부터 감독은 재규의 앞날이 좋지 않게 흘러갈 것임을 예시하고 있다. 이날부터 재규의 삶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전 삶은 정정당당하게 살았고, 의사로서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하고 살리며, 해외 봉사활동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 자신의 아들 시호가 사람을 때려 목숨을 위험하게 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재규는 범죄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호가 거짓말을 하자 시호를 때린다. 그때 방에 들어온 시호 할머니는 재규를 보고 순해 보이지만 독한(?) 놈이라고 말한다. 또한 치매 엄마가 침을 뱉어 아내(김희애)가 분을 삭이는 장면에서, 재규의 시선은 아내를 내려보고 있다. 이 장면은 재규가 권위적이며, 집안에서 결정권을 쥐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반면에 재완과 지수(수현)의 대화는 대체로 동등한 위치에서 일어난다. 기저귀를 어디 둘까 묻는 장면도 그렇고, 혜윤과 다툼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옷장 앞에서 대화할 때도 그들은 서서 바라보며 대화한다. 재규가 병원에선 환자에게 자상하고 따뜻한 의사일지 모르지만, 집에선 본인의 뜻대로 하는 권위주의적 가장임을 암시한다. 실제로 그가 아들 시호를 경찰서에 데려가겠다고 우기고 행동에 옮기기도 한다.
재규의 시호에 대한 태도 변화가 읽히는 장면은 바로 병원에서 혼자 식사하는 장면이다. 식사 중 형으로부터 노숙인이 죽었다는 말을 들은 재규는 밥을 열심히 먹기 시작한다. 시호가 잘못에 대해 인정한 점과 시호의 학교폭력에 제대로 대처해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시호가 태어날 때부터 약하게 태어났다는 생각이 겹치면서 재규의 가치관은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재완이 혜윤을 데리고 경찰서로 가겠다고 하니까, 재규는 형을 용서할 수가 없던 것 같다. 재규 입장에선, 지금까지 돈을 벌기 위해 가해자 편에서 변호하던 사람이 갑자기 자식을 자수시키겠다고 하니 이해 불가였던 것 같다. 그동안 본인이 느껴오던 재완의 가식과 위선에 더욱 화가 났을 수 있다. 게다가 시호에게 직접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더욱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허진호 감독의 의도를 읽어 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그래도 결말은 충격적이다. 이 영화는 자식의 범죄 행위에 대한 부모들의 반응에 초점을 두고 있다. 부모의 평소 행동이 자녀에게 주었을 영향도 포함되었다면 논의의 폭이 좀 더 커지지 않았을까.
김주희는 뉴질랜드 와이카토(Waikato)대학에서 ‘영상과 미디어’를 전공한 예술학 박사이다. 뉴질랜드는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2000~2003) 시리즈와 <킹콩>(2005)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영화 제작 강국이다.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다. 여전히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한 채 유튜브 <영화와의 대화>를 운영하는 유튜버로 활동하면서, 뉴스버스에 영화칼럼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