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vs 조선일보' 전쟁 왜?] ➀ 박근혜의 무지막지한 공격과 조선의 '반성문'

2021-10-21     이진동 기자

 

조선미디어 계열의 대표적 신문 방송인 조선일보나 TV조선은 잘 알려진대로 보수 성향의 매체다. 조선일보는 보수 세력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무너지면 보수가 죽는다”는 생각으로 보수의 보루를 자처해왔다. 때로는 보수 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노골적으로 보수 정치 세력과 호흡을 같이해왔다. 

5년전 10월 이맘 때는 촛불의 도화선이 막 댕겨지기 직전이다. 촛불은 언론의 국정농단 사건 보도로 점화됐는데, 국정농단 사건 보도는 TV조선 퍼스트펭귄팀(이하 펭귄팀)이 문을 연 뒤 한겨레가 바통을 건네 받았고, JTBC의 태블릿PC 보도를 거쳐 다시 TV조선 펭귄팀의 박근혜 의상실 CCTV와 김영한 비망록 보도로 이어졌다. 언론의 국정농단 사건 보도, 그리고 촛불로 터져 나온 민심은 특검 수사와 탄핵으로 이어지면서 보수의 궤멸 위기까지 불러올 정도였다.  

펭귄팀은 취재 당시엔 보안을 지키기 위해 취재 기자들끼리만 최순실의 이니셜을 딴 'CSS팀'이라는 암호명으로 소통했다가 국정농단 사건 보도의 문을 연 역할을 대열에서 맨 먼저 용감하게 물에 뛰어드는  '퍼스트 펭귄'에 빗대 나중에 붙여진 이름이다.

국정농단 사건의 서막에 해당하는 TV조선 펭귄팀의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 보도가 나온 직후 박근혜 청와대와 조선일보는 전례없는 싸움을 했다. 이 싸움에서 조선일보는 맥없이 주저앉았다가, JTBC의 태블릿보도 이후부터는 ‘공격’모드로 돌변했다.

당시나 지금이나 일반인들은 박근혜 청와대와 박 정권의 지지대 역할을 하던 보수언론 조선일보의 싸움에 대해 여전히 ‘왜?’라는 궁금증을 갖고 있다. 조선일보를 모회사로 두고 있는 TV조선에서 ‘왜 어떻게’ 매체 성향을 역주행하는 국정농단 보도가 나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의아해하는 분들도 많다. 아무리 봐도 배경 파악이 안되니, 당시 많은 사람들은 ‘보수정권 재창출’이라는 음모론적 시각에서 이 싸움을 바라봤지만 사실과 다르다. 이 음모론의 진원지도 실상은 박근혜 청와대였다.

최근 대선 정국의 흐름에서 조선일보는 ‘선’을 넘고 있다. 보수적 가치를 옹호할 수 있겠으나, 한쪽 편을 위해 대신 싸워주고 야당의 유력 후보를 드러내놓고 편들고 ‘방어’하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5년 전 보수 궤멸 위기를 불러온 국정농단 사건 보도에 조선이 앞장섰다는 멍에를 지우고 보수 세력의 비난에서도 벗어날 기회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5년 전 그때 조선일보와 박근혜 청와대는 왜 전쟁을 했는지, 국정농단 사건 보도의 문을 연 TV조선은 그뒤 왜, 어떻게 U턴을 했는지 등에 대해 몇 차례로 나눠 실을 예정이다.  / 편집인 주

지난 2016년 11월 26일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 (사진=뉴스1) 

2016년 8월 TV조선에서 미르·K스포츠 재단의 강제 모금을 청와대가 주도하고, 비선 실세가 개입돼 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박근혜는 조선일보를 향해 ‘부패기득권 언론’이라고 지칭했다. 조선일보를 향한 총공격 신호였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당시 친박 의원 김진태는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을 공격했다.

박근혜 정권 창출과 정권 유지의 기반이랄 수 있는 보수 언론 조선일보를 향해 노골적으로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는 초유의 사태였다. 그렇다면 2016년 8월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이 물러날 당시 보수 진영 최대 언론 권력 조선일보와, 보수 정치권력인 대통령 박근혜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조선일보는 2016년 8월 31일자 1면에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는 사과문을 실었다.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언론인의 일탈 행위로 인해 독자 여러분께 실망감을 안겨드린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송(희영) 전 주필에 대해 제기된 의혹들은 엄정하게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입니다.”

권력이 일방적으로 제기한 의혹에 대해 두손 드는 굴복이었던 셈이다.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시시비비가 엄정하게 가려질 것’이라고 한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 사실 관계도 확인이 안된 상황인데도 조선일보는 사과문부터 올렸다. 박근혜 청와대가 겁박의 제물로 조선일보 주필 송희영을 본보기 삼자, ‘엄포’가 아닌 ‘실제 상황’이라고 깨달은 조선은 이 때부터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1면에 사과문을 실은 당일 조선은 ‘언론인 개인 일탈과 권력 비리 보도를 연관 짓지 말라’는 사설을 썼다. 언뜻 청와대를 비판하는 것 같지만, 청와대가 제기하는 음모론은 부당하다는 해명에 가까운 수세적 논조였다. 사설 요지는 송희영 주필 건을 덮기 위한 차원에서 조선일보가 ‘우병우 보도’ (2016년 7월 18일 조선일보 1면 ‘우병우 민정수석의 처가 부동산…넥슨이 5년 전 사줬다’/ 조선일보는 3년 6개월 만인 2020년 1월 18일자 1~2면에 걸쳐 "사실이 아니다"는 정정보도문을 게재했다)를 했다는 것은 음모론이고, 청와대가 그 음모론에 기대 공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딱 여기까지였다. 

주필은 기자들을 거느리고 있거나 기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사에서는 신문 제작 방향과 논조를 끌어가는 상징적 자리다. 박근혜 청와대는 이런 이유로 당시 조선의 기세를 단번에 확실하게 꺾기 위해 상징적 자리에 있는 주필부터 공격한 것이었다. ‘우리가 맘 먹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권력의 살벌함’을 보여줬다고나 할까. 

송 주필은 이 일로 검찰 조사를 받고 5개월 뒤 불구속 기소됐다. 그리고 3년 뒤인 2020년 1월 9일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가 나면서 명예회복의 길을 열었다.   

박근혜 청와대는 송희영을 공격한 직후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에게 해고할 기자라며 8명의 명단을 건넸다. 조선일보 1면에 사과문이 실리기 직전 또는 직후 쯤 이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실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여부를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무렵에도 청와대가 내 사표까지 요구했다는 소문은 듣고 있었다. 저술한 책 <이렇게 시작되었다> 에서도 이와 관련한 부분을 기술했는데, 책을 저술할 때도 정확한 내막에는 접근이 안된 상태였다.

“2016년 9월 무렵 청와대가 조선일보와 TV조선 간부급 인사 몇 명을 딱 찍어 인사조치를 요구했다는 얘기들이 파다하게 ‘설’로 돌았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고 어떤 경로로 전달됐는지는 모르겠으나 대부분 ‘호남 출신’ 기자들이었고, 그 가운데 나와 ‘우병우 기사’를 처음 쓴 조선일보 차장 이명진도 포함돼 있다고 했다. 실제 인사조치는 없어서 ‘지라시성 소문’인지, ‘사실’인지 여부를 그 당시엔 확인하지 못했다. (중략) 당시 “청와대가 ‘이진동의 사표를 받으라’는 압력을 넣었다”는 말도 들었다. '사표만 받으면 뒤처리는 알아서 하겠다'는 말까지 있었다고 했다.”(<이렇게 시작되었다> 258p / 이진동, 개마고원) 

소문으로만 듣고 진위 확인을 못하다가, 사실을 확인한 건 2018년 3월 2일 방상훈 사장 면담 때였다. 사장실로 찾아가 우여곡절 끝에 며칠 전 출간한 책 <이렇게 시작되었다>를 전달하는 자리였다. 방 사장의 얘기다.

“청와대가 기자 8명의 명단을 가져와 이 사람들 그냥 두면 ‘제2 제3 송희영이 터져 나온다고 협박하더라. 물론 당신도 그 명단에 들어 있었다”

방 사장의 워딩 자체가 “기자 8명의 명단을 가져왔다”고 한 점으로 미뤄, 누군가 인편을 통해 ‘대통령 뜻’을 내세워 전달했던 게 분명했다. 메신저는 친박 실세 인사이거나, 조선일보 고위층과 교감이 있는 정치권 인사가 아닐까 싶었다. 

보수 정권에서 보수의 보루라고 자처하는 조선일보 주필을 제물로 삼고, 영향력 1위 매체라는 조선일보 사주에게 “기자 8명을 해고하라”고 협박을 했다는 것은 통상의 시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박근혜 청와대는 조선일보 사장 방상훈 주변까지 직접 공격했다. 밖으로 공식화되지는 않았지만, 방상훈의 아들과 사위 주변까지 이잡 듯 뒤져 협박을 해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책 <이렇게 시작되었다>에서는 “검찰 수사가 방상훈 사장 주변까지 겨냥하고 있다는 루머가 돌면서 조선일보는 뒤숭숭한 상황이었다”고 완화해서 기술했지만, 사실이었다. 당시 지라시엔 내년 3월 TV조선이 재승인을 받지 못할 것이란 얘기도 돌았는데, TV조선 종편 재허가 문제 역시 박근혜 청와대의 실재했던 ‘협박 무기’였다. 평소 여유가 묻어나던 방 사장의 얼굴은 당시 흑빛으로 변해 있었다. 방상훈 사장 스스로도 “정말 지독하더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2016년 8월 31일 사과문이 나가고 8일 뒤엔 <논설 책임을 맡고서도 차마 선배 주필들 사진을 쳐다볼 수 없었다>는 칼럼(2016년 9월 8일 조선일보 A34면)이 실렸다. 독자를 향한 반성문이었다. 외부에서는 조선이 ‘백기를 들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송 전 주필이 공격당하기 직전 까지만 해도 조선일보 사설은 <“禹 수석 정상 업무하고 있다”는 靑 비정상이다>(2016년 8월 2일자) <이런 맥빠지는 개각>(2016년 8월 17일자) <그래도 우 수석 감싸는 청과 친박들 지금 제정신인가>(2016년 8월 19일자) <靑, 우병우 개인비리 의혹을 정권 차원의 문제로 키우나>(2016년 8월 21일자) 등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한 날선 비판들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직무가 정지됐던 2017년 1월 1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출입기자단과 신년인사회를 겸한 티타임을 갖고 있다. (사진=뉴스1)

그런데, 2016년 9월부터 10월 24일 JTBC의 '태블릿PC' 보도 전까지 박근혜를 비판하는 사설이 사라지고 만다. 10월 21일에 가서야 <박 대통령 ‘최순실 의혹 해명’ 국민이 납득하겠나>라고 박근혜를 비판하는 사설이 등장한다. 전날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미르·K스포츠 재단의 자금 유용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 받을 것”이라며 “퇴임을 대비해 재단을 만들 이유도 없고 사실도 아니다”고 해명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남 얘기하 듯 하지말고, 국민이 궁금해하는 ‘최순실과의 관계’를 밝히라는 것이었다. 이미 이 때는 TV조선이 거의 석달 전 보도했던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을 거의 모든 언론이 달라 붙어 확산시키고 있었고, 최순실 의혹 역시 불붙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조선일보의 적극적 비판이라기 보다는 박근혜의 해명을 기회로 구색 맞추기식 비판정도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설 뿐만이 아니었다. 조선일보는 야당의 의혹 제기를 옮겨 쓰는 정도로만 구색을 맞춰갔을 뿐, 발굴 기사는 아예 없었다. 내가 박근혜 의상실 CCTV 등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조선과 청와대의 싸움 프레임에 말리면 안될 것 같아 ‘타이밍’을 봤지만 한겨레가 ‘K스포츠재단과 최순실’을 연결 짓는 기사(한겨레 2016년 9월 20일 1면 ‘K스포츠재단 이사장은 최순실 마사지사’)로 길을 열어준 이상, 쟁여두고 있던 최순실 관련 기사들을 풀어야 했다. 그러나 10월 24일 JTBC의 태블릿PC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최순실 기사 금지’는 요지부동이었다.  

저술한 책에서 당시 조선이 왜 그렇게 무르게 물러섰는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조선일보와 TV조선 상층부는 ‘박근혜 정권을 조선이 앞장서 주저앉혔다’는 대목만은 피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식물 정권’의 조짐을 보이는 상태에서 결정적 일격까지 가하면 보수층의 이탈을 부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을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부분은 실제 흐름과는 다른 설명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당시 조선과 방상훈 사장은 박근혜 정권의 예상치 못한 강공에 몹시 당황했고, 박근혜 청와대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상태였다. 두 달 가량의 짧은 기간이지만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없었던 무지막지한 공격을 받고 사실상 박근혜-최순실 권력 앞에 주저앉았다. 그래서 박근혜를 비판하는 기사가 사라졌던 것이다. 특히 박근혜의 아킬레스건인 ‘최순실’은 조선과 TV조선에서 금기어였다. 그 당시 다른 언론들이 전부 ‘최순실 의혹’을 키워 ‘최순실’은 동네 방네 다 노출된 상태라 더 이상 비선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보도본부장은 과민할 정도로 ‘최순실’을 등장시키지 못하게 했다. 나중에 TV조선 고위 간부를 통해 안 일이지만 방상훈 사장이 ‘최순실 만은 안된다’고 직접 제동을 걸었다고 했다.  

그래서 보도본부장을 아무리 설득해도 벽을 넘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년 5개월 뒤 책 <이렇게 시작되었다>를 낼 당시엔 ‘최순실 기사’가 제동이 걸리던 때의 상황을 파악했지만, 당시는 조선에 몸담고 있는 상황이고 내부에 있으면서 책을 출간해야 할 처지라 ‘조선과 방 사장이 박근혜와 최순실에 굴복한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쓸 수가 없었다. 책은 취재 과정과 취재 뒷 얘기이기 때문에 최대한 실명으로 쓰고 팩트(사실) 중심으로 서술돼 있다. 회사 내부 얘기도 가급적 해석이나 판단은 최소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최순실 금기어 사태’의 배경은 조선 측으로선 가장 민감한 대목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을 주저 앉히는 데 앞장섰다는 대목만은 피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역설적인 해석으로 대신했다. 어느 정도로 예민했는지에 대해선 후술하겠다.  

조선과 TV조선이 막아둔 ‘최순실 기사’의 둑을 튼 건, JTBC 태블릿PC보도가 나온 다음날인 2016년 10월 25일부터다. 최순실의 독일 도피가 이미 알려졌고, 정유라의 이대 학사 비리를 비롯해 각종 의혹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조짐인데도 불구하고 조선과 TV조선은 10월 24일 까지 ‘최순실 금기어’를 유지하고 있었다.  ‘굴복’이 아니면 달리 해석할 수가 없는 이런 정황에 대해 조선과 TV조선의 체면을 살려서 설명하려다보니 실제 흐름과는 결이 다른 궁색한 해설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의지하는 ‘아군’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던 보수 언론권력 조선일보와 대통령 권력 박근혜는 왜 상대를 넘어뜨려야만 하는 파국의 관계로 치달았을까? 지금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박 정권에 몸 담았던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장면 중의 하나가 조선일보와의 막장 싸움 국면일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