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우즈…나상욱과 친교
나상욱, 타이거 우즈의 스승 '부치 하먼'의 수제자 타이거 우즈, 나상욱에게 즉석 스윙 레슨도 …같은 스승에게 배운 공통점 프로포폴 과용 마이클 잭슨 죽음 취재한 일도 잊지 못해 영원한 LA특파원으로 남고 싶어…스포츠 문화 정치 등에 관심
최고의 화제 인물은 역시 타이거 우즈
뭐니뭐니해도 가장 인상적인 스타 골퍼로는, 재기에 성공한 뒤 몇 달 전 LA인근의 교통사고로 재활 중인 타이거 우즈(45)를 빼놓을 수 없다. 2003년 조지아주의 오거스타 내셔널클럽에서 벌어진 마스터스 현장을 취재했다. 당시 우즈는 사상 초유의 3년 연속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또 1973년 한장상 프로에 이어 최경주(51)가 한국선수로는 두번째로 초록색 마스터스 무대를 밟게돼 관심이 컸다. 결국 캐나다의 왼손잡이 마이크 위어가 우즈의 3년 연속 우승을 가로막았다.
오거스타에 첫선을 보인 최경주 덕분에 난생 처음 한국기자들에게도 크리덴셜(취재허가증)이 발부됐다. 그전까지는 취재가 불허된 보수적인 대회였다. ‘황금의 곰’ 잭 니클라우스와 한조가 된 ‘코리안 탱크’는 1라운드 첫 3개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으며 단독선두로 나섰지만 4번홀(파3) 더블보기로 흥이 깨지며 16위를 차지했다. KJ는 대회 직후 비제이 싱(피지)으로부터 소개받은 캐디를 해고하기도 했다. 필자는 4개월 뒤 오하이오주 애크론의 파이어스톤CC에서 열린 WGC 브릿지스톤 인비테이셔널에서 최경주를 다시 만나 한인 후배 케빈 나(38ㆍ나상욱)를 소개해 주었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우즈는 이때도 우승 트로피를 대런 클라크(북아일랜드)에게 헌납했다.
한편 당시 최경주를 처음 만나 여러가지 조언을 받은 케빈 나는 7살때 미국에 이민 왔다. 그는 “우즈가 치는 볼은 나랑 차원이 틀리다. 로켓처럼 하늘에서 두차례 솟구치며 폭탄처럼 떨어지고 아이언샷도 스핀이 많이 걸려 그린 위에서 한참 뒷걸음질 친다”고 설명했다. LA출신인 케빈이 고교생일때부터 취재했는데 엄격한 가정교육 때문인지 누구에게나 매너가 좋았다. 우즈의 스승이기도 한 부치 하먼의 수제자라 두 골퍼는 남달리 친한 사이다. 마스터스에서 케빈으로부터 사인을 부탁 받자 연습중이던 우즈는 노란색 오거스타 깃발을 쥐고 오른발을 구부린채 마커로 서명을 해줬다. “그 자세로 글씨 괜찮겠느냐”고 케빈이 물어보자 “예전부터 이런 식으로 하는데 익숙하다”고 조크하며 스윙에 대해 즉석 레슨을 해주기도 했다. 원래 프로끼리는 절대로 영업 비밀을 가르쳐 주지 않는 법이지만 우즈는 같은 아시아계인 케빈에게 상당히 친절했다.
우즈를 바로 앞에서 보면 피부색이 전혀 어둡지 않고 코와 눈, 얼굴 형태도 마치 한국인을 닮았다. 모친 쿨티다 여사가 태국 출신인데 15년전 프로풋볼(NFL) 결승인 수퍼볼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한국계 하인스 워드(피츠버그 스틸러스)와 말투ㆍ표정 스타일까지 흡사하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것 같다. 우즈는 스캔들 이후 10년의 공백을 딛고 2년전 마스터스 정상에 올랐지만 올해초 대형 교통사고를 야기하며 또다시 재기가 불투명해졌다.
필자 역시 수많은 국내외 골프장을 섭렵해봤지만 오거스타처럼 아름답고 갤러리 수준이 높은 곳은 경험한 적이 없다. 최경주 역시 “모든 면에서 매스터스가 단연 최고”라고 극찬한다. 지금은 세상이 좋아져서 LPGA 대회때마다 40명 이상, PGA 이벤트도 5명 이상의 한국선수가 필드를 누비지만 마스터스만큼은 여전히 범접하기 어려운 장소로 남아있다.
미국서 가장 큰 축제인 프로풋볼(NFL) ‘수퍼볼’도 한국기자로는 유일하게 10차례 출장가서 서울본사까지 기사를 보냈다. 대학풋볼(NCAA) 1월1일 축제인 로즈볼 역시 매년 정월 초하루에 19차례 취재하며 풋볼 전도사를 자임하기에 이르렀다. 2003년 FIFA 여자 월드컵 독일-스웨덴의 결승전과 2016년 100주년 기념 코파 아메리카(남미 축구선수권) 브라질-에콰도르 경기도 인상적이었다. 3년전에는 손흥민의 토트넘 핫스퍼-FC바르셀로나의 인터내셔널 챔피언스컵을 경험했다. 축구 불모지에서 남의 나라 클럽팀끼리 경기하는데 무려 7만명 가까이 입장했다. 손흥민도 그 경기에서 한골을 넣었고 이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서 금메달까지 따내며 병역문제를 해결했다.
알량한 일본어 덕분에 미국에서 다르빗슈 유(샌디에고 파드레스)ㆍ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ㆍ마쯔이 히데키(뉴욕 양키스)ㆍ노모 히데오(LA 다저스), LPGA 미야자토 아이 같은 스타들을 취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서울 잠실구장에서 최동원ㆍ선동열을 보다가 클레이튼 커쇼ㆍ데릭 지터, 농구는 허재ㆍ강동희ㆍ우지원을 만나다 프로농구(NBA) 코비 브라이언트ㆍ섀킬 오닐ㆍ르브론 제임스로 취재원이 바뀌었다. 농구의 3명은 모두 LA 레이커스 출신이란 공통점이 있다.
할리우드의 연예계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12년전 마이클 잭슨이 베벌리힐스 자택에서 프로포폴 과용에 따른 심장마비로 쓰러진뒤 UCLA 로널드 레이건 병원서 숨졌다.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거행된 추모식 현장 르포 기사가 중앙일보 국제면 톱으로 실려 큰 보람을 느꼈다. 44년전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때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42)가 요절해 난리가 났고 일본에 들렀을때 왕정치(요미우리 자이언츠)가 행크 애런의 통산 최다홈런 기록을 돌파해 호외가 발행됐는데 뉴스 주변에 머무는 인생이 그때부터 시작됐던 것 같다. 그러나 사건 취재 때마다 인생의 무상함도 함께 느끼게 된다.
어느덧 언론계에 뛰어든지 33년째가 됐다. 대학 졸업후 서울과 미국에서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저널리즘만 고집하고 있다. 이력서도 ‘기자’라는 한줄로 아주 간단하다. 스포츠의 천국으로 불리는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다양한 경험을 이어가며 지천명에도 자칭 ‘LA특파원’이란 생각으로 지내고 있다. 개인적 영욕은 차치하고라도 아이들이 입시 지옥ㆍ과외 등 비교적 스트레스를 덜 받고 노력한 만큼 이루는 시스템에서 지내는 일은 행운이다. 이제 생각이 젊은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매체에 몸담게 됐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돼 엔돌핀-아드레날린이 또다시 도는 기분이다. 스포츠-문화-정치 등 국제 화제에 관심이 큰 독자들의 소중한 의견을 기다린다.
봉화식은 남가주대(USC)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88년부터 중앙일보 본사와 LA지사에서 근무했다. 기자 생활의 절반씩을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보냈다. 주로 사회부와 스포츠부에서 근무했으며 2020 미국 대선-총선을 담당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영 김-미셸 박 스틸 연방 하원의원 등 두 한인 여성 정치인의 탄생 현장을 취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