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고려아연, 이그니오 인수 5,800억, 초우량 재활용 기업 2개 살 돈

이그니오 인수 비슷한 시기 美 '도시광산' 업계 대규모 M&A 매출 2,700억 기업, 3,900억에 팔려...재활용시설 17개 갖춘 업체도 2,380억원 고려아연, 이그니오 인수 후에야 도시광산 사업 본격화...매입 이유 의문

2024-10-18     애틀랜타=이상연 기자

고려아연이 적자 신생기업인 매출 600억원대 이그니오 홀딩스를 무려 5,800억원에 인수했던 비슷한 시기, 매출과 순익은 물론 공급망 기술력 등 모든 면에서 이그니오를 앞서는 초우량 재활용 기업이 훨씬 낮은 가격에 인수∙합병(M&A)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려아연은 이그니오 인수에 대해 “회사 가치를 과대평가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지난달 '재활용 업체 가치비교'라는 해명자료를 내놓았다.

이 자료와 전문 매체들에 따르면 고려아연이 이그니오를 인수한 2022년을 전후해 미국의 도시광산(재활용을 통한 금속 생산) 산업 분야에서 대규모 인수∙합병(M&A)이 이어졌다. 미국 업계 전문지 '리사이클링 투데이'는 2022년 11월 기사를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금속 재활용 업체들은 공급망 혼란과 원자재 시장 긴장에 따른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2021년부터 활발한 M&A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2021년에 1억달러(약 1,350억원)가 넘는 재활용 업체 M&A가 10건 이상 보고됐고, 2022년에도 이런 트렌드가 이어졌다. 고려아연이 지난달 내놓은 해명자료에도 이그니오 인수와 규모 면에서 비교될 만한 몇 가지 M&A 사례가 소개됐다. 고려아연은 2022년 이그니오를 4억4,244만달러(당시 환율기준 한화 5,800억원)에 인수했다. 

◇ 초우량 금속 재활용 기업도 2,000억~3,000억원 수준

우선 미국 3위 구리 스크랩(재활용) 수출기업인 'SA리사이클링'은 2021년 11월 미 동부지역 최대 비철금속 재활용업체 가운데 한 곳인 'PSC메탈'을 2억9,000만달러(3,900억원)에 인수했다. 1889년 설립돼 135년 역사를 지닌 PSC 메탈은 직원 200명에 연매출만 2억달러(2,700억원)에 이른다. 

이 회사는 오하이오와 펜실베이니아, 인디애나, 일리노이, 미주리, 켄터키, 테네시, 조지아, 앨라배마주 등 9곳에 대형 재활용 처리시설을 갖고 있다. 또한 전국의 시설을 직접 소유해 부동산 자산이 많고, 완성형 비철금속을 생산할 수 있는 제련소도 운영하고 있다. 

고려아연이 지난달 발표한 재활용 업체 가치 비교 자료.


호주 제철기업 '블루스코프'는 같은 시기 미국 인디애나주에 본사를 둔 철 스크랩 기업 '메탈X(MetalX)'를 2억4,000만달러(3,250억원)에 인수했다. 메탈X는 연매출 1억8,600만달러(2,550억원), 세전 영업이익(EBITDA) 7,855만달러(1,000억원)에 이르는 초우량 기업이다. 특히 블루스코프에 인수된 뒤 비철금속 스크랩 분야에 진출해 2022년 9월 알루미늄 제련소를 보유한 'SRT알루미늄'을 합병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금속 스크랩 기업인 '심스(Sims, Ltd)'는 2023년 8월 미국 재활용 업체 '볼티모어 스크랩'을 1억7,700만달러(2,380억원)에 인수했다. 볼티모어 스크랩은 메릴랜드와 버지니아, 뉴욕주 등 동부 지역에 17개 재활용 처리시설을 운영하며 연간 60만톤 이상의 비철금속을 판매하는 초우량 기업이다. 기업 M&A 평가 때 EV/EBITDA(기업가치를 세전 영업이익으로 나눈 값)가 10 이하면 우량기업으로 평가받는데, 이 회사는 EV/EBITDA 3년 평균이 5.4로 매우 우수하다.

◇ 공급망-실적 모두 갖춘 우량기업 대신 신생기업 선택한 이유는?

그런데 고려아연은 2022년 7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친 지분 매입을 통해 설립 1년 남짓의 이그니오 홀딩스를 5,800억원에 인수했다. 오랜 역사에 매출과 순익, 공급망 모두 탄탄한 초우량기업 2개를 인수할 비용으로 매출 600억원대, 그것도 트레이딩 매출이 대부분인 신생기업 1곳에 베팅을 한 것이다.

당시 고려아연은 이사회 보고 등을 통해 "구리 수요 확대와 기후변화 등에 대응해 미국 전자폐기물 스크랩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이그니오 홀딩스를 인수한다"면서 "이그니오 프랑스 공장(연간 2만9,000톤 생산)의 시설을 2024년까지 3만톤 추가 증설하고 연간 9만톤 규모의 미국 조지아 공장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또한 "고려아연 소성(pyrolysis∙고온 처리의 한 방식) 공정의 전문성과 이그니오의 전자폐기물(E-Waste) 리사이클링에 대한 수년간의 경험을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공급망 리스크를 완화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수 당시 이그니오는 미국에서 전자폐기물 리사이클링 경험이 전혀 없는 기업이었다. 전자폐기물 파쇄 및 분리 공정을 담당하는 이그니오의 자회사 EvTerra는 고려아연 인수 후에야 본격적인 운영이 시작됐다. EvTerra 1호 시설인 애틀랜타 공장은 2022년 초 문을 열었다. 또 2호 라스베이거스 공장은 같은 해 11월, 3호 시카고 공장은 2023년 4월, 4호 텍사스 공장은 2023년 9월 운영을 시작했다.

4개 모두 전자폐기물에서 분리된 중간재를 공급하는 곳이어서, 이를 최종 처리하는 시설이 미국 내에 없을 경우 한국 프랑스 등으로 보내야 해 막대한 물류 비용이 소요된다. 더욱이 미국 전자폐기물 시장 진출을 위한 핵심 투자로 꼽혔던 조지아주 서배너 소성 공장 계획은 소리소문 없이 중단됐고 이후 어떠한 대체 투자 계획도 발표되지 않았다.

이를 반영하듯 이그니오는 지난해 매출 809억원에 손실 530억원을 기록했다. 또한 전자폐기물(E-Waste) 분야에서 독자적인 공급망을 확보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2023년 상반기 기준 이그니오의 전자폐기물 원재료 매입액은 185만달러(25억원)에 그쳤다.

대신 경매시장 등에서 런던금속거래소(LME) 가격 기준으로 들여오는 인쇄기판(PCB) 매입액이 1,600만달러(215억원)로 원재료 매입액의 대부분이었다. 재활용 업계에서는 "시장가격으로 확보한 PCB로는 다른 업체에 비해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면서 “이는 자체적인 전자폐기물 공급망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 고려아연이 포기한 조지아주에서 독일 재활용 기업 '대박'

이그니오가 자체 소성시설에 대한 투자를 포기한 조지아주에서는 지난해 11월 미국 대통령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참석한 가운데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독일 금속재활용 기업 '오러비스(Aurubis)'가 마스터스 골프로 유명한 조지아주 오거스타에 건설한 미국 제1호 비철금속 재활용 소성시설(Secondary Smelter) 준공 축하행사였다.

지난해 11월 미국 조지아주 오러비스 금속 재활용 공장을 방문한 질 바이든 여사. /Aurubis 제공


오러비스는 이그니오와 비슷한 시기에 조지아주 투자계획을 밝혔고, 이후 2년만에 공장을 건설해 연간 18만톤 이상의 구리 스크랩과 PCB 등을 처리한다. 바이든 여사는 이 공장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며 미국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이상적인 투자라고 극찬했다. 오러비스 롤랜드 해링스 CEO는 "적극적인 지원을 해준 조지아주 정부에 감사하며, 매년 5% 이상 증가하는 미국 금속 재활용 시장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오르겠다”고 답했다.

고려아연은 조지아 투자 철회에 대해 "환경 측면에서 탄소 배출이 많아 불필요한 시설이라는 판단에다 부동산 매입 비용도 증가해 포기했다"면서 "이그니오의 전자폐기물 파쇄 기술이 세계 1위인 고려아연에 비해 떨어진 점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급망과 기술력 등에서 업계 검증을 받지 못한 신생기업을 거액에 인수하고 추가 투자도 주저하는 배경에 의혹이 일고 있다는 점에서 고려아연이 이그니오 인수 실사보고서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이상연은 1994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특별취재부 사회부 경제부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2005년 미국 조지아대학교(UGA)에서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애틀랜타와 미주 한인 사회를 커버하는 아메리카K 미디어 그룹을 설립해 현재 대표 기자로 재직 중이며, 뉴스버스 객원특파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