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판타지 ‘눈 사과’ 그리는 화가 최정혁

2021-10-09     심정택 칼럼니스트

서양화가 최정혁은 오랫동안 사과를 그려왔다. 대상은 농장에서 수확하기 전 나무에 매달린 모습이다. 이미 수확이 끝나고 철이 지난, 때 이른 초설(初雪)을 맞이한 사과가 그의 아이콘이다. 계절이 바뀌는 초입에서 자연에서 벌어지는 현상도 어설프다. 사과 위 쌓인 두께로 보아 첫 눈임에도 대설(大雪)임을 짐작케 한다. 눈의 무게로 사과 줄기가 부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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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에 흰 눈이 수북이 쌓여있거나 봄철에나 볼 수 있음직한 연둣빛 이파리를 목격할 수 있다. ‘꽃 핀’ 사과도 있다. 사과 꽃이 봄철에 피기에 영근 사과와는 병존할 수 없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눈 사과’역시 존재할 수 있는가 의문 부호가 찍힌다. 

그의 작품은 어떤 이의 ‘라이프 스토리’조차 헷갈리게 한다. 실제 사과 농장을 경영했다는 이조차 눈 사과의 존재, 겨울이 덮쳐 가을에 수확하는 사과에 눈이 쌓인 현상을 경험했다고 주장한다.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일이다. 

전통 산수화는 어차피 판타지이다. 무릉도원이 펼쳐진 곳은 물이 흐르고 새가 지저귄다. 연못에는 물고기가 세상을 본다. 검박한 한 칸 집에는 도인이 이 모든 것을 내다보며 즐긴다. 

현대의 풍경화도 이와 다를까?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 ~ )가 즐겨 사생한 고향 영국 요크셔 지방, 이대원의 ‘농원’도 동양적 미학이 추구하는 세계와 다르지 않다. 달라진 것은 대상을 인지하고 인식하는 통로일 뿐이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화면을 통해 인식하는 이미지는 자연적인 것과는 다르다. 화면에서 본 사과 이미지는 인위적이고 전자적이다. 실제 사과는 원색적이지도 인공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동영상이나 정지된(스틸) 이미지로 자연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의 시각은, 빛이 화면을 비추어 대상을 보도록 유전자화 되어있다. 한국은 1960년대만 해도 전기가 흔치 않아 도시 주변과 농촌 사람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백남준(1932 ~ 2006)의 비디오 아트도 1960년대 이후 지배적 미디어였던 텔레비젼 브라운관(CRT)을 해킹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한국은 1970년대 전기가 완전 보급되면서 흑백 텔레비전 방송을 볼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확실한 아날로그(analogue) 시대이다. 

1980년대에 칼라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었고 집집마다 칼라TV를 갖췄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자동차 대중화 시대가 도래하였다. 1990년대 본격 등장한 핸드폰은 피처폰이었다. 컴퓨터는 PC를 거쳐 노트북으로 바뀌었다. 영국 밴드 ‘더 버글스’(The Buggles)가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 the radio star)를 노래했던 것이 1979년인데, 40여년 사이에 TV와 컴퓨터를 넘어 2010년대부터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했다. 디지털(digital) 시대가 열린 것이다. 자연스럽게 사물을 보는 눈이 자연광에서 벗어나 인공 광에 익숙해져 왔다.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폴 세잔(PAUL CÉZANNE. 1839 ~ 1906)은 정물화 주제로 사과를 좋아했다. 사과는 인간의 원초성을 자극한다. 브라질 출신 팝아티스트 '로메로 브리토(Romero Britto)의 조각 작품 ‘빅 애플’은 성서 속 아담을 유혹하는 뱀을 등장시킨다.

세잔은 여러 각도에서 관찰한 물체들을 한 화면에 담는다. 관점과 평면을 분해하고 1차원의 시각에서 그리던 그림을 2차원의 시각으로 발전시켰다. 세잔의 사과는 외부의 빛에 반응하는 실내로 옮겨온 대상이다. 

1970년대생인 최정혁의 사과는 LCD 디스플레이 백면에서 자체 발광하는 빛으로 볼수 있는 바깥 풍경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이론가인 로버트 벤투리는 ‘화소로 된 전자 표면’은 탈공업화된 정보화 사회에 실시간으로 무한한 양의 정보를 소통할 수 있는 사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자 표면, 디스플레이는 시간과 시간, 공간과 공간을 이어준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빛의 반사로 마젠타(Magenta)·노랑(Yellow)·시안(Cyan·하늘색) 3원색의 감산혼합(subtractive mixture, 減算混合)으로 여러 강도로 섞으면 어떤 색이라도 만들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가산혼합(additive color mixture, 加算混合) 방식으로 대상을 본다. 가산혼합은 빛을 가하여 색을 혼합할 때, 혼합한 색이 원래의 색보다 밝아(명도가 높아지는)진다. 가산혼합에서는 적·녹·청의 3원색을 여러 강도로 섞으면 어떤 색이라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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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에 따라 감성도 바뀐다. 디지털화가 가속화될수록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애매모호하게 된다. 최정혁은 디지털 디스플레이 시대에 걸맞는 전자파의 화사함과 사람들의 기억 속 뇌리에 잠자고 있을 익숙한 광경을 그려낸다.

세잔의 정물은 있는 것(세팅 된)을 그리지만 최정혁은 사생의 놓여진 것처럼 보인 풍경을 그렸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사생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그리고 사진 작업을 한다. 최정혁은 고향 김천의 사과 농장 한 켠에 인공적으로 나무에 철사로 묶어놓은(연출한) 사과의 이미지를 가져와 그린다.  

캔버스 화면을 대신하는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작품들이 미디어아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다. 최정혁의 작품은 물리적으로 기술적 레퍼런스(reference)가 작동하지 않는 전통적인 캔버스를 활용하면서도 디지털 시대가 가져온 인간의 심상에 드리운 풍경을 표현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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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오감과 상호작용성(interactive)을 실험한 비디오 아트가 디지털 시대에 요구하는 변화에 최정혁이 대안을 내놓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최정혁은 하드보드를 오브제를 활용한 방식의 아날로그적인 부조 작업을 실험하고 있어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오가는 레트로(retro)에도 관심을 가진다.  

사과는 수십년이 흘러 발견한 빛 바랜 사진 속 무리의 사람들과 같이 서 있는 낯선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 우리의 무의식 속 관념에 박힌 원죄를 상기시키는 사과의 형태, 빛깔 등 물성을 매개로 지난 시간대 공간과 사람들을 만난다.

요즘 사과는 능금이라 불리던 시절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는 베어 물 때의 시큼한 즙이 고여 나오는 사과는 아니다. 그런 사과는 잘게 잘라 설탕을 넣고 달여 쨈을 만든다. 쨈은 빵에 발라 먹어야 한다. 빵은 디지털 시대의 환경을 의미한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에서 주인공 존디는 붉은 벽돌담의 담쟁이 넝쿨에서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자신의 생명도 떨어질 거라 믿었다. 밤새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다. 이튿날 잎새가 한장 남아 있었다. 늙은 화가 버먼이 목숨을 걸고 담벼락에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삶의 희망을 예술에서 발견하곤 한다. 예술은 처절할 수도 있는 실재 또는 그 이상이기도 하지만 환타지를 보여주는 상상 기제(機制)이기도 하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3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