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틀을 깨는 자유분방함을 주는 영화 ‘비긴 어게인’
<비긴 어게인>(2014)의 매력은 (현실의) 틀을 깨는 자유분방함이다. 댄(마크 러팔로)이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노래를 들을 때 상상한 편곡은 연주자 없이 연주된다. 음반 제작을 위한 스튜디오를 못 빌리자 거리에서 연주하고 녹음한다. 밴드부원들은 다양한 곳에서 특이한 이유로 모집된다. 그런데 그들의 연주와 노래는 울컥하게 한다. 이러한 감동의 중심에는 키이라 나이틀리와 마크 러팔로가 있다. 키이라 나이틀리의 노래 솜씨에 반했다면, 마크 러팔로는 그를 애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댄과 그레타가 음악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듯이, 우리도 <비긴 어게인>을 통해 위로받는다.
자유분방함이 제공하는 팔색조 기쁨
이 영화는 관객이 처한 상황에 따라 선호 장면과 노래가 변하는 팔색조인 것 같다. 처음 봤을 때와 달리 좋아하는 장면과 노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1차 관람 때는 댄과 그레타가 Y자형 이어폰을 끼고 거리에 앉아 서로의 음악을 듣는 장면이 나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작은 클럽에서 댄의 상상대로 악기가 움직이는 신이 더 마음에 들었다.
댄이 우연히 들어간 클럽에서 그레타는 절친인 스티브(제임스 코든)의 권유로 준비 없이 무대에 오른다. 그녀는 자신이 작곡한 아직 미완성의 노래를 부른다. 제목은 'A Step You Can’t Take Back'이다. 그레타는 “도시에 홀로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곡”이라고 소개한다. 막 실연을 당한 터라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담담하지만, 심금을 울린다. 그때 이 노래를 듣고 있던 댄은 상상속에서 편곡을 한다. 그러자 사람은 없지만, 그의 생각대로 악기가 연주된다. 드럼이 쳐지고, 피아노가 연주되고, 첼로가 현을 켜고, 바이올린이 시작된다. 그러면서 그레타의 음악은 점차 풍성해져 간다. 마치 오케스트라로 연주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댄의 생각을 시각 및 청각화해서 보여 주는 점이 신선하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가장 사랑한 곡은 'Lost Stars'였다. 현재 내 휴대폰 컬러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A Step You Can’t Take Back'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음악을 듣는데, 호감이 달라졌다.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당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비긴 어게인>에 그만큼 좋은 곡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밴드가 연주 및 녹음하는 장소도 예상 밖이다. 이들은 뉴욕 뒷 골목길, 지하철, 차이나타운, 센트럴 파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옆 옥상 등 다양한 곳에서 매번 다른 노래를 녹음한다. 주변 소음을 배경음으로 삼으면서. 이를 통해 뉴욕의 곳곳을 자연스럽게 소개한다. 결과적으로 관객에게는 영화 음악의 다지선다 선택지를 남긴다.
밴드부원의 다채로운 구성도 인상적이다. 가장 먼저 편입된 밴드부원은 스티브이다. 이후로 학원에서 연주 중인 피아노 연주자와 클래식을 전공하나, 클래식에 지친 첼로와 바이올리니스트를 데려온다. 트러블 검(시로 그린)으로부터 베이스를 치는 친구를 데려오기도 한다. 나중에는 댄과 댄의 딸도 기타 연주자로 합류한다. 밴드 구성은 현실과 타협한 결과물이지만, 이러한 구성은 예상치 못한 하모니를 발생한다. 특히, 마침내 모든 부원이 실내에 모여 함께 연주하는 장면에선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몰려왔다. 완전체가 된 그들이 내뿜는 에너지와 열정때문 일 수도 있다.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배우 - 키이라 나이틀리와 마크 러팔로
<비긴 어게인>의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는 <오만과 편견>(2005)의 엘리자베스 베넷과 상통한다. 두 여성 모두 자신의 신념을 믿고 그 시대에 맞서는 당찬 역할이다. 비록 남친과의 이별 후 분노를 노래에 담아 보내기도 하지만... 캐리비안 해적 시리즈에서 연기한 엘리자베스 스완 또한 매우 용감한 역할로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다. 그레타의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면과도 잘 맞는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여기서 그녀의 노래 솜씨를 뽐낸다. 작곡자로 등장하지만, 댄과 협업하면서 모든 노래를 직접 부른다. 영화 분위기와 잘 어울리고, 극 중에 그녀가 작곡한 곡의 분위기와도 잘 맞는다. 배우로서 이런 노래 실력을 가진 건 행운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발견한 배우는 바로 마크 러팔로다. 마블 시리즈에서 헐크 역할을 곧 잘했지만, 그렇게 매력적이진 않았다. 그런데 여기선 실패하고 좌절한 음반 프로듀서로의 그의 연기는 뛰어나다. 회사에서 쫓겨날 때 자기가 산 그림이라고 그림을 떼어 가는 장면은 압권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할 수 있는 요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 울리는 경보음 소리는 그를 당황하게도 하지만, 관객에게는 웃음을 선사한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맞는 연기다.
집에서 쫓겨나 혼자 사는 남자도 잘 연기한다. 때론 돈이 없어 술을 먹고 딸과 함께 도망가는 아버지로서 창피한 행동을 하고, 심지어 초면인 그레타에게도 술을 사라고 하는 그는 밉기보다는 애처로워 보인다.
앞서 논의한 자유분방함의 최고치는 쿠키영상이다. 음반 회사의 계약조건에 어이없어하던 그레타는, 댄의 동의하에 온라인에서 1달러에 음반을 판매한다. 10달러에 팔아도 자신들이 받을 수 있는 그 가격에. 존 카니 감독은 음악을 이용해 정해진 규칙을 무시하면서 관객에는 일종의 통쾌함을 전하고 있다. 10년이 지나서 봐도 여전히 아름다운 영화다.
김주희는 뉴질랜드 와이카토(Waikato)대학에서 ‘영상과 미디어’를 전공한 예술학 박사이다. 뉴질랜드는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2000~2003) 시리즈와 <킹콩>(2005)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영화 제작 강국이다.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다. 여전히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한 채 유튜브 <영화와의 대화>를 운영하는 유튜버로 활동하면서, 뉴스버스에 영화칼럼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