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대교 진짜 반전은 '펜스 보강' 아닌 자살시도 없는 사회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코로나19가 위세를 떨치던 초기 2년간, 그러니까 2020년부터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회사로 일주일에 한두 번 가서 일했다. 대중교통을 타는 게 찝찝할 때였다. 헬스센터에서 운동도 한동안 여의찮았다. 집이 한강 가까이 있어서, 운동을 위해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한강공원을 달렸다. 공덕동 회사까지도 자전거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험 삼아 휴일 아침에 달려보니, 마구 페달을 밟으면 40분 좀 넘게 걸렸다. 어떤 때는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보다 자전거가 효율적이었다. 마침 집 앞에 서울시 대여자전거 따릉이 거치소가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가끔 한강공원 길로 자전거를 타고 마포대교를 건너 사무실로 가곤 했다.
마포에 있는 초중고를 다녔던 관계로 어릴 때부터 마포대교는 낯설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삼각지에 있는 전쟁기념관의 전신 같은 곳이 여의도에 있어서 소풍을 가려고 처음 마포대교를 걸어서 건넜다. 이후 중고교 시절에는 여의도 사는 친구들 집에 놀러가며 마포대교를 오갔다. 주로 버스를 타고 건넜지만, 여럿이 어울려 놀다가 내친김에 걸어서 건넌 경우도 많았다. 대학 시절에는 여의도 광장에서 자주 열린 정치집회 때문에 걸어 다니기도 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몰리니까, 경찰이 아예 걸어서 건너도록 통행 관리를 했다.
마포대교는 그런 추억이 우선이었다. 그러다가 2012년 9월 ‘생명의 다리’ 캠페인이 나왔다. 마포대교를 걸어가면 난간에 조명이 들어오며 글귀들이 나타난다. ‘밥은 먹었어?’, ‘요즘 바빠?’ 등의 질문처럼 말을 건넨 후, ‘가슴이 먹먹할 때 어때요? 노래 한번 불러 보는 거’,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같은 문장이 뒤 잇는다. 칸 라이온즈 등 많은 광고제에서 상을 받았고, 사회에 긍정적 파장도 일으킨 바람직한 광고로 꼽혔다. 그 캠페인이 성공하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은 뒤로 가고 마포대교 하면 ‘자살’이 먼저 연상됐다. 자전거로 마포대교를 건널 때도 풍경이나 다리 위의 밤섬 생태체험관보다 ‘생명의 다리’ 캠페인이 시작된 직후 세워진 ‘한 번만 더’ 동상이 눈에 먼저 들어오고, 기억에 남았다.
마포대교의 연상이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게 바뀐 게 문제였다. 한국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를 기록한 건 오래되었는데, 그 상징이 마포대교가 되어버렸다. 캠페인 이후 급격히 늘어난 마포대교에서의 자살 시도자 수가 증거처럼 제기되었다. 미국 금문교나 영국의 에드워드 다리 같은 자살의 명소로 마포대교가 인지되었다. 캠페인 이후 2년 동안 투신율이 6배가 늘었다고 한다. 예기치 않은 반전이다.
서울시는 그런 반전에 맞서 자살 예방을 위한 순찰을 강화하고, CCTV를 더 많이 설치하며, SOS 생명의전화 등 다양한 자살 예방 대책을 시행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 한 야당 의원이 “교량에서 자살 시도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펜스와 그물망 설치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했다.
꼭 그 발언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서울시는 안전펜스를 1.5미터로 만들었다가, 2016년 12월에는 2.5m로 높였다고 한다. 이후 투신자살 건수가 211건(2016년)에서 163건(2017년)으로 감소했다며 긍정 평가를 했다. 그러고는 자살 예방 문구가 실효성이 없다고 봤는지 2019년 마포대교에 쓰인 문구를 모두 없앴다. 안전펜스 강화 효과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던 것 같다. 소방본부 자료를 보면, 2021년부터 2023년 9월까지 서울 시내 한강 다리 위 자살 시도 건수는 총 2,345건에 달했는데, 마포대교가 622건으로 가장 많았다. 한강대교 232건, 양화대교 172건, 한남대교 158건, 동작대교 138건 등이 뒤를 이었다.
기술 발전에 맞춘 예방 시스템도 도입되었다. 딥러닝 기반의 인공지능이 주인공이었다. 4곳의 한강 수난구조대에 흩어져 있던 모니터링 체계를 통합해 AI가 CCTV 영상을 딥러닝으로 학습해 투신 시도자의 행동 패턴을 찾는 방식이라고 한다. 그 결과 자살 시도로 숨진 사람이 2021년 13명에서 2023년에는 2명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갑작스러운 방문으로 마포대교가 다시 화제에 올랐다. 미국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무너지고, 아프간 전쟁이 촉발된 날로만 기억하는 9월 11일이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라는 걸 덕분에 알았다. 내린 교시나 나온 대책은 펜스 높이와 AI 등 2012년 이후에 나왔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것 같다. 2012년 처음 ‘생명의 다리’ 캠페인이 시작되었을 때, 이런 댓글들이 나왔다. ‘살고 싶은 나라가 아니라 죽지 못하는 사회가 됐다’ ‘자살을 어렵게 만들지 말고 자살 시도를 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데서 최근 2년간 다시 증가한다는 자살률의 추세를 누르는 진짜 반전이 나올 것이다.
박재항은 삼성과 현대차그룹의 국내외 광고를 광고주와 대행사 양쪽에서 모두 경험하며, 변방의 싸구려에서 세계적 브랜드로 떠오르는 과정을 함께 한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삼국지 키즈로 동양사를 학부에서 전공했고, 미국 뉴욕에서 대학원과 주재원 생활을 했다. 인문학과 글로벌 관점에서 마케팅을 연결하여 기획하고 해석하며, 대학 강의와 강연·기고 활동을 통해 전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