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과 청인 세계를 이어주는 영화 '코다(CODA)'
영화제목 ‘코다(CODA)’의 의미를 아시나요?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코다(CODA)는 Child of Deaf Adult의 약어로 청각장애인 부모에서 자란 청인 자녀를 뜻한다. 영화 <코다>는 청인 17세 소녀 루비의 성장과 청각장애인 가족의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가족을 위한 역할과 소녀의 소망 간의 갈등도 보여주지만, 감독은 가족 각자가 마주하는 현실도 가감 없이 그리고 있다. 단순히 주인공 루비(에밀리아 존스)가 음악가로 성장하는 스토리로 치부(속단)하지 말자. 루비와 가족 간 관계 그리고 루비 가족과 사회와의 관계에 초점을 두면, 이들에 대한 훨씬 많은 공감과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청각장애인 가족에서 코다의 위치
이 영화를 통해 ‘코다’라는 용어와 의미를 처음 알았다. 어쩌면 이들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코다> 영화 덕분에 농인과 청인 세계를 연결해 주는 코다의 중요성과, 코다와 그들 가족이 겪는 많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코다는 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어려서부터 가족을 위한 대변자이자 사회와의 소통 창구가 된다.
루비는 청각장애자인 부모, 오빠와 함께 살고 있는데, 가족 중 유일하게 들을 수 있어 가족과 사회를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고리이다. 루비 가족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가족은 외부와의 의사소통을 그녀에게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수어가 주요 소통 수단인 가족과 함께 있을 때 루비는 소외감을 느낀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가족과 공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회에서 환영받는 것도 아니다. 루비는 자신이 양쪽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어느 날, 좋아하는 남학생을 쫓아 가입한 합창부의 음악 선생님이 그녀의 노래 재능을 발견한다. 음악 선생님은 그녀가 버클리 음대에 장학생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그녀 가족은 그녀가 노래하기보단 남아서 가족을 돕고 가족과 함께 살기를 원한다. 루비는 노래하고 싶은 마음과 집에 남아 가족을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 속에 매우 갈등한다. 단, 강도의 차이가 있을 순 있겠지만, 여기서 루비가 느끼는 갈등은 일반인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고민이다. 자신의 꿈을 추구해야 할지 아니면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책임을 다할 것이냐의 문제는 많은 사람에게 공통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와 같이 보면 좋은 영화는 <나는 보리>이다. 2020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로 코다인 ‘보리’가 주인공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보리’도 역시 가족과 외부세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다. 그런데 보리는 가족과 함께 있을 때 소외감을 더 많이 느낀다. 가족이 수어를 하면서 행복해할 때 외로움을 느낀다. 심지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소리를 잃어버리기 위해 노력한다. 소리를 듣는 자신이 가족과 있을 때는 비정상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소리가 안 들리는 척하면서 ‘보리’는 동생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수어가 능숙해지면서 가족과의 대화도 풍성해지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의 불편함을 체험하게 된다. 비록 연령과 국적이 다르지만, 청인 자녀들의 역할과 그들이 경험하는 어려움은 비슷해 보인다.
루비 가족의 변화와 성장
션 헤이더 감독은 루비 뿐만아니라 세 명의 다른 가족의 변화와 성장도 보여주고 있다. 루비를 제외한 루비의 아빠, 엄마, 오빠 역할은 모두 청각장애인이 직접 연기를 했다. 아빠 프랭크(트로이 코처)는 농인이라 대화를 못 한다는 이유로 매번 자식 뒤에 숨는다. 하지만, 생선 매입인의 불공정한 대우와 정부의 부당한 어획량 통제에 마침내 목소리를 내고 주변 어업인들과 함께 공판장을 연다. 이에 따라 루비의 역할은 더욱 커지고 중요해진다. 프랭크는 루비에게 그녀가 가족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강조한다.
일반인과의 교류를 두려워하는 엄마 재키(말리 매트린)는 농인 모임 안에서만 편안함을 느낀다. 그녀는 중계 서비스를 쓰기도 거부하고, 외부와의 의사소통을 루비에게만 의존한다. 루비를 사랑하지만, 가족을 위해 루비가 집에 남기를 원한다. 반면, 오빠 레오(다니엘 듀런트)는 루비가 자신의 꿈을 향해 가기를 희망한다. 여기에는 루비에 너무 의존하는 가족에 대한 서운함과 자신에 대한 열등감도 숨어 있다. 그러나 프랭크와 달리 루비 없어도 할 수 있다는 진취적인 면도 갖고 있다.
오디션 당일 아빠 프랭크의 결정에 따라 가족 모두는 루비를 오디션 장에 데려다 준다. 결국 가족 모두는 루비 없이도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낸다.
청력 상실의 경험
학교 발표회에서, 루비가 마일스(퍼디아 월시 필로)와 함께 노래를 부를 때 한참 동안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영화 도중 그렇게 몇십(?) 초 동안 과감하게 소리를 없애다니 놀라웠다. 덕분에 청각장애인이 공연장에 왔을 때 어떤 느낌을 받는지,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매우 불편하고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일상생활에서의 그들의 삶이 어떨 것인지 조금이나마 예측할 수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사람들의 표정과 동작을 보고 따라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실로 경험이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결단을 한 션 헤이더 감독의 배짱과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씨네 21의 이길보라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헤이더 감독은 이 부분에 어떤 소리라도 넣자는 스태프의 의견을 거부했다고 한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특히나 노래하는 장면에 소리를 없앤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효과가 있었다.
또한, 이 장면에서 영화는 주로 아빠 프랭크의 얼굴을 비춘다. 그는 루비가 노래하는 동안 사람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본다. 눈물을 짓거나, 박수를 치거나, 즐거워하는 관객을 본다. 아마도 딸이 가진 재능을 파악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비록 자신은 들을 수 없지만, 거기 있는 학부모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녀의 노래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 순간이 딸을 대학에 보내야 한다고 마음이 바뀌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코다> 영화를 통해 청각장애인과 코다의 삶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그들이 느끼는 삶의 무게감을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주인공 루비와 마일스가 함께 부르는 ‘You’re All I Need To Get By’와 루비가 혼자 부르는 ‘Both Sides Now’와 ‘Beyond The Shore’는 이 영화가 주는 보너스이다.
김주희는 뉴질랜드 와이카토(Waikato)대학에서 ‘영상과 미디어’를 전공한 예술학 박사이다. 뉴질랜드는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2000~2003) 시리즈와 <킹콩>(2005)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영화 제작 강국이다.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다. 여전히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한 채 유튜브 <영화와의 대화>를 운영하는 유튜버로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