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는 돈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형편없는 팀의 대명사들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 야구에서는 1962년의 뉴욕 메츠가 40승 120패(승률 25%)를 기록하며, 엉터리 팀의 대명사로 군림하고 있다. 당시 신생팀인 뉴욕 메츠는 이곳저곳에서 선수들을 긁어모았다. 초대 감독은 이미 70세를 훌쩍 넘긴 케이시 스텡겔. 그가 “미국 인구가 2억이 넘는데, 메츠에는 제대로 공을 잡을 수 있는 포수 하나 없다”며 반어적 표현으로 쓴 'Amazing Mets(놀라운 메츠)'는 그대로 메츠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사실 스텡겔 감독이 포수만 가지고 'Amazing Mets'라는 표현을 쓴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포지션의 선수들은 물론이고, 구단 운영이나 팬들의 극성에도 '놀라운 메츠'라고 한탄하곤 했다.
이런 'Amazing Mets'에 반전이 온건 메츠가 메이저리그에서 맞은 여덟 번째 시즌인 1969년이었다. 그전까지 메츠가 페넌트 레이스에서 거둔 최고 성적은 내셔널리그 9위였다. 내셔널리그가 10개팀으로 구성된 시절이었으니, 꼴찌에서 두 번째였고, 처음 네 시즌을 포함해 꼴찌를 거의 도맡았다. 승률 50%를 넘긴 시즌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 메츠가 1969년 100승 62패를 거두고, 당시 막강이라던 아메리칸리그의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월드시리즈에서 격파하며 메츠의 'Amazing'은 긍정의 의미로 쓰이게 된다. 다른 별명으로 'Miracle Mets(기적의 메츠)'라고도 불렸는데, ‘기적을 일으키는 경이로운 메츠’라고 쓰였다. 이후 1986년 월드시리즈를 두 번째 제패하면서 'Amazing Mets'가 다시 소환되었다. 1986년 우승의 주역들이 마약, 폭력 등 온갖 사건을 일으키면서 'Amazing Mets'는 마치 인도의 국가브랜드 슬로건처럼 쓰인 'Incredible India'의 'Incredible'과 비슷하게 쓰였다.
유구한 역사를 지니면서 전통의 약팀 이미지를 오래 가져간 팀으로는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꼽힌다. 직접 동시대에 본 건 아니지만 얼마나 취약한 팀이었는지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에이스이자 1970년대를 통틀어 최고의 왼손 투수였던 스티브 칼튼은 1972년 시즌에 무려 27승을 거둔다. 그해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59승을 거두었다. 한 투수가 이만큼의 비중을 차지한 건 1983년 한국 프로야구에서 삼미 슈퍼스타즈의 장명부 투수가 팀이 그 해 거둔 52승 중 30승을 책임진 기록 말고는, 2차세계대전 이후 현대 야구에서 보지 못했다. 스티브 칼튼이 필리스가 아니라 다른 팀에 있었다면 30승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고 얘기하는데, 어쨌든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전통의 약팀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느닷없이 필리스 이야기를 하게 된 연유는 갑자기 필리스가 유니폼 소매에 기업 로고를 부착한다는 소식을 들어서다. 필라델피아 지역신문 기자가 자신의 X에 올린 내용은 이랬다. '필리스가 인디펜던스 블루 크로스(Independence Blue Cross) 광고를 오는 수요일부터 소매에 부착한다. 필리스는 소매 광고를 하는 22번째 메이저리그 팀이 된다.'
두 가지 점에서 놀라웠다. 첫째,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소매 등 유니폼 부착 광고를 한 번도 시행한 적이 없다는 게 의외였다. 둘째, 30개 메이저리그팀 가운데 아직도 소매 광고를 하지 않는 팀이 8개나 된다는 것도, 상업적 메시지로 범벅된 미국 프로 스포츠에 대한 고정관념과는 배치됐다.
메이저리그팀들이 당연히 예전부터 유니폼(특히 소매)에 스폰서 기업의 로고를 달고 있는 줄 알았는데, 겨우 작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가장 먼저 소매에 스폰서 기업 로고를 부착한 팀은 김하성 선수가 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연간 1,000만 달러를 받고 모토롤라 로고를 달기 시작했다. 가장 비싼 뉴욕 양키스는 2,500만 달러, 보스턴 레드삭스는 1,800만 달러라고 한다. 필리스는 지역 건강보험회사인 IBX(Independent Blue Cross)에서 광고비를 얼마나 받았는지 밝히지 않았고, 오래된 파트너쉽과 커뮤니티를 향한 공동의 노력을 강조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은 야구공에 있는 108개의 실밥을 언급하며, 필라델피아라는 도시와 필리스 야구팀이 탄탄한 실밥처럼 얽혀서 역사를 만들어 왔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1980년 한 투수가 시즌 승리의 반을 감당해야 했던 약팀이 월드시리즈를 제패하던 장면을 보여준다. 함께 노력하면 승리하기도 쉬워진다는 점을 구현하려 필리스의 파트너로 계속 노력해왔다며, 그 일환으로 이번 소매 광고의 개시를 발표한다.
오로지 높은 금액을 제시해 스폰서 기업이 되고, 유니폼에 생소하게 자사 로고를 부착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야구 공에 있는 108개의 실밥에서 지역 커뮤니티와 야구, 그리고 프랜차이즈 야구팀과 지역 기업의 관계를 풀어내며 유니폼에 새로이 부착된 로고를 알리는 노력이 새삼 반갑다.
2020년대 들어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두 차례나 가을 야구를 경험했고, 2022년에는 비록 패했지만 월드시리즈에서 명승부를 펼치며 강팀의 면모를 보였다. 2024년에도 8월 2일 현재 내셔널리그에서 유일하게 60% 이상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역 기업과 협업 등을 통한 커뮤니티와의 끈끈한 유대가 이런 좋은 결과를 가져왔음이 틀림없다.
박재항은 삼성과 현대차그룹의 국내외 광고를 광고주와 대행사 양쪽에서 모두 경험하며, 변방의 싸구려에서 세계적 브랜드로 떠오르는 과정을 함께 한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삼국지 키즈로 동양사를 학부에서 전공했고, 미국 뉴욕에서 대학원과 주재원 생활을 했다. 인문학과 글로벌 관점에서 마케팅을 연결하여 기획하고 해석하며, 대학 강의와 강연·기고 활동을 통해 전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