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가장 비싼 뇌물 '수퍼보울 티켓'

최고 인기종목 풋볼시즌 미 전역서 일제히 킥오프 결승전 가격 1200달러지만 제값에 구하기 어려워 박진감 넘치는 질주에 태클 '미국 개척정신의 상징'

2021-09-22     LA=봉화식 객원특파원
수많은 미국 스포츠 가운데 단연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풋볼 시즌이 9월 미 전역에서 일제히 개막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1932-1984년 두차례나 LA올림픽 주경기장으로 활용되고 제1-7회 수퍼보울을 개최한 유서깊은 LA메모리얼 콜로세움에서 USC-UCLA가 대학풋볼(NCAA) 라이벌전을 갖고 있다. (사진=봉화식 LA 객원 특파원)

9월 캠퍼스 개강과 더불어 미국의 국기인 풋볼(일명 미식축구) 시즌이 일제히 막을 올렸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로 경기 숫자가 대폭 축소되고 무관중으로 벌어진 탓에 TV 시청률도 추락했지만 정상화를 선언한 올 시즌에는 관심이 드높다.

풋볼은 대다수 미국인들이 압도적으로 사랑하는 최고 인기종목이다. 신장 2m-체중 150kg에 육박하는 거구들이 반짝이는 메탈 헬멧과 화려한 유니폼을 착용한 채 초록색 잔디 위에서 빠른 움직임으로 다양한 작전을 소화한다. 10만명을 넘나드는 메머드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미국 개척정신의 상징인 '땅따먹기' 경기는 실내종목에 비할바 아니다. 박진감 넘치는 질주에 다이내믹한 태클, 시끄러운 밴드 연주와 치어리더의 현란한 군무 등 실제로 가보면 그 분위기와 함성은 장관이다. 다른 종목을 시시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넘친다.

올림픽 종목도 아니고 오로지 북미(캐나다 포함) 지역에서만 벌어진다는 핸디캡은 풋볼의 국제적 대중화를 가로막고 있는 요인이다. 하지만 미국 팬들은 오히려 그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 "미국의 상징으로 미국에서만 사랑받는다는 점이 더 좋다"는 것이다. 

고교경기는 수업에 지장이 없는 금요일 저녁, 대학(NCAA)은 토요일, 프로(NFL) 일정은 일요일에 벌어진다. 풋볼 팬들의 스케줄을 겹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특히 프로 경기는 월요일 출근에 지장 없도록 대부분 일요일 1시30분에 일찍 킥오프한다. 예외적으로 1경기씩만 소화하는 월요일-목요일 특별 일정은 퇴근후 가볼수 있도록 저녁 늦게 열린다. 아마추어 학생이 참가하는 수천곳의 고교-대학경기는 젊거나 가족 중심의 팬들이 많고, 입장권이 비싸고 전국 50개주에 32개 팀밖에 없는 프로경기는 나이 많고 경제상황이 유복한 골수팬들이 많다. 가난한 계층일지라도 집 근처 스포츠바 또는 식당에 가면 대형 고화질 화면으로 즐길수 있다.

이민생활을 이어가는 한인들 대부분은 풋볼과 거리감이 있다. "평소 관심은 있는데 먹고 살기 바쁘고 복잡한 룰을 잘 몰라서"라는 이유다. 그렇지만 알고보면 풋볼처럼 간단하고 합리적이며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도 없다. 경기 규칙과 득점 체계도 그리 복잡한 편이 아니다. 쿼터별로 15분씩 60분이지만 하프타임, 작전타임 등 실제 소요되는 시간은 3시간 남짓이다. 축구는 작전타임없이 90분 만에 끝나기 때문에 화장실 갈 시간도 없지만, 풋볼은 쿼터별로 휴식시간이 있다. 경기전 주차장에서 벌이는 바베큐 파티(정식명칭은 '테일게이트 피크닉')도 오래된 풋볼만의 전통이다. 경기전부터 잘 먹고 마시고 구장안에서 떠들며 소화시키는 셈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1932-1984년 두차례나 LA올림픽 주경기장으로 활용되고 제1-7회 수퍼보울을 개최한 유서깊은 LA메모리얼 콜로세움에서 USC-UCLA의 대학풋볼(NCAA) 라이벌전 식전공연에서 전투기가 경기장 성화대 상공을 지나가는 퍼포먼스(플라이오버)를 연출하고 있다. (사진=봉화식 LA객원특파원)

공격은 쿼터백의 패싱(던지기)-러닝백의 러싱(달리기)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100야드(약90m)를 돌진해 엔드존에 도달하는 터치다운은 럭비의 '트라이'에 해당하며 6점이 주어진다.

이어 보너스킥은 1점, 3야드 뒤에서 시도하는 공격은 2점이 부여된다. 멀리서 골대안으로 키커가 차넣는 필드골은 거리에 상관없이 3점이다. 수비진이 상대 패스를 가로채거나 펌블한 공을 잡은뒤 돌진해도 된다. 즉 수비를 하면서도 점수를 얻을수 있기 때문에 자기팀이 공격을 하지 않는 경우에도 경기에 눈을 뗄수 없는 것이다. 4번의 공격에서 10야드(약9m) 이상을 전진하면 다시 4번의 공격권(퍼스트 다운)이 주어진다. 3차례 공격 시도에서 10야드 전진에 미달하고, 골대까지의 거리가 길지 않으면 필드골로 3점을 얻을수 있다.

거리가 너무 멀어 득점이 불가능하면 상대방 진영으로 볼을 멀리 뻥 찬뒤(펀트) 수비에 임한다. 만약 3번째 공격까지 남은 거리가 1야드 남짓일 경우엔 위험을 무릅쓰고 4번째 공격을 감행할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험이 실패하면 상대방이 골라인까지 가까운 상황에서 공격권을 돌려받아 쉽게 실점할 위험성이 커진다. 태클에서 밀리면 1야드 전진은 커녕, 1인치만 가거나 후퇴하는 경우도 잦다.

이것만 알아도 풋볼을 보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결과에 상관없이 경기장 분위기를 느끼고 소리 지르고, 맥주와 피자-핫도그를 사먹으면 이민생활의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특히 자신이 졸업한 모교가 승리하거나 사는 지역 프로팀이 라이벌을 꺾으면 그 동네 전체가 난리 난다.

경기 직전 공연에서 트로잔 마칭밴드가 USC 글자를 만들며 필드를 행진하고 있다 (사진=봉화식 LA객원 특파원)

대학 풋볼은 1월1일 로즈-오렌지-슈거-카튼-피에스타-피치보울 등 6대 이벤트가 3년마다 돌아가며 전국 챔피언을 뽑는 4강 플레이오프를 소화한다. 결승전은 1주일 뒤 월요일에 따뜻한 지역 또는 실내경기장에서 개최한다.

반면 프로풋볼 결승전인 수퍼보울은 미국뿐 아니라 지구촌 최고의 이벤트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에서 1억5000만명, 전세계에서 10억명 이상이 생방송을 시청한다. 캔자스시티 치프스의 라마 헌트 구단주가 딸이 갖고 놀던 얌체공 수퍼볼(super ball) 상표를 수퍼보울(Super Bowl)로 명명하며 유명해졌다. 경기 당일은 '수퍼 선데이'로 불린다.

올시즌 챔피언십은 '천사의 땅'인 LA의 최첨단 신축구장 소파이 스타디움(8만석)에서 2022년 2월13일 킥오프한다. 건설비 10억달러를 들인 램스-차저스의 공동 홈구장으로 2026년 FIFA 월드컵, 2028년 LA올림픽 주경기장으로 확정된 곳이기도 하다.

내년 1월말부터는 추운 지방에서 건너온 수십만명의 관광객들이 남부 캘리포니아를 방문할 것이 확실하다. 이들이 뿌릴 호텔-렌터카-식비-유원지-쇼핑-항공료 비용은 4000만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승전 티켓 정가는 1200달러(약140만원)이지만 일반인들은 3배를 주고도 구하기 어렵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부자들이 미리 선점해버렸기 때문이다. 선수 또는 구단 사무국 직원에게 배정된 극소수 입장권만 인터넷 공간에서 암거래되는 실정이다. 미국에서는 '가장 비싼 뇌물은 수퍼보울 티켓'이란 말이 유명하다. "예쁜 마누라와 수퍼보울 입장권을 맞바꾸자"는 광고를 낸 철없는 남편이 이혼당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경기 전날 구장 담장을 넘어가 화장실에 숨은 남녀가 경찰에 체포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개인적으로 15년전 MVP로 선정된 한국계 하인스 워드(피츠버그 스틸러스)를 만나는 등 대다수 미국 기자들도 못 가보는 최고의 스포츠 현장을 여러차례 취재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럼에도 언제나 유일한 한인이었다. 수많은 중국-일본 취재진을 보며 부러워하곤 했다. 현재 유일한 한인 선수로는 12세때 이민 온 키커 구영회가 애틀랜타 팰콘스 소속으로 뛰고 있다.

풋볼은 미국의 개척정신과 적극적인 생활방식을 잘 나타내는 'Made in USA 종교'다. 미국 주류사회를 이해하려면 풋볼을 알아야 한다. TV로만 감상하면 그 참맛을 느낄수 없다. 감히 단언컨대 풋볼을 알면 미국사회가 훨씬 더 잘 보이게 될 것이다.

봉화식남가주대(USC)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88년부터 중앙일보 본사와 LA지사에서 근무했다. 기자 생활의 절반씩을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보냈다. 주로 사회부와 스포츠부에서 근무했으며 2020 미국 대선-총선을 담당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영 김-미셸 박 스틸 연방 하원의원 등 두 한인 여성 정치인의 탄생 현장을 취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