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재정 vs 감세' …尹 대통령에 주기자를 보내자
尹, 국정 운영 복기와 성찰 ‘오답노트’ 있어야 ‘채상병 vs 김건희’, ‘건전 재정 vs. 감세’ 밸런스게임 회피 기초연금 확충 옳아도 재원 무대책은 ‘무분별한 현금 복지’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이 체감할 만큼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모자랐다.“ 4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말이다. 5월 9일 윤 대통령 취임 2주년 기자회견 역시 저 말을 길게 늘어놓은 것에 불과했다.
방향을 안 바꾼다고 치자. 그래도 복기에 진심인 정치인은 “그때 다른 방법을 쓸 걸”, “그 의제를 제기하기에 시기나 조건이 좋지 않았다”와 같은 교훈을 얻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잘못이었거나 부족했는지, 그것을 어떻게 교정할지를 찾을 수 없다. ‘사과’, ‘책임감’, ‘송구’ 등 반성문 초입에 들어갈 만한 문구는 있었지만 ‘오답노트’는 없었던 것이다.
“이재명이 내 캠프에서 일하기 vs 내가 이재명 캠프에서 일하기”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2021년 10월, <SNL 코리아>(쿠팡플레이)의 인기 코너 ‘주 기자가 간다’에 출연했을 때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밸런스 게임’이 출제됐다. 윤 대통령은 주 기자에게 “그럼 뭐 이재명 후보가 제 캠프에서 일하는 게 좋겠죠”라고 답한다. 여기까지는 쉽다.
그 다음 밸런스 게임은 “빚내서 내 집 마련하고 이사한 날 짜장면 시켜먹기 vs 이재명 후보의 장기임대주택에서 빚 없이 살기”. 빚이 있는 것보다 없는 편이 좋으니 후자가 낫지만, 후자라고 답하면 상대방의 정책에 기댄다는 늬앙스를 풍긴다. ‘자가 보유’와 ‘임대 주택’이라는 정책 대결에서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쪽이 강조하는 것을 반영하려면 전자라고 답해야 할 이유도 있다. 결국 윤 대통령은 전자를 골랐다.
국정에도 ‘밸런스 게임’의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법안 거부권 행사 문제만 해도 그렇다. 예컨대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은 둘 다 특검 법안이면서 대통령 혹은 영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다루는 법안이다. 거부권 행사가 잦을수록 부담이 가중되고 정부와 여당의 정책도 국회에서 통과되기 어렵다는 것을 감안해서 당연히 행사를 자제해야 한다. 그렇다면 “채상병 특검법 수용 vs 김건희 특검법 수용”과 같은 밸런스 게임이 대통령 마음 속에서 자주 일어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좀처럼 이런 기로에 스스로 서 보는 법이 없다.
윤 대통령이 회피하는 대표적인 밸런스 게임은 ‘건전 재정 vs 감세’다. 건전 재정에는 지출이나 나라빚을 억제하는 것 말고도 세수를 확충하거나 적어도 줄이지 않는 방도가 있다. 감세는 기본적으로 건전 재정을 저해한다. 세율을 낮추고도 건전 재정을 지키려면 1)경제성장율이 높거나, 2)지출을 고도로 억제하거나, 3)나라빚을 내거나다. 1)은 불가능하다. 2)는 어렵거나, ‘R&D’ 예산 삭감처럼 결과가 좋지 않다. 3)은 리스크가 있는 데다가 윤 대통령으로서는 공약 파기다. 여기서 감세 기조를 철회하는 것만큼 주효한 해법이 없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기초연금 수급액을 현행 월 33만원에서 월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자체는 잘못된 게 아니다. 국민연금의 혜택을 보는 사람은 가입 기간이 길었던 사람들이고 여기서 빈곤층은 대거 제외되어 있다. 조세 및 재분배를 통해 기초연금은 확충되어야 한다. 문제는 재원이다. 올해 기초연금에 소요되는 재정은 약 24조 3천억원이다. 33만원이 40만원으로 오를 경우, 다른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수급자수에 변동이 없다 치더라도 30조원쯤 소요된다. 최소 5조원 넘게 추가로 들어가는 셈이다. 더구나 이 가운데 작지만은 않은 몫을 지방자치단체가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최근 내놓은 감세안만 해도 10여건이고 예상 세수 감소분은 약 7조원이다. 윤 대통령은 이번 회견에서도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역설했다. 하나만 따져도 5조원 넘게 추가 지출할 일이 생기는 판에 7조원의 세수를 줄인다? 이 12조원의 구멍을 막을 자신이 있는가? 윤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산수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제안하는 ‘전국민 민생회복 지원금’을 ‘무분별한 현금 복지’라고 비판하고 있다. 물론 중위층과 상위층의 추가 부담 없이 일괄 지급하면 취약계층이 손실을 입는다는 문제가 있지만, 여권은 사돈 남 말할 상황이 아니다. 윤 정부의 기초연금 확충안에는 재원 대책도 없고 하위층 집중 방안도 없다(스웨덴, 핀란드 같은 고부담 고복지 국가도 각각 47%와 32% 하위층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한다). 그런 것도 ‘무분별한 현금 복지’다. 아무래도 대통령실로 한 번 더 주기자를 보내야겠다.
김수민은 풀뿌리운동과 정당활동을 하다 현재는 지상파와 종편, 언론사 유튜브 방송 등에서 정치평론가로 활약 중이다.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 진행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경북 구미시의회 시의원을 지냈다. 시의원 시절엔 친박 세력과 싸웠고, 조국 사태 국면에서는 문재인 정권 핵심 지지층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다당제와 선거제도>(eBook)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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