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봉의 변신 선유도에서

2021-10-02     황현탁 여행작가

「봄 한철 한가롭게 옥진(신선)과 놀았는데
 어느새 세월이 흘러 벌써 가을이라네.
 무제는 오지 않고 꽃도 다 져버려
 하늘에는 노을이 깔리고 달이 다락에 다가오네.」
 (一春閑伴玉眞遊 倏忽星霜已報秋
 武帝不來花落盡 滿天人烟月當樓)

허난설헌의 <유선사(遊仙詞)>란 연작시 87수 중 76번째 시인데, 신선의 세계도 세월은 흐르며, 자연도 변화함을 노래하고 있다. 신선이 놀던 곳이라고는 하지만 인간세계인 이상 변화는 당연한 것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산봉우리였던 선유봉(仙遊峰)이 세월이 흘러, 선유도(仙遊島)란 섬으로 바뀐 것이다. 바로 지금의 영등포구 당산동 선유도 얘기다. 

겸재 정선의 선유봉 (사진=간송미술관 제공)

경기도 양천현령(陽川縣令)을 지낸(1740~1745)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대가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선유봉> 그림에 선유봉은 섬이 아닌 육지에 연결된 바위산이고 주변에는 민가가 여러 채 그려져 있다. 실제로 19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선유봉 주민들은 그곳에서 밭농사와 고기잡이로 생활하였다고 한다. 

한강 북쪽의 잠두봉(蠶頭峰)에서 건너편 남쪽의 선유봉으로 모래톱이 생성되어 강을 건너기가 편리해 오랫동안 나루로 이용되었으며, <고려사>에도 등장한다. 겸재의 <양화환도>(楊花喚渡 : 양화나루에서 사공을 불러 강을 건넘)란 그림에도 나룻배로 강을 건너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이곳은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목으로 방위상 중요한 곳이어서 조선시대에는 군대가 주둔하였던 군진(軍鎭)으로, 2호선 지하철로(地下鐵路) 한강하류 쪽 언덕에 장대석(長臺石)으로 군진터를 표시해 놓았다. 

겸재 정선의 양화환도. (사진=간송미술관 제공)

조선시대에 중국의 사신들이 오면 유람차 선유봉 정상에 올라 많은 시를 남겼고, 겸재의 그림에서처럼 그곳에 정자와 누각을 지어 정취를 더하였다. 1866년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보복으로 조선을 침략한 사건인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함대가 양화진을 거쳐 서강까지 측량하고 퇴각하고 두 번째는 더 많은 군대를 보내 강화도를 점령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천주교신자들이 협조하였다 하여 잠두봉에서 200여명(기록상으론 29명)의 신자들을 처형하였다. 그래서 그곳이 ‘머리를 자르는’ 절두산(切頭山)이 되어 버렸다. 이런 연유로 1997년 정부는 이 지역을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이란 이름으로 사적 제399호로 지정하였다. 군진 북쪽 야산에는 양화진외국인묘역이 위치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대홍수가 발생하자 일제는 선유봉 바위를 깨뜨려 제방을 쌓았고, 6.25한국전쟁 후에도 도로복구를 위해 그곳을 채석장으로 이용하여, 선유봉은 과거의 자태를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한다. 1965년에는 제2한강교(1981년 바로 옆에 똑 같은 다리를 하나 더 세운 후 이름을 양화대교로 바꿈)가 선유도를 가로질러 놓이게 되었으며, 1978년에는 서울 서남부지역의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한 정수장을 선유도에 설치하였다. 

선유도. (사진=황현탁)

한편 1981년 88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자 ‘한강종합개발계획’(1982~1986)이 수립되어, 올림픽대로가 개설되고, 한강공원들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양화대교 남단 모래톱이 준설되어 선유봉이 있던 곳은 완전한 ‘섬’(島)인 선유도가 되어버린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옛말처럼, 60여 년 만에 육지가 섬으로 바뀐 것이다. 양화대교 여의도 쪽 상류에는 수량이 적을 때 물위로 드러난 선유봉 흔적인 암초를 볼 수 있다. 

‘한강의 기적’이란 경제개발과 도시화의 진전으로 한강물이 오염되어 정수(淨水)문제가 심각해지자, 2000년 선유도정수장을 폐쇄하고 수변공원화사업을 추진하여, 2002년 친환경생태공원인 ‘선유도공원’으로 재탄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약품침전지를 활용한 시간의 정원과 수질정화원, 여과지를 활용한 수생식물원, 정수장의 농축조를 활용한 네 개의 원형공간,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뜯어내고 기둥만을 남겨 담쟁이를 이식한 녹색기둥의 정원 등으로 꾸몄다.

정수장에서 생산된 물을 공급하던 송수펌프실을 개조한 전시공간인 이야기관, 옛날 정자를 복원한 선유정(현판은 능암 유성준의 글씨), 서울시와 프랑스 2000년 위원회가 공동사업으로 2002년에 완공한 선유교, 크지 않은 온실 등도 공원이용객을 위해 정비, 보완했다. 두 곳의 수산화나트륨(NaOH) 보관창고는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구경 1.35m의 철제 빗물방류 밸브는 메타세콰이어길 옆에 전시되고 있다.

시인묵객들의 찬탄을 자아냈던 선유봉의 자연풍광은 세월 따라 사라졌지만, 인간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는 인공조형물들이 세월의 흔적을 더해가고 있었다. ‘녹색기둥의 정원’ 담쟁이는 시멘트와 철근의 생명력을 단축하기 위해 열심히 자양분을 뽑아내고 있었다. 또 그곳에 심은 메타세콰이어와 대나무는 연륜을 더해 어엿한 숲이 되었다. 먼 훗날 또 다른 생태계로 탈바꿈할 것이다. 

원형극장에선 공연이 펼쳐지고, 나무그늘 밑 잔디밭에선 정담을 나누며, 한강에선 수상스키를 타는 것, 이 모두가 ‘사람을 위하여’라는 시대의 변화에 맞춘 신선이 놀던 선유봉의 변신이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 때문에 몇 곳은 둘러볼 수 없었으며, 공원 안에서 음식물 섭취를 금지한 탓에 ‘피크닉도시락업체’의 상술도 눈에 띠지 않았다. 빨리 역병이 물러가 선유봉이 선유도로 변신한 모습을 즐기고 싶다.    

황현탁은 미국, 일본, 영국, 파키스탄에서 문화홍보담당 외교관으로 15년간 근무했다. 각지에서 체험을 밑천 삼아 이곳 저곳을 누비며 여행작가로 인생2막을 펼쳐가고 있다. 『세상을 걷고 추억을 쓰다』, 『어디로든 가고 싶다』 등 여행 관련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