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총선 '검투사 정치'…키워드는 '대파' '의대생 증원'
뉴욕타임스 "공포와 원한으로 채워진 선거 될 것" AP통신 "정치적 양극화 심각해 질 것"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하루 앞둔 가운데 뉴욕타임스와 AP통신 등 주요 외신들이 벌써 총선의 후유증을 걱정하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7일 '검투사 정치(Gladiators)가 양극화된 한국 총선을 지배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번 총선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로 대변되는 보수-진보 진영의 극단적인 대결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10일 실시되는 한국 총선은 한국 역사상 가장 큰 공포와 원한으로 채워진 선거가 될 것"이라며 이같은 분위기의 저변에 윤 대통령과 이 대표 간의 ‘죽기 아니면 살기’식 대결의식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조영호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는 “한국 정치에는 오랫동안 복수와 원한의 정서가 있었고 5년 단임의 대통령이 정치적 라이벌들에 대한 사법적 보복을 반복해와 정치가 '검투사의 싸움터'가 됐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특히 검찰총장 출신인 윤 대통령은 전례 없이 대선 라이벌이었던 이재명 대표와 부인 김혜경씨에 대해 형사 기소를 강행했고 야당과의 대화도 거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어 윤석열 정부가 '가짜뉴스' 단속을 빌미로 언론사에 대한 잦은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김건희 여사에게 '여사'나 '영부인'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TV방송에 징계를 내리는 등 언론을 탄압하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또한 대통령 경호원들이 이른바 '입틀막(gag)'을 반복하는 등 자유를 억압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스웨덴 'V-Dem' 연구소가 발표한 '2024년 민주주의 보고서'에서 꼽은 '독재화가 진행되는 국가' 42개국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는 오명을 남겼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재명 대표도 이같은 정치 양극화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공중화장실 청소부의 아들로 태어난 이 대표는 소외된 서민들을 상징하는 정치인으로 등장했지만, 반대파들은 그를 부정직한 포퓰리스트라고 비난하고 있다"면서 "양측은 저출산 대책과 장기적 복지 정책 등의 현안을 제쳐 놓고 상대방을 악마화하는데 골몰하고 있다"고 양비론을 펼쳤다.
AP통신도 지난 5일 한국 총선 특집 기사를 통해 "북한의 핵위협이나 한미 안보협력 같은 전통적 의제 대신 대파와 의사 파업이 선거 이슈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통신은 "한국 정치는 진보와 보수의 분열이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에 양 진영에 속한 유권자들에게는 지역 공약이나 후보자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면서 "하지만 이같은 극심한 양극화에 지친 중도층들이 크게 늘어나 4,400여만명의 한국 유권자 가운데 30~40%를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통신은 "이번 총선에서 이들 중도층을 움직일 키워드는 경제 및 물가 정책의 실패를 상징하는 대파와 선거를 위해 밀어붙인 의대생 증원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들 이슈는 결국 현 정권에 대한 심판 분위기를 불러 일으켜 여당에 불리한 결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AP통신은 한국 정치 양극화와 상대방에 대한 악마화 현상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이번 총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갖가지 막말 공방이 낳을 후유증에 대한 우려도 전했다.
뉴욕타임스도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가운데 총선 결과가 나온다면 누가 승리하더라도 정치적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질 수 밖에 없다"면서 "정쟁 때문에 공공의 이익과 경제문제, 저출산 문제, 복지문제 등 한국사회의 중요한 현안은 계속 뒷전으로 밀리게 될 것"이라는 조영호 교수의 말로 기사를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