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범야권 200석' 탄핵 운운, 국민 겁 주지 말라

‘대파’는 단일 물가 이슈 아닌 정권 총체적 불신 상징   탄핵과 개헌은 의석수 아닌 민심이 결정 국힘, 차라리 대패하면 ‘거부권 정치’ 끝내고 거듭날 기회

2024-04-08     김수민 정치평론가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7일 충남 공주시 공주대학교 후문 앞에서 정진석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이 국회를 패싱하고 대통령실을 이전했을 때 / 너는 동조했다 / 너는 의회주의자가 아니었다 // 그 다음 대통령이 언론이 ‘날리면’을 ‘바이든’으로 조작했다 주장했을 때 / 너는 따라했다 / 너는 자유주의자가 아니었다 // 그 다음 대통령이 ILO 협약을 위반해 화물연대에 업무복귀명령을 했을 때 / 너는 열광했다 / 너는 보편적 국제주의자가 아니었다 // 

그 다음에 대통령이 자기 배우자에 대한 수사를 막을 때 / 너는 특검을 찬성하지 않았다 / 너는 소신 있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 성난 표심이 여당에게 닥쳤을 때는 / 너를 위해 찍어줄 이들이 /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죄나 탈당을 촉구한 국민의힘 후보들을 보며, 나는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또는 <침묵의 대가>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마르틴 니묄러의 시를 패러디해보았다. 3월 말, 4월 초 여권의 자중지란은 사상 초유의 수준이었다. 2016년 총선 새누리당 김무성 당시 대표의 ‘옥새들고 나르샤’도 막판인 4월이 아니라 3월에 일어난 일이었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에게는 자당과 윤석열 정권을 바로잡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역대 최저치 의석수를 기록한 지난 총선 이후 4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2년이 흘러갔다. 이제 와서 대통령에게 모진 소리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안 되는 집단에는 별의별 일이 일어난다. 이런 수준으로 제1당이 된다면 외려 회생불능이 된다. 

물론 총선 결과를 단정할 수는 없고, 여론조사 표본의 계층별 비중과 실제 투표자 중 계층별 비중이 어긋나는 수준이 작지 않다면 그 만큼은 여론조사와 최종 결과가 불일치할 수도 있다. 단, 현재 ‘정권 심판’을 이길 프레임이 없는 것은 확실하다. ‘대파’가 가장 뜨거워진 연유도 간단하다. 국민들은 물가 문제만으로 대통령 욕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물가 상승은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현상이며 정부의 시장 통제력이 제한적이라는 것은 많은 시민들이 안다. 진짜 이유는 물가에 있는 게 아니다. 

정권에 대한 다수 국민의 불만은 총체적이다. 물가는 ‘깨진 유리창’의 구실을 할 뿐이다. 정권과 그 지지층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키워드가 ‘물가’인 것이다(문재인 정권 시기의 ‘부동산’과 유사하다). 가령 윤 대통령을 비판하며 ‘노란봉투법’이나 ‘홍범도’ 이야기를 하면 그 지지자에게 이념 공격을 받기 일쑤다. ‘이태원’이나 ‘채 상병’을 제기하면 무성의하게 피하거나 적반하장으로 나올지 모른다. 반면, 아무리 ‘대깨윤’이라도 물가 문제로 정부를 나무라는 시민을 역공했다간 왕따 되기 십상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경기 하남시 위례스타필드시티 앞에서 추미애 후보의 손을 잡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사회에는 거대양당 모두에 환멸을 느끼는 유권자층이 제법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둘 다 동시에 파괴력 있게 심판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유권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가보지 않은 길이고, 선거제도 문제를 아는 시민이라면 더더욱 도전하기 힘든 길이다. 결국 그들 다수는 ‘동시 심판’이 아니라 ‘순차 심판’을 택한다. “이번 총선에선 일단 국민의힘 정권을 심판한다. 민주당은 선거 끝나고 보자.”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대승한 대가로 오히려 정권을 내줬어. 이번에 또 대승해도 별로 걱정 안 해.”

‘여소야대면 혹시 정국이 불안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넓게 퍼지지 않는다. 지난 2년간 여소야대에서, 문제가 된 것은 국회의 입법 질주가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튀어나오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그리고 의석수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시행령 통치’였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100석만 넘으면 앞으로도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이 모두 반대하는 법안은 통과되지 않는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을 정권이라고 선거를 포기할 유권자는 적다. 선거마저 건너뛰면 분을 풀 기회도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이제 ‘야권 200석’ 공포에 기대고 있다. ‘탄핵’과 ‘개헌’은 막아달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것도 괴담에 가깝다. 2004년에는 야권 의석이 70%를 넘었지만 국회를 통과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었다. 2016년에는 야권 의석이 2/3는커녕 60%도 안 됐지만 여권 일부의 찬성표가 더해져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고 헌재에서 인용되었다. 탄핵은 야권 의석수가 아니라 민심에 달려 있다. 개헌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은 탄핵이나 개헌을 저지해달라고 울상 지을 시간에, 총선 뒤에라도 민심을 회복하도록 궁리하는 게 좋을 것이다. 

선거 일주일전쯤 나온 양당의 선거 전망을 종합해보면 지역구(254석)에서 ‘더불어민주당 우세 110곳, 국민의힘 우세 90곳, 접전 50여곳’쯤 된다. 국민의힘 지지층이 많은 60대 이상에서 투표율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야권 200석’의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 같다. 다만 국민의힘만큼은 두 자리수 의석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해둬야 한다.

‘예상 밖 선전’을 했다가 2026년 지선, 2027년 대선, 2028년 총선에서 더 큰 심판을 받는 것보다 차라리 야권에게 200석을 내주는 편이 국민의힘에게  훨씬 나을 것이다. 이 경우 국정의 부담과 심판의 화살은 민주당에게 몰리고, 윤 대통령의 폭주가 종식되며 국민의힘은 공당답게 재구성될 시간을 갖게 된다. 국민의힘이 합리적 보수로 거듭나든 아니면 합리적 보수에게 밀려나든, ‘야권 200석’은 한국 보수에게 분골쇄신의 압력이 될 것이다.

김수민은 풀뿌리운동과 정당활동을 하다 현재는 지상파와 종편, 언론사 유튜브 방송 등에서 정치평론가로 활약 중이다.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 진행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경북 구미시의회 시의원을 지냈다. 시의원 시절엔 친박 세력과 싸웠고, 조국 사태 국면에서는 문재인 정권 핵심 지지층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다당제와 선거제도>(eBook)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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