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르네상스의 환상에 암울해지는 한국 경제의 미래

수출주도형 대한민국, RE100 무시한 원전 올인의 함정

2024-02-29     이인형 시민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2일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에서 '다시 뛰는 원전산업 활력 넘치는 창원·경남'을 주제로 한 열네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탈원전 독일의 길인가?  원전 르네상스 핀란드의 길인가?

독일은 2023년 4월 16일 0시를 기해 운영 중이던 마지막 원전 3기를 폐쇄했다. 60여 년간 이어졌던 독일 원자력 발전 시대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원자력 발전은 친환경이 아니며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는 독일 정부 입장은 확고했고, 독일은 이날부터 영구히 더 이상 원자력 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지 않게 됐다. 1970년대부터 거의 50년 가까이 이어져온 독일의 반(反)원자력 운동 세력의 승리였다.

반면 이날 발트해 인접국 핀란드에서는 16년 만에 유럽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새로 문을 열었다. 유럽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 세번째(1, 2위는 모두 중국)로 큰 원자력 발전소인  ‘올킬루오토 3호기’가 이날 전기 생산을 시작했다. 무려 17년에 걸친 공사를 마치고 가동된 올킬루오토 3호는 시간당 발전량이 무려 1,600MW에 이른다. 핀란드 전체 전력의 14%를 차지하면서 일약 핀란드 주요 전력원으로 부상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는 2022년 겨울 유럽으로의 석유∙가스 수출을 중단했다. 유럽 각국은 치솟는 전기요금과 추위에 떨어야 했다. 특히 핀란드는 이 영향으로 2022년 말부터 2023년 초까지 핀란드의 수많은 가정용 전기 사우나 시설을 가동하지 못했다.  사우나가 일상인 핀란드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핀란드의 반핵운동은 사실상 힘을 잃었고, 핀란드 국민은 원전 찬성으로 돌아서면서 결국 원전에 의해 일상을 되찾게 된다. 

이렇게 독일은 원전을 완전히 포기했지만, 이웃나라 핀란드와 프랑스, 그리고 미국 등 선진국은 원전을 재가동 건설하기에 이른다.  원전 르네상스를 외치는 이들도 있다. 왜 그럴까?

탄소 중립에  힘 잃어 가는  반핵 운동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목표인 '탄소 중립'으로 가기 위해선 석탄∙석유 같은 화석연료를 줄이고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대체하는 에너지원은 풍력, 태양광, 수력 등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원이어야 한다. 그런데 대체가능한 신재생에너지원 공급은 급격히 늘지 않는다. 

지난 1996년 전세계 전력 생산에서 화석연료가 아닌 저탄소 에너지원 비중이 38%였지만 (원자력 18%, 수력과 기타 재생에너지 20%)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2021년엔 40%(원자력 10%, 풍력 7%, 태양광 3%, 수력과 기타 20%)에 불과했다. 25년 동안 각국 나라가 기후 위기를 거론하며 각종 캠페인과 규제를 통해 탄소 중립을 외쳤으나 탈탄소 에너지 증가는 고작 2%에 불과했다. 이 내면에는 원자력이 18%에서 10%로 감소하고, 감소된  원자력에너지 부분을 신재생 에너지가 감당하다 보니 전체적으로는 2% 증가에 그친 것이다.  

세계적으로 각국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재생에너지에 돈을  쏟아부어왔다. 원자력 발전소 설치와 오래된 원전의 가동을 중단하고, 일부를 조기 폐쇄하는 등 탈원전이 주를 이루면서 생긴 현상이다.

이렇게 원전 감소로 인해 저탄소 에너지 증가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반핵의 중심이던 유럽 등 선진국에선 이제 오히려 원전 재개의 역풍이  불고 있다.  현실적 이해 때문이다.  “기후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원자력 논쟁은 더 이상 이전 만큼 핀란드의 기후 정책과 관련이 없다”고 한 그린피스 핀란드 지부장의 인터뷰 기사가 이를 말해 준다.

‘2050년 탄소 중립(Net Zero)’이란 국제사회가 합의한 목표도 원자력에 대한 시각을 바꿔 놓은 결정적 이유로 지적된다.  반드시 탄소 중립으로 가야 하지만 2050년까지 남은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전세계 공통의 적인 화석연료를 퇴출시키기 위해서라도 이젠 원자력과 화해하고 손을 잡자는 타협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이는 일부 환경운동가들의 시각마저 변화시켰다. 유럽 환경운동가들의 이런 시각 변화의 틈을 타 정책적 이해에 민감한 정치권이 앞서 원전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신 원전르네상스의  도래의 함정 

침체에 빠졌던 전 세계 원자력 발전 시장에 다시 활력이 돌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리투아니아, 이탈리아는 독일처럼 일찌감치 원자력 발전을 중단했다. 벨기에∙스페인∙스위스도 약 10년안에 단계적으로 원전을 폐쇄한다는 계획이다. 탈원전 국가세력도 만만찮은게 현실이다.

전통의 원전 강국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2023년 원전 6기를 2035년까지 새로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원전 의존도를 낮추려던 기존 정책을 완전히 뒤집고 ‘원자력 부활’을 선언한 것이다. 이외에 유럽에선 꽤 많은 국가가 신규 원전 건설에 이미 나섰거나 추진 중이다. 폴란드(1단계 사업을 2023년 10월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수주), 체코(두코바니 5호기 건설 추진, 2023년 말 업체 선정 예상), 루마니아(체르나보다 3, 4호기 건설 추진), 영국(시즈웰C 건설 추진)이 대표적이다.

원전 건설의 복병 , 용접공이 없다.

원전을 새로 짓는다고 할 때 가장 큰 걱정거리는 공사기간이 예상보다 훨씬 길어져서 돈과 시간이 모두 엄청 깨질 수 있다는 점이다. 원래 원자력 발전은 다른 재생에너지보다 생산단가가 저렴한 게 큰 장점인데, 공사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이런 장점이 사라진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일수록 이 부분에 대한 우려가 크다.  당연히 인건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프랑스에 원자력 관련 용접을 할 수 있는 훈련된 용접공은 500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23년 원전 수리를 위해 미국에서 용접공 100명을 불러왔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력생산회사인 프랑스 전력공사 EDF는 2030년까지 이 인력이 두배로 늘어나야 한다고 예측하고 있다. 기초적인 용접교육에만 9개월이 걸리고, 실제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게 되려면 5~7년의 경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게 뚝딱 인력을 길러낼 수 있는 게 아니다.

프랑스에서 원전 6기 건설 계획을 실행하려면 엔지니어와 프로젝트 감독자, 보일러 제작자와 전기 기술자 등 총 10만 명의 인력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게 프랑스 정부의 계산이다. 프랑스에서 이렇게 큰 규모의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건 1970년대 이후 처음이다. 그동안 프랑스 원전 건설의 생태계는 이미 붕괴된 상태라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이로 인해 프랑스나 미국 원전기업은 당연히 고질적인 비용 초과와 납기지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프랑스 EDF 컨소시엄이 짓고 있는 영국 힌클리포인트C 원전은 당초 2023년 완공을 목표로 했지만, 공사 지연으로 2028년 9월로 미뤄졌다. 그 결과 180억 파운드로 책정된 건설비용도 327억 파운드로 불어났다. 서두에 소개한 핀란드 올킬루오토 원전 역시 EDF의 대표적인 공사지연(무려 17년 걸림) 사례이다. 

미국은 7년 만에 조지아 발전소의 보글 원자로 3호기에서 2023년 3월부터 전력 생산을 시작했다. 2009년부터 짓기 시작했으니, 무려 14년이나 걸린 데다 공사비용도 당초 예산(4호기 포함 140억 달러)의 두 배(300억 달러 추산)로 불어났다. 그동안 미국에선 2007~2009년 발표했던 원전 프로젝트 중 24개가 엎어졌다. 건설까지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였다. 다들 ‘보글이 미국의 마지막 대규모 원자력 프로젝트’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7일 서울 성동구의 한 북카페에서 '기후 공약'을 현장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의 착각, 원전 공사 수주의 유혹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독일은 원자력 발전을 완전히 종식시켰다. 반대로 핀란드와 미국은 새 원전 가동을 시작했고 프랑스는  원전 6기 건설을 추진 중이다.  

전 세계를 놓고 보면 탈 원전 국가도 증가하는 반면 원자력 발전을 재가동하는 국가가 증가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 배경에는 ‘2050년 탄소 중립’이란 목표가 역설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높아진 에너지 안보에 대한 위기의식도 작용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 원전을 새로 짓는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수십년 만의 대규모 프로젝트라 인력과 설비 등 원전 인프라가 붕괴된 상태라 비용 증가는 물론 공사기간도 길어질 수 밖에 없다. 그 사이 세계 어디에선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대형 재난’이 덮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시공능력 면에서 뛰어나다고 착각하고 있는 친원전 세력이 독주하기 시작했다. 살판난 원전 르네상스는 과연 한국에 올 것인가? 결론은 '단연코 아니다'는 것이다.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지난해 10월  한국형 원전(APR1400) 원천기술에 대해 지식재산권 소송을 제기하며 발목을 잡고 있다.  이 처럼 우리는 보유 기술이 취약하다. 또 우리 역시 국내  인력이 부족해 해외 인력에 의존하는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결국 원전 수주가 실제 국익으로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데도 지금 정권과 결탁한 국내 원전 세력은 원전 르레상스의 도래에 흠뻑 취해 있고, 더 나아가 재생에너지 기반을 송두리째 뽑아내고 있다.

한국, 원전르네상스 정책 비관세 무역장벽 못넘어 

다시 원전에 불 지피는 선진국을 보며, 우리도 원전 르네상스에 취해가고 있는데, 너무 위험한 불장난과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수출주도형 국가이다.  내수는 작고 수출에 의존하는데 비해, 다른 선진국은 수출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수 기반이다. 이들은 무역 장벽을 관세에서 비관세 정책으로 전환했다. 비관세 장벽의 핵심은 재생에너지 , 환경, 인권 등이다. 

얼마전 ILO 기준을 위배하는 중대 과오를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정부 정책을 보고 경악했다. 그런데 이제는 원전르네상스의 환상에 빠져 글로벌 규제가 돼가는  RE100을 무시하고 CF100으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한동훈 국민의 힘 비대위원장 조차도  RE100을 경시하는 발언을 쉽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 주요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고객 기업이 RE100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RE100이 안되면,  우리나라 주요 수출 품목의 수출이 30% 이상 감소할 것이라는 연구기관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다.

당장 해당 기업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 정부의 강압적인 에너지 정책에 항변도 못하고, 원전 르네상스에 둘러싸인 암울한 미래를 걱정하면서 말이다.

이인형은 가치공학(Value Engineering)분야 국제공인 CVS자격증을 보유한 프로젝트 컨설턴트다. 서울대 농학과를 거쳐 연세대 대학원 경제학과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한국신용정보에서 기업 평가·금융VAN업무를 맡았고, 서울대 농생대에서 창업보육 업무를 했다. 지금은 소비자 환경활동 보상 플랫폼을 구축 중이며, 개인신용정보 분산화 플랫폼도 준비중이다. 금융‧산업‧환경‧농업 등이 관심사다. 기후위기 대응 세계적 NGO인 푸른아시아 전문위원이면서, ESG코리아 경기네트워크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