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사주’는 ‘정치공작’ 아닌 실체있는 ‘검찰 선거개입’

[분석과 해설] 검찰총장 직속 핵심참모조직 고발사주 고발장 작성 관여 당시 검찰총장인 윤석열 대통령 배후 논란 재점화할 듯 한동훈은 손준성 승진, 尹 사단 검사는 김웅 불기소…입막음 논란

2024-02-01     이진동 대표기자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검사장)이 1월 31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고발사주 사건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선 국면인 2021년 9월 2일 뉴스버스가 특종 보도한 ‘고발사주 의혹’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였던 당시 ‘정치 공작’이라고 주장했다. ‘손준성 보냄’의 고발사주 고발장에 대해선 ‘괴문서’라고 지칭했다.

하지만 고발사주 사건 1심 재판부는 고발사주 사건을 실체있는 ‘검찰의 선거개입’으로 판단했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핵심 참모인 손준성 대검수사정보정책관과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들이 고발사주 고발장 작성과 검토 과정에 직접 관여했음을 인정했다.

대검수사정보정책관은 검찰총장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자리로 검찰총장만의 지시를 받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윗선 및 배후 논란’이 다시 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또 공직선거법 위반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했다는 의도성은 인정했다. 이에 따라 2심에 ‘공직선거법 위반죄'의 법리 판단이 달라질지 여부도 주목된다. 

뉴스버스는 고발사주 의혹을 폭로하면서 사건의 성격을 ‘검찰의 선거개입(정치공작)’ 이자 ‘검찰권 사유화’로 성격을 규정했는데, 법원 역시 고발사주 배경으로 ‘검찰의 선거개입 의도’를 인정했다.  

고발사주는 2020년 4‧15 총선을 코앞에 두고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당시 검찰총장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범여권 정치인과 언론인 등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해달라는 고발장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보낸 사건이다. 고발사주 고발장엔 명예훼손 피해자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딱 3명이 적시됐다. 

 1. 고발사주 고발장 작성자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고발사주 사건을 수사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는 고발사주 ‘고발장’ 작성자를 특정하지 못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하지만 법원은 고발장 작성자를 사실상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로 특정했다. 

재판부는 고발장 작성자를 누구 한 사람으로 특정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들이 동원돼 작성·검토된 것으로 봤다. 

당시 수사정보정책관실 임홍석 검사는 2020년 4월 8일 2차 고발장이 김웅 의원에게 전송되기 5시간 전 연달아 두 건의 판결문을 검색했고, 4월 3일 1차 고발장 전달 1시간 전쯤에도 고발장에 첨부된 지모씨의 실명 판결문을 검색했다. 또 당시 수사정보정책관실 2담당관인 성상욱 검사도 1차 고발장 전달 10분 전쯤 지모씨의 실명판결문 3건을 검색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결국 손 검사는 임홍석‧성상욱 검사로부터 실명 판결문을 제공 받은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면서 “수사정보정책관실 외의 다른 사람이 고발장의 작성에 관여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가 고발장을 작성한 것으로 본 또 다른 근거는 고발장에 포함된 ‘도모하기로 마음먹었다’ ‘순차로 공모하였다’ 등의 표현이다. 재판부는 “검찰 공소장에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라며 “최소한 공소장을 써본 사람이 고발장을 작성 또는 검토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결론적으로 기소된 손 검사에 대해 “피고인이 지위를 이용해 고발장의 일부 작성 또는 검토를 비롯해 고발장 내용의 바탕이 된 수사정보의 생성 수집에 관여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2. 고발사주 고발장 손준성→김웅, 제3자는 없었다

유일하게 기소된 손 검사와 검찰, 김웅 의원은 모두 재판과정에서 손 검사가 김 의원에게 고발장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 제3자 개입 가능성을 주장했다. 제3자가 있을 경우 손 검사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부인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고발장에 따라 붙어 있던 텔레그램 상단의 ‘손준성 보냄’의 꼬리표를 유력한 증거로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손 검사와 김 의원 사이에 제3자가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김 의원이 받은 메시지 상단에는 ‘손준성 보냄’의 표시가 있기 때문에 그 메시지를 보낸 최초 사람이 손 검사임을 알고 있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말했다. 

김 의원은 2020년 4월 3일 1차 고발장을 당시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 조성은씨에게 보내기 직전 조씨와 전화 통화에서 “고발장은 저희가 만들어서 보내드릴게요”라고 말했는데, 재판부는 여기서 ‘저희’는 “김웅 의원과 손 검사일 개연성이 높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손 검사가 김 의원에게 18차례 보낸 메시지들이 모두 제3자를 거쳐 전달되는 상황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상황”이라며 “설령 제3자가 존재하더라도 손 검사와 김 의원의 존재를 인식한 상황에서 중간에 낀 전달책에 불과하다”고 제3자 개입 주장을 일축했다.

이에 따라 공수처가 기소 의견으로 이첩한 김 의원에 대해 ‘제3자 개입 가능성’을 들어 ‘불기소’ 처분한 검찰 수사를 놓고 ‘사건 무마’의혹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이 손 부장검사에게서 직접 고발장과 실명판결문 등을 전달받았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게 검찰의 불기소 처분 사유였는데, 1심 재판부는 전부 고발장을 만드는 주체인 ‘저희’를 손 검사와 김 의원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또 김 의원 수사당시 포렌식 수사관과의 면담 내용을 왜곡해 ‘제3자 개입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조작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김 의원 불기소 처분 뿐만 아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법무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손 검사를 서울고검 송무부장으로 영전시킨 뒤 재판중임에도 불구하고 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또 당시 수사정보정책관실 2담당관 성상욱 검사와 임홍석 검사 등도 요직에 배치했다.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 위원장과 윤석열 사단 검사들이 ‘고발사주’ 실체 규명보다는 오히려 관련자 ‘입막음’ 행태를 보여왔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 

3. 공직선거법 무죄지만 선거개입 의도 인정...2심 판단 주목 

고발사주 사건 재판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고발장의 작성·전달만으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객관적 상황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판례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대해 “선거운동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도 포함한다”고 밝히고 있다. (대법원 2005도 303 판결) 재판부는 이 점을 인정하면서도 선거 전에 고발이 이뤄지지 않아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유형적이고 객관적인 상황’ 이 초래되지 않았다고 봤다.

하지만 사실관계 측면에서 보면 재판부는 "손 검사가 당시 여권 정치인이나 언론인을 고발하며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거나, 그 시도에 협조하는 과정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사실상 ‘선거개입 의도’를 인정했다. “검사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인 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위반했다"며 “사안이 엄중하고 죄책도 무겁다”고 질타했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에서 범행이 이뤄진 사실까지는 인정됐기 때문에, 실제 고발의 실행이 아니라 고발장을 미래통합당 선대위에 보낸 것 자체를 ‘유형적 행위’로 볼 경우엔 2심에서 법리적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오찬 회동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대통령실)


4. 손준성 윗선·배후 실체 규명해야

1심 재판부의 판단은 고발사주 고발장 작성 검토 과정에서 손 검사 한 명이 아니라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 등이 관여 내지 동원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단독 범행이 아닌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조직이 움직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은 수사정보외에도 검찰총장과 관련된 내외부 정보 등을 수집 분석 관리하는 검찰총장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핵심 참모조직이다. 검찰 출신이라면 수사정보정책관실이 다른 스텝조직과 달리 검찰총장 지시만을 받아 움직인다는 점은 다 아는 일이다. 한동수 당시 대검 감찰본부장은 고발사주 재판에서 윤 대통령이 손준성 검사의 고발사주를 보고 받았을 것이라고 증언한 바도 있다.

검찰 조직에서 검찰총장 지시만 받는 참모 조직이 단독 행위로 선거개입 시도를 한다는 것은 조직 체계상 믿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고발사주 고발장의 명예훼손 혐의 피해자가 윤석열 대통령, 김건희 여사, 한동훈 비대위원장 딱 3명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고발장 내용에도 당사자의 해명이나 주장을 담고 있는 부분이 포함돼 있기도 하다.

재판부는 손 검사의 고발사주 동기와 관련 "고발장이 당시 검찰을 공격하던 여권 인사 등을 피고발인으로 삼았던 만큼 피고인에게 고발이 이뤄지도록 할 동기도 있었다"고 밝혔다. 손 검사의 개인적인 동기라기 보다는 검찰 조직 차원의 동기라는 점에서 더더욱 윗선 지시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공수처는 대선 국면이라는 제약 때문에 배후 수사와 관련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등에 대해 충분하게 수사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검찰의 선거개입’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 범죄라는 점에서 특검 을 통해 실체 규명에 나설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5.  “정치적 중립 위반“...손준성 탄핵 재판에 영향 줄 듯

이번 판결은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손 검사 탄핵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형사 재판과 헌법 재판소의 탄핵 재판은 분리돼 있지만, 1심 재판에서 ‘선거 개입 의도에서 나온 범행’이라는 점이 인정된 이상 “검사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인 정치적 중립을 위반했다”는 점은 탄핵 재판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손 검사는 국회의 탄핵안 의결로 현재 직무가 정지된 상태다. 형사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으면서 승진한 전례도 없지만, 재판에서 ‘정치적 중립’ 위반이 인정된 손 검사에 대해 다시 징계위에 회부할 지도 주목된다. 앞서 손 검사에 대한 감찰을 진행했던 대검은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