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대책 빠진 622조 반도체 기지는 장밋빛 환상
622조 투자 반도체 클러스터는 포장지만 바꾼 재탕 재생에너지 확보 대책 없으면 수출 불가능 태양광에너지 남는 지방에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해야
1. 尹 '620조 투자' 반도체 총선용 국민 눈속임
정부는 지난 15일 ‘민생을 살찌우는 반도체 산업'을 주제로 한 윤석열 대통령의 세 번째 민생토론회에서 2047년까지 경기 남부 일대에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민간 기업은 622조원을 투입하고, 정부는 총력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이 발표에 따르면,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는 평택에서부터 화성, 용인, 이천, 안성, 판교, 수원으로 이어져 총 2,102만m²(636만평) 규모로 여의도 면적의 7배가 넘는다. 또 현재 세계에서 가장 넓은 대만의 TSMC 신주과학단지의 3.4배 규모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지난해 삼성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300조 투자 계획을 재포장하고, SK 가 120조를 투자하는 용인 원삼 클러스터와 기존 화성 평택 오산 등의 클러스터안을 혼합한 것에 불과하다.
삼성은 지난해부터 이미 삼성반도체 클러스터로 남사읍, 이동면, 원삼면을 연결하여 L자형 반도체벨트를 추진 중이다. 또 SK하이닉스는 국가첨단산업벨트 조성계획을 토대로 문재인 정부부터 용인 원삼면에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 산업 생태계인 K반도체 벨트를 구축하고 있다.
결국 이번에 발표된 620조 투자규모는 이미 추진중인 SK와 삼성의 투자규모 420 조에 200조를 추가한 것인데, 이 또한 기존의 이천 ,평택, 화성, 오산 등지의 연속적인 투자(자본적 지출, 부분 증설 투자 등)를 감안하면 사실상 재탕에 포장지만 화려하게 바꾼 것으로 볼 수 있다. 더 냉정하게 보면, 총선을 앞두고 국민을 눈속임하는 행동으로 평가할도 수 있다.
2. 반도체 클러스터의 핵심은 전력망…LNG발전소는 미봉책
우선 용인 남사·이동읍에 조성될 반도체 클러스터는 하루 10GW 이상의 전력을 필요로 할 것으로 추산된다. 순차적으로 가동 공장이 늘어나면 하루 전력 수요가 2029년 0.4GW, 2042년 7GW, 2050년 10GW로 커질 전망이다. 수도권 내 역대 최대 전력 수요량의 4분의 1 수준이다. 여기에 SK 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 수요까지 더해야 한다.
정부는 용인 클러스터 내 LNG발전소 6개를 지어, 초기 전력 수요 3GW를 충당한다는 방침이다. 공장 가동이 본격화하는 2030년에 맞추기 위해 2027년 착공에 들어간다.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LNG발전소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탄소를 배출하는 LNG발전 전력으로는 용인 클러스터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 한계를 드러내는 정책이다. RE100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현재 경기도의 전력 자급률(전력 소비량/전력 생산량)은 60% 안팎 수준이라 이들 클러스터가 소비하는 전력 상당 부분을 자급률이 높은 지방에서 끌어와야 하는 상황이다. 전남은 170%, 경북은 190%에 달한다.
정부는 대용량 송전선로를 깔아 지방의 전력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구상하는 전력망은 동해안과 수도권을 잇는 횡축, 호남과 수도권을 잇는 종축으로 구성된다. 이른바 국가 전력고속도로(ETX)다. 2036년 준공을 목표로 한다. 국가 전력고속도로 준공 전까지 별도의 전력 공급 대책이 필요해, 그 동안엔 LNG발전소로 공장을 돌리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그런데 이 또한 근본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동해안에는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가 밀집해 있다. 신한울 3·4호기 신규 원전 건설도 추진 중이다. 횡축에선 총 길이 280km에 달하는 송전선로를 통해 8GW의 전력을 공급받는다는 계획이나 문제는 원전은 명백하게 RE100에서 배제된 에너지원이라는 점이다. 반도체 수출과 윤석열 정부가 매달리는 CF100과는 연관이 없다는 현실을 도외시한 무모한 정책이 될 수 있다.
호남의 남아도는 태양광에너지를 끌어오는 종축의 송전선로는 해저에 구축할 방침이다. 육상 송전선로 추가 건설은 전력망 구축 목표 시점에 준공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북당진-고덕 송전선로는 당초 2015년 준공 예정이었으나 주민 반발로 송사를 거치면서 계획보다 8년 늦어졌다.
대안으로 제시된 보성~고흥 등 해저 송전선로 구축 사업도 생태계 교란 등 해양 환경 파괴를 초래한다는 반대 목소리에 부딪힌 바 있어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발표하면서 “현재 글로벌 경쟁 상황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지만 이처럼 수백km 떨어진 지역에서 전력을 끌어오기 위한 전력망 구축은 반도체 속도전에 장벽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속도를 강조하는 정부 기조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3. RE100 없이는 반도체 수출 불가능
더 큰 문제는 전력을 공급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수출 산업이기 때문에 글로벌 규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RE100이 확산하면서, 글로벌 주요 기업은 자사뿐 아니라 협력사에도 RE100 달성을 요구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도 RE100 대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9월 용인 원삼면의 반도체 건설 현장을 찾아 “앞으로 그린 에너지에 대응하지 못하면 제품을 못 팔게 되는데, 과거와 달리 지금은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고객사인 애플은 반도체 업계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이끌고 있다. 협력사에 재생에너지 100% 전환을 압박하고 있는데, 기한은 2030년이다. 서버용 반도체 고객사인 마이크로소프트(MS)도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2년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고객사들은 100% 재생에너지로 제품을 생산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요구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재무적으로 B2B 사업에서 최대 31조 5,000억원의 매출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년 기준 B2B 매출액 126조원에서 최대 20%의 매출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재생에너지 전환이 더디다. 지난해 총 전력 사용량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중은 31%에 그쳤다. 특히 반도체(DS) 부문은 이 수치가 23%에 불과하다. 반도체 공장이 자리 잡은 기흥·화성·평택에서의 재생에너지 사용이 저조한 탓으로 풀이된다.
이에 반해 삼성전자 경쟁사는 애플의 시계에 발맞춰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파운드리(위탁생산) 세계 1위 기업인 대만의 TSMC는 지난해 9월, RE100 달성 목표 시점을 기존 2050년에서 2040년으로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보다 10년이 빠르다. 과연 삼성전자는 이 파고를 반도체 클러스터만으로 돌파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는 고객사의 RE100 달성 목표 시점까지 재생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용인 클러스터에서 생산한 반도체를 파는 데 지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RE100이 수출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4. 세계는 지금 국가차원 재생에너지 주도
지금 세계적인 경제 이슈는 재생에너지이고 기후 변화다. 올해 세계경제포럼(WEF2024)은 ①분절된 세계에서의 안보와 협력, ②새로운 시대의 성장과 일자리, ③경제와 사회의 발전 동력으로서의 AI, ④기후, 자연, 에너지 장기 전략 등을 주요 테마로 정했다. 경제 산업에 있어서 재생에너지 기조가 더욱 강화될 수 밖에 없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10월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행해, 시멘트·전력·철강 등 6개 분야 제품을 EU 역내에 수출하는 기업은 탄소배출량을 보고하도록 했다. 보고 대상에는 공정 과정(직접 배출)뿐 아니라 전력 생산 과정(간접 배출)에서의 탄소배출량도 포함된다. 당장은 CBAM에 반도체 분야가 포함되지 않지만, 세계 시장에서 탄소를 배출하는 발전원에 대한 규제는 강화하는 추세임을 알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EU의 CBAM 등은 선진국이 감축하고자 하는 온실가스 배출 범위가 직접 배출량(스코프1)뿐 아니라 간접 배출량(스코프2)과 공급망 전체의 배출량(스코프3)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수출기업이라면 서둘러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왜 우리나라만 유독 재생에너지 정책이 후퇴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5. 대안 : 태양광에너지 넘치는 지방에 클러스터 구축을
전문가들은 “RE100과 현실적인 전력 공급을 고려하면 재생에너지가 생산되는 지역에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게 합리적이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런 전문가들의 대안은 외면당하고 있다.
정부의 막대한 재정과 세제 혜택을 토대로 진행되는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는 살펴본 바와 같이 일단 전력 수급에서 RE100까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출발했다. 난관도 많다.
300만 일자리 창출과 수출 확대 등 구호성 환상에 빠져선 안된다. 양적인 허구 대신 질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전국 재생에너지의 42% 비중에 해당하는 8.8GW 규모의 태양광 발전 설비가 몰려 있는 호남의 경우 클러스터 전력 수요의 88%에 달하는 공급 능력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
반면 호남 지역 태양광은 수요 부족을 겪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4월 봄철 전력 수급 대책으로 호남과 경남 지역 태양광 설비를 대상으로 출력제어 실시 방침을 밝혔다. 전력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정전 우려가 있어, 공급을 줄이는 것이다.
그간 제주도에만 시행하던 출력 제어가 호남으로 확대됐다. 참 어이 없는 상황이다. 기업은 RE100을 충족하지 못해 수출이 막힐 판인데, 어렵게 갖춘 재생에너지 시설은 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 호남의 태양광에너지를 기반으로 일부 설비 확장만으로도 얼마든지 RE100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할 수 있다. 클러스터를 호남 지역에 짓는다면 LNG발전소로 공장을 돌려 에너지 리스크를 키울 필요도 없다.
국가 전력고속도로보다 전력망 구축 규모를 대폭 축소해 신속하게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 물론 호남만이 아니라 영남도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확대하여 지방 분산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수도권을 버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인력 수급을 들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지방에 반도체 고급 일자리를 공급하면 , 지방 소멸을 막고 수도권 폭발도 막는 ’도랑도 치고 가재도 잡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국가 차원의 전력 수급 균형 측면에서도 용인보다는 호남이 유리하다.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인형은 가치공학(Value Engineering)분야 국제공인 CVS자격증을 보유한 프로젝트 컨설턴트다. 서울대 농학과를 거쳐 연세대 대학원 경제학과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한국신용정보에서 기업 평가·금융VAN업무를 맡았고, 서울대 농생대에서 창업보육 업무를 했다. 지금은 소비자 환경활동 보상 플랫폼을 구축 중이며, 개인신용정보 분산화 플랫폼도 준비중이다. 금융‧산업‧환경‧농업 등이 관심사다. 기후위기 대응 세계적 NGO인 푸른아시아 전문위원이면서, ESG코리아 경기네트워크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