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 너머 바라는 세상’ 그리는 서양화가 허윤희
약 10개월 만에 다시 만났다. 이틀간 국립세종수목원 사계절 전시온실, 서울 평창동 갤러리, ‘프로젝트 스페이스 미음’에서 본 작품에서는 고립, 허무, 비탄이 느껴졌다. 어디서 온 것일까? 천성이 예민하다고 했다. 한의 정서를 허무로 이해하는 듯하다. 연원은 20대 대학 시절부터 시작된듯 하다고 말한다.
허윤희가 지난해 인터뷰에서 불교철학을 언급했기에 ‘연기론’(緣起論)을 물었다. 2600년 전 석가모니 붓다는 '그 어떤 것도 홀로 존재할 수 없다'고 설파했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밖의 사물‘인지 내 마음 거울에 비친 것’인지 알 수 없다. 당연히 작품 주제는 사람과 책의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9년간의 독일 유학은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이주자였기에 정체성에 고민했고, 내면의 거울에 비춰보는 감성적인 고립, 고독의 생활이었다.
생태에 관심갖다
귀국한 허윤희 에게 영향을 준 이는 생태론자 김종철(1947~2020)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광우병 파동’이 일어나면서 김종철의 강연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공장식 축사’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의 말과 글은 논리적이면서도 정서를 건드렸다. 촛불 집회에도 나갔다. <녹색평론> 표지화를 그렸다. 김종철은 첫 네 개의 시안 중 의식의 흐름에 따라 그려진 작품을 선택했다. 월례 모임에도 나갔다. 오래전부터 시대의 당면 과제에 대한 예술의 역할에 고민해 왔다. 허윤희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타인의 시각에서 영향 받는다. 학습이 생각으로 체화되고 작품으로 나오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기후변화는 전 세계 에너지의 약 80퍼센트가 발생하는 화석연료의 대량 소비에 따른 온난화 가스 배출이 주된 요인이다. 건물은 전체 온실가스의 3분의 1 이상을 뿜어낸다. 최근 학자들은 급속한 지구 온난화로, 앞으로 7년 이내에 1.5도 이상 상승하게 되면 지구는 원래 기후로 되돌아갈 수 있는 탄력을 잃어버려 결국 지구의 모든 생태계는 파국에 이르게 된다고 전망하고 있다. 2009년 정초에 벌어진 용산 참사,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을 목격한 후 많은 생각을 하였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만년설과 빙하의 고장 북극 그린란드는 얼음이 녹아내린 땅이 진창으로 변했고, 그 결과 멕시코만의 해류 속도가 느려져 남대서양의 해수 온도가 상승하고, 그 여파로 남극 대륙의 동쪽 빙하가 붕괴되고 있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허윤희는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의 국내외 뉴스를 보면 볼수록 몸이 아팠다.
'사라져 가다 - 소망을 품다. 2020'은 그린란드 빙하의 거대한 얼음 장벽을 소재로 한 목탄 드로잉이다. 빙하가 녹아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순식간이다. 바다에 인접한 메트로폴리탄의 마천루는 곧 사라질 것처럼 빙하 잔해가 그 도시 바다에 떠 있다.
디오니소스적인 세상을 그리다
허윤희의 미(美)는 현상형식을 넘어선 디오니소스적인 미(美)다. 디오니소스 (Dionysos)는 그리스 신화의 생성신(生成神)이다. 새로운 세상의 펼침, 도래를 노래한다. 벽화 드로잉 작업은 그린 후 지우기까지 해야 완결된다. 기껏 하얀 벽을 상대로 전투하듯 만든 작품을 며칠 지나 지우는 행위 자체로만 보면 허무주의가 맞다. 지움은 새로운 것을 그리는 행위와 연결되어 있다. 허무를 딛고 일어서는 디오니소스적인 세상의 순환, 윤회를 보여주고 싶은 게 작가의 메시지이다. 녹아 무너지는 빙하는 앞으로도 계속 그릴 것이다.
‘나뭇잎 일기’를 쓰고 그린지 10년이 지났을 쯤, 식물탐사대에 가입했고, 멸종식물관련 강의를 들었다. 멸종식물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탐사대 소장은 현지 탐사 경험을 얘기했다. 덩치가 우람한 강연자는 울 듯 말하였다. ‘내년에 올 때도 꼭 살아있으라 말한 다음해 다시 찾았으나 식물은 사라졌다.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자신도 눈물이 났다.
난(蘭) 계열 식물은 옮기면 살지 못한다. 예쁘다고 알려지니 더 캐간다. 허윤희는 인연 맺은 친구들 초상화 그리듯 멸종 식물을 하나하나 그렸다. 녹아내리는 빙하를 그리면 몸이 아팠는데 식물을 그리자 살 것 같았다. 그녀가 그리는 멸종 식물 꽃 잎 하나하나는 화면에서, ‘파랗게 질린 노란 얼굴’이 두 손으로 뺨을 감싸고 입을 크게 벌려 비명을 토해내듯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지 않나.
비애, 꽃이파리가 되어 날다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비명(절규)’을 보는 듯 하다가도 허윤희의 목탄 작업 ‘별 밤’에서는 그 꽃 이파리가 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대상인 화자(話者)는 얼굴을 감싸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가 말한, “인생의 덧없음과 시간과 죽음이 삼켜버린 것을 되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깊은 비애감”을 표현한다.
뭉크는 파리와 베를린에서 공부하며 세기말 유럽의 격변을, 노르웨이로 돌아와 혼돈 속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다. 뭉크가 당시 세기말 격변에 대한 매혹과 공포의 충돌, 불안을 느꼈다면 100여년 뒤 허윤희는 인간 존재를 무너뜨리는 생태적 몰락 너머 무엇을 본 것일까.
원래 사생(寫生)을 좋아했다. 대상을 그릴 때 어떤 분위기로 자신의 마음을 담을까 고민한다. 절정의 아름다움, 그리고 사멸(死滅), 안타까움, 절망을 한 화면에 동시적으로 그리고 싶었다. 더 강렬하게 원색적이면서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런 모습으로. 종이 작업은 아크릴을, 캔버스 작업은 유화를 사용한다. 색감의 강렬함은 유화를 따라갈 수 없다. 작가 특유의 구도와 필선은 목탄 드로잉이든 유채색 작업이든 뚜렷이 나타난다. 작가는 유화 작업에 치중하겠다고 말한다.
'존재와 관계'를 그리다
허윤희는 1995년부터 2004년까지 겨울이 긴 독일 북부 브레멘에서 공부했다. 이 기간 개인사와 맞물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경구가 와 닿았다. ''인과 연이 화합하여 만들어 낸 모든 존재와 행위(諸行)'는 '항상 하는 것은 없다(無常)' 나라는 존재도, 내가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행위 또한 무상하다. 모든 존재는 생주이멸(生住異滅)한다. 행복은 '늘, 이 자리, 현재'에 있다는 깨달음이 왔다. 마음은 환영, 꿈, 물거품처럼 사라져간다. '지금, 여기'에 정주(定住)해야 한다. 작품의 주제를 관통했다.
프랑스 시골을 산책하면서 모티프를 얻은 '어떤 집'은 덩굴이 집을 휘감고 있는 풍경이다. 집과 나무가 일심동체의 사랑일 수도 있고, 덩굴이 창과 문을 다 휘감으면 집은 고립된다. 존재와 관계에 대한 무의식이 투영된 풍경화라는 게 작가의 변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은 인연에 따라 그때그때 모습을 드러낼 뿐 모든 것은 상호관계 속에서 이뤄진다. 연기론은 그의 작품 속에 배태되어 있었다.
강박과 광기의 미를 추구한다
그림과 글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게 있다. 글과 그림은 서로 보완 관계이다. 둘 다 작가에게는 표현 수단이다. 글을 쓰면서 깨닫고 알게 되며 치유받는 경험도 한다. 미술 작업의 피로가 풀리기도 한다. 글 쓰기가 미술 작업의 한 과정이 되었다. 앞으로도 병행할 것이다. 그림과 글쓰기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빙하가 녹아 내리거나 식물들이 사라져 가는거나 같은 맥락이다. 결국 생태(生態)는 인간의 문제, 도시 문명 중심의 인간의 문제로 돌아온다. 인류 사회는 과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급격하게 세계를 인간 중심으로 인식하면서 자연을 도구화하였다. 이런 흐름 속에서 자연세계를 대상화하여 '환경'으로 보는 데 길들여져 왔다.
사회심리, 경제적 요인으로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발전이 중단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인구 급감의 추세로 가면 불과 두 세대도 지나지 않은 2070년이면 한국이 멸종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허윤희는 자신과 자신의 세대, 미래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는 자각이 든다 했다. 당대의 환경적 재난이 가져온 변화에 관심을 가지며 동시대인과 불안을 공유하면서도 ‘익명의 섬’으로서 소외감과 우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러면서 ‘무너져 내리는 빙하’가 터져 나온 게 아닐까? 이 땅에 깃든 신내림의 미(美), 뭉크에서 보듯이 강박(強迫)과 광기(狂氣)로 표현되는 미(美)이기도 하다.
보이는 모습 너머 바라는 세상
난 당초에 작품의 스케일에 압도되었다. 입면체 평면에 그 만한 크기로 공개적으로 그려내는 이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왜 목탄일까를 생각했다. 가공된 연필 굵기의 목탄을 막대기를 이용하든 직접 손으로 문지르든 재료의 성질을 잘 알고 사용한다.
허윤희는 연초 자신의 모교이기도 한 예술고 강사 자리를 16년 만에 그만두었다. 그림만 그리는 전업 작가로 살기 위해서다. 그만 두기까지 5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경기도 영은미술관에서 장기 레지던시 작가로 선정되어 작업을 한다.
대형 목탄 드로잉 작업이 그러한 결핍에서 왔음을, 충분히 연습없이 감행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화가에게 맘껏 작업 할 수 있는 대형 벽면 있는, 작업 후에 작품 보관할 수 있는 규모있는 공간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기지(基地·베이스 캠프)이다. 미래에 현재라는 과거의 증거로 미술만큼 확실한 게 없다.
화가는 나이가 들수록 공간을 확장하는 존재이다. 그녀는 새로운 작업실을 삶의 오랜 무대인 서울 평창동에 얻을지 외곽에 얻을 지를 고민하고 있다. 얻을 게 아니라 땅을 사서 지으라고 권했다. 걸작은 구체적인 삶에 충실할 때 나온다.
대담한 구도, 강렬한 필선과 색감의 특징 속에 고립, 허무, 비탄이 쏟아지 듯 드러나는 ‘보이는 모습을 너머 바라는 세상’을 담은 작품을 기대한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3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