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여중사 사건 ②] 성폭력 피해자 보호는 커녕, 노출시키고 따돌림한 군대

성폭력 피해 사실 신고 이유 전입부대서 집단 괴롭힘 '튕기기' 당해

2021-09-01     윤진희 기자

 

이 중사 유족들이 군 수사의 한계를 지적하며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공군 여중사 사건’의 당사자인 이 모 중사는 성폭력 피해 이후 부대 전출을 요청했다. 군은 숨진 이 중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원 소속부대인 공군 제20비행단에서 제15비행단으로 이 중사를 인사이동 조치했다. 그러나 이 중사는 전입 부대에서 ‘튕기기’ 를 당했다. '튕기기'는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을 정도로 괴롭혀 그 대상자 스스로가 다른 부대로 전출가게 만드는 것으로, 소위 '집단 따돌림'을 뜻하는 군대 은어다. 

이 중사에 대한 조직적 2차 가해는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20전투비행단 정보통신 대대장인 김모 중령이 전입 부대인 15전투비행단 정보통신대대장 안모 중령에게 전화를 걸어 이 중사가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리면서 시작됐다.

숨진 이 중사가 전입 예정이었던 15비행단의 대대장 안 중령은 주간회의에서 숨진 이 중사가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과 윗선의 무마시도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신고’했다는 사실을 참석자들에게 알렸다. 해당 회의에 참석했던 어모 대위는 이 중사와 함께 근무하게 될 부사관들에게 이 중사가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전파했다.

이 때문에 이 중사는 성폭력 피해자라는 이유로 전입도 하기 전부터 비방과 음해, 괴롭힘의 대상이 됐다.

이 중사는 5월 20일 20비행단이 있는 서산에서 2주간 자가격리를 하고 15비행단이 있는 성남으로 이사했다. 이 중사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15비행단에 처음으로 전파했던 안 중령은 이 중사에게 전화를 걸어 ‘PCR’ 검사를 받았는지 물어봤고, 이 중사가 “자가격리를 끝내고, 20비행단에서 PCR 관련 별도 지시사항을 전달받은 게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안 중령은 “전속 올 때 PCR검사 받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 너는 중사가 돼서 그런 것도 모르냐”며 이 중사를 질책했다. 안 중령은 당시 정신과 진료와 상담을 위해 이동 중이던 이 중사에게 “PCR 검사를 받은 후 다른데 가지 말고 부대로 복귀하라”고 명령했다.

또 15비행단 운용통제실장인 명 모 대위는 이 중사가 성폭력 피해로 인해 청원휴가를 낸 두 달 동안의 행적에 대해 날짜별‧시간대별로 무엇을 먹었고 어디를 방문했는지를 모두 기록해 제출하도록 명령했다. 숨진 이 중사는 정신과병원과 상담실 방문 등 모든 내역을 작성해 상부에 보고했다. 이 중사는 사전 통보 없이 급작스레 전입 예정일보다 이틀 먼저 출근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부사관 전입 시 부단장이나 전대장 선에서 보고 하는 관례에도 불구하고 숨진 이 중사는 단장 보고를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숨진 이 중사는 당시 남자친구였던 김 중사에게 “어디 그 사고 난 여군 한번 보자는 식으로 느꼈다”는 취지로 심정적 괴로움을 호소했다. 또 전투복 보고가 허용되는 통상의 경우와 달리 이 중사는 정복 보고를 요구받았다. 여름 정복이 없었던 이 중사는 수소문 끝에 후임 하사에게 부탁해 정복을 빌려 입고 전입신고를 했다.

공군 성추행 사망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이모 중사를 회유하는 등 2차 가해를 한 혐의를 받고 있는 노모 준위가 지난 6월 1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구속영상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 중사에 대한 집단 따돌림에는 동료 부사관들도 동참했다. 숨진 이 중사는 전속 직후 여군 선임에 이끌려 부대 내 19개 사무실을 돌며 전입신고를 해야 했다. 성폭력 피해로 인해 타인의 시선에 두려움을 느끼던 이 중사는 당시 남자친구였던 김 모 중사와 가족들에게 심리적 부담과 압박감을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함께 근무했던 선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이 중사와 20비행단에서 함께 근무했던 김 모 중사는 “여기 튕기면 20비(행단) 다시 가야죠”라며 ‘튕기기’를 넌지시 암시하기도 했다.

15비행단 부대원들은 숨진 이 중사의 행동 하나하나를 꼬투리 잡았다. 이 중사는 당시 남자친구였던 김 중사와 혼인신고를 위해 반차사용을 요청했다가, 레이더반장이던 권 모 원사에게 보고 태도를 이유로 질책을 받았다. 이 중사는 전임 부대인 20비행단에서 보고했던 것과 동일하게 “필승 반장님 저 오늘 반차사용해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보고했고, 권 원사는 “평소 편하게 하는건 괜찮은데, 보고는 똑바로 해야 되는 거 아니야?”라며 면박을 줬다. 결국 이 중사는 혼인신고를 위해 만나기로 했던 김 중사와 자신의 부모님과의 약속에 30분가량 늦게 나타났다.

이 중사는 혼인신고를 마치고, 남편 김 중사와 함께 20비행단 내 남편의 관사로 이동했다. 남편 김 중사와 함께 주말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남편이 부대일로 나간 사이 혼자 남아 있던 남편의 관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혼인신고 7시간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