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빛 좋은 공기’...국가 폭력 겪은 두 도시의 이야기 다룬 다큐물

좋은 빛 '광주'와 좋은 공기 '부에노스아이레스' 의 비극적 역사

2021-09-12     김주희 영화 칼럼니스트

<좋은 빛, 좋은 공기>는 1980년 전후 한국과 아르헨티나가 군사독재 시절 겪은 국가폭력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룬 기존 영화와 달리 시간적, 공간적, 다층적 관점에서 비극적 역사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제공한다. 다큐멘터리이지만, 그 당시 참상을 기록하는데 머물지 않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이것을 후세에 전달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광주가 뜻하는 ‘좋은 빛’과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의미하는 ‘좋은 공기’에서 영화 제목을 가져왔다고 한다. 

출처:(주)엣나인필름

한국과 아르헨티나  
지구 반대편에 위치하는 아르헨티나는 우리나라와 의외로 관계가 깊다. 6.25 전쟁 당시 아르헨티나는 50만불의 현물 지원을 했고, 내년이면 양국 수교 60주년이 된다. 주 아르헨티나 대사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약 3만명의 동포가 거주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양국의 영화가 상대방 국가의 극장과 영화제에서 상영되기 시작했다. 

한국과 아르헨티나는 군부독재에 의한 집단학살을 경험했다. 5.18기념재단에 따르면 1980년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광주 시민 5,517명의 피해자(사상자, 행방불명자, 구금자 포함)가 발생하였다. 아르헨티나 군부 세력은 1976년-1983년 동안 3만명의 희생자를 만들었다. 이들은 그들에 반대하는 각계 각층의 사람을 납치, 감금, 고문, 살해하였다. 전혀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두 나라가 참담한 역사를 경험한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물론 군사독재의 만행이 두 나라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출처:(주)엣나인필름

국가폭력에 대한 다양한 관점 
이 다큐멘터리는 피해 당사자와 가족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예를 들면, 80년 광주에서 부상자를 치료했던 의사와 간호사, 항쟁의 현장을 눈앞에서 지켜보았던 시민, 민주화 운동의 후유증으로 가족을 학대한 아버지와 유골 발굴 참여자의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담고 있다. 

또한 교차 편집을 통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생존자, 실종자 가족, 유골 발굴단, 군사정부에 의해 강제로 입양 당한 어린이와 그들을 찾고 있는 가족의 인터뷰를 들려준다. 이 영화는 피해자와 가족들이 겪은, 지금도 지속되는 고통과 아픔은 시대와 장소에 따른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과 국가폭력의 결과가 광범위한 부분에 걸쳐 상당히 오랜 기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거-현재-미래와의 연결  
<좋은 빛, 좋은 공기>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의 연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임흥순 감독은 피해자 가족의 삶의 복원을 위해선 행방불명자의 유골 발굴 작업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가족의 생사가 확인되는 시점에서 그들 삶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유골 발견 없이는 그들의 고통이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도시의 유골 발굴 작업을 통해 우리 측의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작업의 필요성을 암묵적으로 제시한다.

출처:(주)엣나인필름

특히 양쪽 고등학생의 워크샵을 통해 이러한 역사가 현재 어떻게 인식되고 이해되고 있으며,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보여준다. 미래세대에게 잊혀진 역사가 아닌 살아있는 역사로 기억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면서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와 차별화시키고 있다.
 
기억으로서의 공간 유지와 복원 
이 영화는 기억으로서의 공간과 장소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있다. 때때로 인터뷰를 진행할 때 의도적으로 인터뷰 대상자와 관련 있는 장소에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장소를 방문함으로써 그때 당시 그들이 느꼈을 공포감, 불안감, 무서움 뿐만 아니라 장소가 주는 많은 정보를 관객이 감지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관련 공간의 보존은 중요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원형 그대로의 비밀수용소 보존 노력과 적극적인 유물 발굴 작업은 인상적이었다. 반면 5월 어머니회가 전남도청의 원래대로 복구를 위해 몇 년간 지속하고 있는 농성을 보면서는 안타까웠다. 비슷한 고통을 겪었는데, 역사적인 장소를 대하는 태도는 참 다르다고 느꼈다. 이 부분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또한 피해자 가족 여성들 모임인 광주 ‘5월 어머니회’와 부에노스아이레스 ‘5월광장 어머니회’의 형성 과정과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도시 이름도 유사점이 있더니, 단체모임명도 정말 비슷하다.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가 있는 듯하다. 국가폭력은 가족 잃은 여성을 투사로 만들었다.

출처:(주)엣나인필름

지리적으로 굉장히 멀리 떨어진 두 도시의 협력작업을 통해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피해자 가족의 투쟁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국가폭력에 의한 참상의 반복을 막기 위해 기록과 기억의 보존이 필요하며, 이를 통한 역사적 의미의 후세 전달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아마도 더 근본적인 메시지는 여기에 대한 우리의 관심일 것이다. 

김주희는 뉴질랜드 와이카토(Waikato)대학에서 ‘영상과 미디어’를 전공한 예술학 박사이다. 뉴질랜드는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2000~2003) 시리즈와 <킹콩>(2005)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영화 제작 강국이다.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다. 여전히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한 채 유튜브 <영화와의 대화>를 운영하는 유튜버로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