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경 시인의 융합예술작품전 ''사물, 아름다움의 구원'

버려진 물건을 새롭게 탄생시켜 일상 예술로 구현 경기 화성시 봉담읍 엄미술관, 9월 26일까지

2021-08-29     심정택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엄미술관(www.ummuseum.com·관장 진희숙)은 기획전시 성찬경전, 〈사물, 아름다움의 구원〉에서 시인 성찬경(1930~2013)의 시와 드로잉 그리고 오브제 작업이 어우러진 일련의 아카이브 컬렉션을 소개한다.  

시인은 주변을 둘러싼 일상과 그 일상을 대변했던 생명이 다한 사물의 존재 가치를 마치 ‘돋보기 관점’으로 바라보며 폐기(廢棄)의 무가치로부터의 회생과 순환의 미를 탐구하고 이를 일상예술로 구현하였다.

무제 124×42×43 오토바이·철제의자 부속, 철제 옷걸이, 나뭇조각, 나사, 알루미늄, 철사전선 2000년이후

시인은 전복적이며 소탈한 은유와 위트, 낭만적 응시를 통해 사물에 관한 특별한 사유를 투영하였다. 마치 쓰임이 다한 것들의 소우주와도 같았던 ‘응암동 물질고아원’ 속에서 간과된 사물의 세계를 사유하며 사람, 일상, 미래의 모습을 그리며, 낭만적이고 유미적 사색을 통해 시적이며 내러티브적 존재로서 감정의 미학을 입힌 조형 물질로의 부활을 소환하였다.

한쪽엔 신장결석 한쪽엔 사리, 2010년. 29.8×28×3.5 철판, 다리미 부속, 나사, 쇳조각, 철사 

성찬경은 1950년대부터 문학 뿐 아니라 발아기에 있던 현대미술에도 눈을 뜬다. 시간과 공간 속에 놓인 사물을 보고 몸과 정신으로 대화하며 관계를 맺는다. 전시에서는 매체와 표현 방식의 경계를 예술 장르와 상관없이 자유로이 넘나들었던 댄디 모더니스트의 50여 점 작업을 펼친다. 

한편 그의 작업을 주된 모티브로 하여 안성석(1985, 뉴미디어, 설치)의 3D 애니메이션 영상 설치와 최혜란(1989, 회화, 설치)의 벽화 작업을 포함하는 다면적 전시 구성을 통해 시문학-시각예술, 작고-현존 예술가의 실험적인 매칭 전시이기도 하다. 최혜란은 성찬경이 ‘말예술용 요술지팡이’를 가지고 하던 퍼포먼스 장면을 <가치없는 그리고 가치있는 것 사이에> 작품으로 표현했다. 예기치 않은 매체의 조화와 표현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입체적인 아카이브 전시는 엄미술관 특유의 큐레이팅 노하우에 기반한다. 

가치없는 그리고 가치있는 것 사이에. 왼쪽 벽면

큐레이팅 노하우는 작가의 기물들을 러시아 정물화 그릴 때 대상처럼 정교하게 배치하는데 있다. 물론 독특한 미술관 공간 구조를 최대한 활용하기에 가능하다. 

바니타스를 담은 정물화 그리는 작가의 작업실을 연상해 보라. '바니타스'는 유한하고 세속적인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허무를 뜻한다. 정물화엔 전축의 턴테이블 부속, 쇳조각, 파이프 조인트, 철제 스테이플러, 나사, 양은 도시락통, 철제 재봉틀, 주전자 등 온갖 사물이 등장한다. 이 물건들은 인간이 세상에 남겨두고 떠날 쾌락, 허영을 상징할까? 

동료 예술원 회원이기도 했던 성찬경이 탐구했던 사물에 대해 엄미술관 창립자이자 조각가인 엄태정은 전시 평론에서 말한다. “사물의 세계란 하늘과 땅을 포함하여 대지에 존재하는 일체의 것이 우리에게 말없이 다가와 스스로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일자(一者), 타자(他者)로서의 관계 속에서 자유롭게 펼쳐지는 넓은 터이며, 일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유로운 공간에, 유희의 성스러운 장소에 무엇 하나 사물이 아닌 것이 없는 사물로 펼쳐진 사물과의 유희 세계다.”   

미술관은 건축가 김성국(1937~2010)이 30년 전에 설계한 조각가 작업실 공간의 특성을 최대한 살렸다.  

엄미술관은 2019년 10월부터 12월까지 사진 작가 알렉스 반 겔더(Alex Van Gelder·1937~ )의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1911~2010)의 말년 초상 사진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2018년 10월부터 12월까지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1876~1957)의 작업 영상과 사진, 작품을 전시한 'Neverending Brancusi-현대 조각 예술의 시원과 영원성' 전시를 열었다.

미술관은 수원대 후문 근거리에 있다. 주변에는 융릉과 건릉도 있다. 공립미술관이 없는 화성시의 유일한 미술관이다. 개인 소유의 사립 미술관은 사실상 공공적 역할과 기능을 수행한다. 〈사물, 아름다움의 구원〉전은 9월 26일 까지이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