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과 이재명, '운명 가를 선택의 시간 맞았다'
윤석열, 공보팀 진용 구축 … 대권 행보 시동 체제·시대 교체에 대한 비전 여부가 선택 가를 것 윤석열, 최종 선택의 시간 얼마 남지 않아 ‘조국의 시간’ 앞에 침묵한 이재명 조국의 시간 길어질수록 이재명의 시름 길어져 ‘침묵이냐 돌파냐’ 선택의 시간 임박
➀ 윤석열의 시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공식석상인 우당기념관 개관식에 모습을 드러낸 데 이어 공보 진용까지 갖췄다. 윤석열의 시간은 검찰총장 사퇴로 이미 시작되었지만 한 걸음 더 나가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시동을 건 것이다. 윤 전 총장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출신 기자를 각각 대변인으로 내세우면서 ‘투톱’ 공보팀을 구성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잦았던 메시지 혼선 문제도 어느 정도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메시지 혼선은 사실 상당히 심각했다. 메시지의 혼선으로 인해 윤 전 총장이 여기저기 눈치를 보고, 계속 거취를 번복하는 것으로 비쳤다. 본래 윤 전 총장은 직설적이고 명쾌한 화법으로 점수를 많이 땄다. 대중들은 노련한 정치인들의 세련된 화법에 때에 따라서는 안정감을 느끼지만 식상해 하기도 한다. 이낙연 전 총리가 대표적이다. 총리 시절에는 플러스 요인이었던 그의 화법이 정치인 그리고 당대표로 복귀한 후에는 마이너스 요인이 됐다. 메시지의 내용보다 메시지가 전달되는 방식이 더 문제였다. 본인의 입으로 메시지가 나오지 않고 계속 측근 또는 최측근, 심지어 친구의 입을 통해 메시지가 전달되고, 또 앞에서 나온 측근의 말이 최측근에 의해 부정되는 모습이 반복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최근 국민의힘 정치인을 여럿 만난 사실이 보도되고, 그 사람들을 통해 향후 거취에 대한 예측들이 보도되면서 한 때 국민의힘 입당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듯했다. 이준석이 당대표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입당 결심을 굳힌 이유라는 배경설명까지 덧붙여졌다. 그러나 곧이어 죽마고우로 알려진 이철우 연세대 교수를 통해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는 해명성 인터뷰가 나오면서 윤 전 총장의 거취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분위기다.
어쨌든 윤 전 총장의 최종선택이 그리 많이 남은 것 같지 않다. 그의 선택이 겉으로는 국민의힘 입당과 독자 정치세력 구축 사이의 선택이지만 그 밑바탕에선 훨씬 복잡한 생각이 교차할 것이다.
첫째는 어느 길이 더 쉽고 더 편하고 더 가능성이 높은 길인지 따지는 일이다. 다분히 정치공학적 계산이다. 이러한 계산이라면 국민의힘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 전과 후의 여론조사 지지율을 비교하면, 무당파와 중도층에서 의미있는 숫자가 빠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TK지역과 젊은 층에선 올라 전체 지지율은 비슷하다. 실제 입당을 하면 영향이 더 커질텐데, 캠페인 초기에 중도표를 버리면 나중에 복원이 쉽지 않다.
둘째는 어느 길이 더 바람직한지 따지는 일이다. 기준은 대선에 대한 윤 전총장의 생각이다. 만약 윤 전총장의 생각이 국민의힘 당원 및 지지자 일반이 바라는 '묻지마 정권교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국민의힘 입당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윤 전총장이 전면적인 시대교체, 정치교체, 체제교체라는 더 큰 비전을 갖는다면 새로운 정치세력 구축이라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전략적으로도 괜찮은 선택이다. 윤 전총장 지지자 가운데 무당파 및 중도층 지지자는 이와 비슷한 기대를 갖고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것이다. 보수 유권자들이 대선을 치를 야당의 선장으로 이준석을 전략적으로 선택했 듯, 정권 교체를 위해 윤석열을 전략 선택하도록 설득하면 된다.
➁ 조국의 시간은 곧 민주당과 이재명의 시간
<조국의 시간>의 출판 동기에 대한 억측은 필요하지 않다. ‘책을 출간해 강하고 넓은 지지를 확인한 후 대선 출마’와 같은 말들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하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역사상 최대의 추락을 직접 겪고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사람의 심리를 가감 없이 보여준 것일 뿐이다. 억울하고, 분하고, 한순간 복수심에 몸을 떨다가 다시 좌절하고, 명예를 회복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의 표출이다.
어쨌든 현 추세라면 <조국의 시간>은 50만부까지 팔리지 않을까 싶다. <조국의 시간>과 함께 조국사태도 돌아왔다. 조국 전 장관의 지지자들에겐 큰 기쁨이지만 민주당과 이재명 지사에겐 큰 시름이다. 민주당 서울시당이 실시한 ‘재보선 패배 원인에 대한 서울 유권자 대상 포커스그룹 인터뷰(FGI)’는 조국문제가 ‘이탈’ 및 ‘탈동원’ 즉, 총선에서는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보선에서는 국민의힘을 지지하거나 기권한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조국의 시간>이 많이 팔릴수록, 조국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민주당과 이재명 지사의 고민은 깊어질 것이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조국사태에 대해 사과를 하면서 민주당과 조국 문제를 분리하려했지만 <조국의 시간>이 다 무로 돌려놨다. 아마도 같은 마음이었을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들은 <조국의 시간> 흥행 앞에서 다시 굴복했다. 유일하게 다르게 대응한 후보는 이재명 지사다. 침묵으로 발을 뺐다. 송영길 대표가 사과한 후에는 "제가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속내를 솔직히 밝혔다. 민주당 경선을 치러야 하는 입장에서 당내 친조국 당원들과 척을 질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수 국민의 정서를 거스를 수도 없는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다만 이번에는 넘어갔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앞으로 조국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을 수 없이 요구받을 텐데 그 때마가 침묵으로 뭉갤 수 있을까?
침묵이 비록 적극적인 옹호는 아니지만 하나의 입장이다. 내로남불과 불공정에 분노하는 젊은 유권자들은 계산된 침묵에 더 분노할 수 있다. 평소 계산하지 않은 듯한 사이다 발언으로 인기를 끌어온 이 지사의 스타일과 배치된다. 침묵에는 어느 한 쪽도 거스르지 않겠다는 계산에서 나온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정치인의 계산 자체는 나쁘지 않다. 다만 계산을 들키면 문제가 된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을 돌출발언과 직설화법 때문에 계산하지 않는 정치인이라는 좋은 이미지를 얻었으나 실상은 다르다. 그는 끊임없이 계산했다. 다만 대중에게 들키지 않았다. 고수였기 때문이다. 이재명 지사가 조국의 시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번처럼 침묵이라는 수준 낮은 계산이 아닌 어떤 신산(神算)을 보여줄지 주목한다.
윤석규는 서울대 인문대를 졸업하고 YMCA 경실련 등에 몸담아오다 DJ정부에서 청와대 시민사회국장을 지냈다. 2002년 노무현 캠프의 상황실장을 맡아 노무현 대선 전략의 밑그림을 그린 ‘정치전략통’이다. SNS 등에서 합리적 진보 논객으로 활동 중인 그는 날카로운 정치 분석으로 정평이 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