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숙 의원직 사퇴... 쇼는 맞지만 득있는 쇼

2021-08-26     윤석규 칼럼니스트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질의 응답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1. 의원직 사퇴는 대개 ‘정치쇼’이거나 위기모면용 '꼼수'

2019년 9월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철회를 요구하며 삭발을 했다. 당시 같은 무소속이었던 박지원 의원은 삭발식 관련 내용을 공유한 노영희 변호사 페이스북 게시글에 아래와 같이 댓글을 달았다.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3대 쇼는 1.의원직 사퇴 2.삭발 3.단식 왜? 사퇴한 의원 없고 머리는 자라고 굶어 죽은 사람 없어요.”

한 마디로 되지도 않을 일로 쇼하지 말란 소리다. 역대 사직한 의원이 없진 않다. 최근 3대만 따져도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아 임기 중 그만 둔 경우를 제외하고 18대 13명, 19대 16명, 20대 11명의 국회의원이 사직했다. 그러나 선거출마나 장관 임명 등의 사유가 대부분이다. 비리나 범죄로 제명되기 직전 사퇴하는 등 일신상의 이유로 사퇴한 경우도 소수가 있다. 하지만 정치투쟁의 일환으로 사퇴서를 제출하고, 실제 사퇴가 이루어진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그런 점에서 박지원 국정원장의 말이 터무니없지 않다. 

정치적 이유로 국회의원 직을 사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결국 쇼에 그치는 이유는 우선 그 사퇴 절차에 있다. 국회의원 사퇴 안건은 국회 개회 중에는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고, 폐회 중에는 국회의장의 재가를 받아야 한다. 정치투쟁의 방편으로 사퇴서를 제출하는 것은 대개 야당인 소수당인데 여당인 다수당이 사퇴안건을 처리해 야당의 투쟁을 도와줄 이유가 없다. 

2009년 야당인 민주당의 천정배 의원은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하자 의원직 사퇴서를 내고 장외 투쟁을 했다. 사퇴서는 1년이 넘도록 처리되지 않았고, 그는 결국 국회로 돌아왔다. 그가 자신의 진정성을 입증할 유일한 방안은 그동안 쌓인 억대의 세비 수령을 거절하는 것뿐이었다. 

2019년 자유한국당은 민주당이 선거제 개편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신속 처리할 경우 의원직 총사퇴를 불사한다고 선언했지만 아무런 후속 행동이 없었다. 

여야간 정치투쟁은 아니고 의원 개인의 정치적 입지 때문에 사퇴를 선언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18대 강용석 의원이 임기 3개월 남기고 사퇴를 선언했지만 본회의가 열리지 않아 사퇴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에도 꼼수사퇴라는 비판이 일었고, 그는 임기 마지막까지 꼬박꼬박 세비와 수당을 챙겼다. 20대 손혜원 의원은 목포 투기의혹을 받자 민주당을 탈당하면서 투기사실이 드러나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했지만, 기소가 된 후에도 의원직을 유지했다. 그는 임기를 마친 2020년 8월, 1심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2. 윤희숙, 가족 투기 의혹을 정권교체 프레임으로 전환 

윤희숙 의원의 의원직 사퇴는 성격이 애매하다. 사퇴의 변 한 대목을 들어보자. 

“권익위 조사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강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독립 가계로 살아온 지 30년이 되 가는 친정아버님을 엮는 무리수가 야당의원 평판을 흠집 내려는 의도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이번 권익위의 끼워 맞추기 조사는 우리나라가 정상화되기 위한 유일한 길이 정권교체뿐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보여줍니다.“ 

사태의 발단은 부친의 농지법 위반과 부동산 투기 의혹이다. 미디어법 날치기에 항의했던 천정배 전 의원보다 목포 부동산 투기 혐의를 받은 손혜원 전 의원 사례에 가깝다. 그러나 윤 의원은 조사 주체인 권익위원회의 의도와 공정성에 의구심을 제기하며 자신의 의원직 사퇴가 정권교체를 위한 정치투쟁의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영리한 프레임 전환이다. 

윤희속 의원의 사퇴도 쇼에 그칠 것이다. 우선 여당이자 다수당인 민주당이 국회에서 사퇴 안건을 처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그렇다. 민주당은 윤 의원의 사퇴에 대한 여론의 향방이 아직 불확실한 상태에서 의원직 사퇴 안건을 조급하게 처리했다가 윤 의원과 국민의힘에게 날개를 달아주거나 큰 역풍이 이는 상황을 우려할 것이다. 

게다가 윤 의원 부친의 행위는 농지법 위반이 분명해 보인다. 대통령부터 퇴임 후 거처할 사저 마련을 위해 농지법을 위반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서 까짓 농지법 위반쯤이야 할 수도 있겠지만 농지법 위반은 국민 정서상 여전히 심각한 위법행위다. 그의 부친이 주민등록을 거짓으로 이전해 농지를 매입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또한 우리 국민 가운데 70대 중반 노인이 직접 농사를 지으려 고향도 아닌 지역의 계단식 논을 매입했을 거라 믿을 사람은 많지 않다. 매입 후 가격이 오른 것은 부수적인 문제다. 부동산 폭등의 책임이 문재인 정부에 있기도 하다. 

몇 가지 추가된 의혹도 밝혀져야 한다. 언론과 여당에선 윤 의원 부친의 세종시 농지 매입에 윤 의원 본인 또는 그 가족이 관여되어 있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였다. 법적 책임을 떠나서 윤 의원 측의 성실한 소명과 조사가 필요하다. 다만 윤 의원의 전 근무처인 KDI가 윤 의원 부친이 농지를 매입한 인근 지역 개발계획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담당했다는 것을 근거로 제기된 사전 정보 누출 의혹은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농지매입 시기는 2016년 3월, 윤 의원이 KDI에서 KDI 정책대학원(KDI부설이지만 KDI 본원과는 별도 기관) 교수로 소속을 옮기 때가 2016년, 국토부의 스마트산단 후보지 선정은 2018년 8월, KDI가 예비타당성 용역을 시작한 것은 2019년 12월이다. 타임머신을 타지 않는 이상 KDI의 용역 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퇴의 변도 깔끔하지 않다. “결혼할 때 호적을 분리한 이후 아버님의 경제활동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말은 납득할 만 하다. 뒤이은 문장이 문제다. 그는 “공무원 장남을 항상 걱정하시고 조심해온 아버님의 평소 삶을 볼 때 위법한 일을 하지 않으셨을 거라” 믿는다 했다. 효심 가득한 딸이 할 법한 표현일지 모르나, 이미 드러난 명백한 위법행위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공인이라면 절대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이다.  

양이원영 무소속 의원이 26일 부친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의원직 자진 사퇴를 밝힌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을 상대로 검찰 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3. 농지법 위반 민주당 의원과 다른 윤희숙의 대응
   국민의힘 미온적 대응 과실까지 덮어버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의원의 쇼가 아무런 정치적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다. ‘다르다’는 것과 사퇴의 ‘시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지난 6월 권익위원회의 민주당 의원 부동산 투기 전수조사 결과 발표로 시작되었다. 12명의 의원들이 비위의혹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부동산 명의신탁은 윤미향 의원 등 4명, 업무상 비밀 이용은 임종성 의원 등 3명, 농지법 위반은 양이원영 의원 등 5명이었다. 민주당은 비교적 신속하게 대응했다. 비례의원 두 명을 제명하고, 10명의 의원에게 자진 탈당을 권유했다. 경찰 수사를 통해 의혹을 벗은 후에 복당하라는 취지였다. 5명은 탈당계를 내지 않고 버텼고, 탈당계를 낸 5명의 탈당 처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상호 의원은 경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린 후 복당했다. 그러나 권익위원회는 우상호 의원의 경우는 공소시효 경과에 따라 입건하지 않은 것이지, 무협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 밝혔다. 초기 민주당 지도부의 신속한 대응이 무색해졌다. 

그런데 윤희숙 의원의 대응은 달랐다. 당 지도부가 윤 의원의 소명을 인정해 불문에 부치겠다고 했고, 적극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원직을 사퇴한 것이다. 물론 부친의 농지매입과 윤 의원이 관련이 있는지 여부는 앞으로 밝혀져야 한다. 그 점을 제외한다면 농지법을 위반한 당사자도 아닌데 사퇴했다. 농지법 위반 혐의를 받은 민주당 5인의 대응과 전혀 다르다. 

뒤에 가서 흐지부지 되었지만 지난 6월 소속 의원들의 부동산 불법거래 의혹에 대한 민주당 지도부의 결단과 비교할 때 이준석 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의 대응은 매우 미온적이다. 자신들이 직접 해당 의원들의 소명을 듣고 12명의 의원들을 문제 있음과 없음으로 분류했다. 민주당처럼 모두에게 자진 탈당을 권유한 후 경찰의 수사결과에 따라 조치하거나, 최소한 당 밖의 중립적 인사들에게 소명절차를 맡겨야 했다. 윤희숙 의원의 사퇴는 이러한 지도부의 과실까지 한 몫에 덮어버리는 효과를 거두었다. 윤희숙은 다르고, 윤희숙이 있는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다르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윤 의원의 사퇴 시기는 절묘하다. 만약 사퇴 시기가 본인의 임기 말이라면 진정성을 의심받았을 것이다. 또는 대통령 임기 중반이었다면 그다지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에는 본임의 임기 초반부이자 대선을 6개월 여 앞둔 시기다. 본인의 진정성도 덜 훼손될뿐더러 대선에 영향을 주기 좋다. 

대선은 여야 양 진영이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는 전장이다. 양쪽 모두 총력을 기울인다. 여야가 맞설 때 어느 한 편이 신무기를 획득하면 급격하게 기울 수 있다. 윤희숙 의원은 이미 뛰어난 정책 역량을 보여주었지만 의원직 사퇴로 여당을 공격할 또 하나의 무기를 얻었다. 부동산 내로남불의 철옹성을 뚫을 수 있는 무기다. 마치 온라인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새롭고 위력적인 무기 아이템을 추가로 장착한 것과 같다. 의원직 사퇴를 여당이 처리하지 않아도 윤 의원은 의원회관에서 철수한 후 홀가분한 상태에서 여당을 공격할 수 있다. 

4. 대선판 중도층 표심 흔들 가능성 

윤희숙 의원에 대한 여권의 공세가 격렬하다. 윤 의원의 사퇴가 여권의 고정 지지층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롱끼 섞인 여권의 역공도 야권의 고정 지지층에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피차일반이다. 전장은 중앙이다. 중도와 무당층(swing voter)의 반응이 중요하다. 

이번 과정에 대해 중도와 무당층은 윤희숙 의원의 손을 들어줄 것 같다. 사람들은 이성보다 감성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똑같이 부동산 불법거래 의혹을 받았는데 버틴 민주당 의원들이 의원직을 던진 윤 의원에 비해 쩨쩨해 보이리란 것은 불문가지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 윤 의원의 사퇴가 계산된 행동이라 비난해도, 또 실제 계산된 행동일 수 있지만, 사람들은 첫 인상에 많이 의존한다. 일단 한 번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은 대범한 결단이라 느끼면 그 뿐이다. 

적극적 지지층을 제외한 보통 사람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정치를 바라보며, 쏟아지는 모든 정보를 자발적으로 접하지도 않는다. 잔가지는 보이지 않고 몸통만 보인다. 의원직 사퇴라는 큰 몸짓만 보이고, 여당이 제기하는 여러 의혹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으로 들릴 수 있다. 

윤 의원이 자신의 사퇴 의미를 정권교체를 위한 결단으로 설명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국민의힘 당원과 지지자들은 이준석을 대표로 선출함으로써 그들이 정권교체를 얼마나 절실히 원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윤 의원이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의원직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번 대선은 양자구도다. 대선이 양 진영으로 갈려 팽팽할 때 더 절실한 쪽이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