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시대를 말한다 - 서용선 작가

2023-05-21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인물화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자신을 그린 자화상(自畫像), 거리 같은 배경으로 타인(他人), 군중(群衆)을 그린 작품들.

서용선(72) 작가가 인물화에 관심을 가진 것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이쾌대(1913~1965)를 제외하고는 인물 표현이 많지 았았다는 점에 착안해서이다.

“유럽의 중세·르네상스와 달리 조선 시대 그림은 산수(山水) 중심이지 인물은 제한적이었다. 문인화는 인간의 심성을 드러냈다. 근현대 문학은 인간을 다루었으나 미술은 더뎠다.”

작가는 인간·인물에 대한 40여년간의 작업이 미술사적으로 유의미하다는 점을 에둘러 말하는듯 했다.

록펠러센터 NY 60.8×76.3cm Acrylic on Canvas 2020.2021 /제공=Suh Yongsun Archive

미술의 장르·시대 구분은 서구 기준에 따라갈 수 밖에 없다. 미술사에서 2차 세계대전 종료 이후를 ‘현대 미술’(Modern Art) 이라고 하고, 다음 단계인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은 독일어 형용사 kontemporär에서 파생되어 나왔다. 

한국 현대 미술사 측면을 보면 서용선이 보인다. 그가 인물화를 택한 선택과 포착은 탁월하다. 작가는 전략을 구사할 줄 알아야한다.

서용선이 화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1980년대, 조선 500년 역사에서 짧았던 단종 시대에 관심을 가진 것은 화가로서 설 자리가 보였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시대 인간을 마치 발가벗겨 놓은 듯 거칠고 굵은 선을 붉게 칠한 역사풍경화 속에 펼쳐 놓았다.

소설가 김훈(75)은 “나는 되는대로 살고 있다. 전략은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고 싶은 것과 하고싶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게 전략적(戰略的·strategic)이지 않나. ‘전략적’은 싸움의 의미이다. 모든 싸움은 나와 내편의 생존이 목적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살아가는 존재이다. 하이데거는 ‘피투성(被投性, Geworfenheit)’이라고 하였다. 내던져진 존재 서용선은 나름의 싸움을 계속해 왔다. 1975년 늦은 나이에 대학 합격 통보 받고 입학전 서울 정릉 지인의 작업실에서 50호 크기의 첫 자화상을 그렸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화실을 열었으나 친구에게 빌린 돈의 이자는 계속 늘어만 갔다. 재학생은 전시회를 금하였기에 그림도 팔 수 없었다. 이성 문제 등 모든게 겹쳐 우울이 발병, 이상 행동들을 하였다.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부친 말씀 한 마디에 학교로 돌아갔다. 이후 과도할 정도로 책에 탐닉하였다.

정신과 전문의 친구는 이 때의 작품 이미지들과 함께 서용선을 사례로 연구한 논문을 학회에 발표하기도 했다.     

1982년 대학원 졸업후 스승들에게 발탁돼 모교 교수가 되었다. 그의 우울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셈이다. 

자화상 75×93.5cm Oil on Canvas 1975 / 제공=Suh Yongsun Archive

시대를 건너며 체화된 ‘붉은색’, ‘그리드’(Grid)

김훈 소설 '공터에서'의 '공터'는 자신의 부친이 살아온 ‘야만의 시대’를 일컫는 시간 개념이다.

서용선의 부친 역시 가족의 생존이 최고의 가치인 시대를 건너야 했다. 1950년대 후반, 부친은 서울 미아리 공동묘지 일대에 마련한 부지에 군용텐트를 쳐 가족 주거를 대신하며 인근에 집을 한 채씩 지어 팔았다. 

무덤가는 무성한 풀을 쫓는 야생 토끼들이 많았고 아이들은 놀다 종종 제대로 매장되지 않은 거무틱틱한 부패되지 않은 살덩어리를 가진 해골도 만났다. 그 해골에 뱀이 또아리를 틀고 앉아있곤 했다. 지금도 누님들은 이러한 옛 이야기를 싫어한다.

작가가 공동건축주인 경기도 양평 문호리 <ㅇㅅA>(‘오사’로 발음)건물은 전체가 붉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는 작품의 대상 인물의 눈에서부터 얼굴과 신체, 윤곽이나 격자의 선과 여백에 자주 쓰인 붉으죽죽한 색에 주목하였다. ‘(색이) 대상을 여백과 분리 또는 연결하며, 사실적 또는 추상적이기도 하며, 상징인 동시에 심리를 드러낸다’고 보았다.

서용선은 붉은색이 작품의 주조(主調)가 된 이유를 말한다. “첫째 관객을 자극할 목적, 둘째 1970년대, 앵포르멜 회화가 색을 배제한데 대한 거부감, 셋째 색을 이데올로기의 무기로 삼는 유신 독재 체제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경기도 양평 문호리 건물 / 제공 = Suh Yongsun Archive

내면에서 붉은 색은 검정과 흰 색의 중간에 위치하며 투명하다고 본다. 붉은 색은 서용선의 특징인 격자(格子) 즉, 그리드(grid)와도 연계된다.

“격자 형태의 선들은 투시원근법적인 도시 공간의 지각을 형성한다. 거리는 바짝 압축되고, 다른 시간 혹은 공간이 단일 이미지를 구성한다. 주관적 심리와 실재적 감각 사이에 존재하는 종합적인 지각의 이미지이다.” (건축가 정의엽) 

그리드는 권력에 대한 공포심리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서울 삼선교 사거리에는 엠피(MP) 글자가 선명한 하얀색 바가지를 쓴 헌병(憲兵)이 호르라기를 불며 차와 사람을 걸러냈다. MP가 Military Police(군사 경찰)의 약자라는건 군에 가서 알았다.

어느 날 마당에 정차된, 지붕을 탈착한 헌병 지프차가 갑자기 출발하면서 어린 서용선은 뒷좌석의 안전 바를 놓쳐 땅에 엎어지며 얼굴이 갈려 버렸다. 

미아리로 이사 간 후 얼마되지 않아 형사가 부친을 찾아왔다. 한켠에 선 형사가 부친에게 친인척 행방에 대해 묻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아직도 연락이 없느냐?'는 투였다.

멀찍이 떨어져 있었으나 아버지는 주눅 들어있었고 형사의 직설적 말투는 위협적이었다. 산세에 기댄 시멘트 벽돌(일명 브로크)로 얼기설기 쌓아올린 한적한 주택 마당에서 공포감이 엄습했다. 이 두 사건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깊이 각인되어 있다. 

성인이 된 1970년대 초 준공된 청계 고가도로 밑을 걸어 지날 때 느낀 공간 위압감은 이후 작업에서 구조와 색채로 드러났다. 당시 소나무 풍경 배경의 그리드는 뚜렷했다.

화면의 장소인 지하철, 건물, 상점 등은 두드러진 그리드와 다양한 원색의 조합이 특징이다. 그리드는 모더니즘 건축의 핵심 평면 개념으로 근대와 현대가 중첩된(layers) 느낌을 준다. 특유의 원색의 붓터치는 날것 인간을 드러낸다.

멜본 트램 Melborne tram 265×147cm Acrylic on Canvas 2013. 2015 / 제공 = Suh Yongsun Archive

금속에 들러붙어 말라버린 피 같은 붉은색은 입체적으로 와 닿고, 상징적 풍경과 장소로 적시된 단순·직선적 표현은, 정확하고 사실적 묘사가 될수록 제한적 이미지와 결론에 이르는 위험을 감소시킨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논문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 1908>에서 괴테 등 (문학)작가의 작품 속에 나타난 에피소드들과 성격 묘사들이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의 영향이라고 본다.<창조적인 작가와 몽상, 프로이트 열린책들 1996년>

자화상 

"Ogni pittore dipinge se"(모든 화가는 (결국) 자신을 그린다). 이 문장은 르네상스 시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언급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나리자의 얼굴 속에서 다빈치의 페르소나(persona)가 포함되었다는 학계의 이론으로 개연성을 얻고 있다. 이 화두는 회화의 심리적인 차원과 맥락에서의 정의로 의미를 갖춘다.(미술사가 김정락)

카라바조(Caravaggio·1573~1610)의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1610)에서 다윗의 손에 들린 골리앗은 살인자로 전락한 현재의 카라바조 자신의 얼굴이다. 다윗은 젊은 카라바조의 얼굴이다. 젊은 카라바조가 나이 든 카라바조를 죽인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벽화 ‘최후의 심판’(13.7×12.2m 1537~1541)에 등장하는 인물 중 성 바르톨로메오는 빈 자루처럼 축 늘어진 살가죽을 한 손에 들고 예수를 바라보고 있다. 그가 들고 있는 인피가 미켈란젤로 자신이다.

바르톨로메오는 인도로 건너가 하느님 나라를 알렸고, 인도 왕과 공주를 비롯한 사람들을 개종시키다가 살가죽이 벗겨지는 형벌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서용선은 1975년 자화상을 처음 그린 이후 틈틈이 작업을 했다. 1995년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처음 참가한 미국 버몬트주에서 부터 본격적으로 그린다. 도구나 재료에 대한 제한이 덜한 드로잉으로 시작했다. 자화상은 매개체로 거울이필요하다. 불현듯 멋있게 그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인간을 이해하는 한 방법으로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한건데 치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화상 116.7×91cm Acrylic on Canvas 2022 / 제공 = Suh Yongsun Archive

서용선은 “내가 나를 볼 수 없기에 애초부터 자화상은 불가능하다. 거울에 비친 이미지를 보고 나라고 추정할 뿐”이라면서 “자신이 살아있는 생생함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관건이다”고 말한다. 

또한, “자화상을 그릴 때 환경에서 나를 분리하는 게 불가능하다. 내 모든 것이 동시에 작동하며 담긴다”고 말한다. 인간의 눈은 불확실하나 감각은 생생하기에 그 모든 것을 불러온다.

프로이트는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에서 “행복한 인간은 결코 몽상하지 않는다. 오로지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만이 몽상에 빠진다”고 말한다. 

“자화상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겪는 고통과 갈등 해소책으로 남기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자화상을 통해 본 화가의 심리세계 이병욱. 학지사, 320쪽, 2019)

서용선은 2024년 1월,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 전관(1,2,3 전시실)에서 자화상만으로 개인전을 갖는다.   

골격만 그리다

서용선은 19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대상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우연히 단종의 시신이 던져졌던 평창강 지류인 청령포 서강에서의 특별한 체험 후 골격(骨格)만 그려내려 한다. 그림을 살은 다 빼버리고 뼈다귀만 가지고 그린다.

지난해 인터뷰에서 필자는 이렇게 물었다. “인물을 성기게 그린다. 그 성긴 여백으로 인물과 시대, 환경 등이 보인다. 인물을 둘러싼 관계 설정 때문인가?” 

“공간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진행형이다. 연속되어 변한다. 사람은 고정되어 정지되는 일이 없다. 사람은 공간과 상호 작용을 한다. 상황과 사람과의 관계를 파악하는 게 어렵다.”

세 사람 192.7×128.7cm Acrylic on Canvas  2012.2020 / 제공 = Suh Yongsun Archive

“사람에 배경을 투영시켜야 마음이 놓인다. 관계 속에서 사람들을 본다. 그들이 취하는 자세는 내 경험이 들어간다. 구분과 관계가 중요하다. 인물화에서 완결이라는 게 의미가 없다. 표현을 덜 하더라도 그게 더 본질에 가깝다”

작가는 30년 이상 서울 돈암동에서 관악구의 서울대를 통근하며 새롭게 올라가는 건축물들과 확장되는 도로및 가로를 관찰할 수 있었다. 또한 독일 베를린, 미국 뉴욕 지하철 안의 수직 공간적인 풍경들을 지켜보았다. 도시 건축적 환경이 서용선의 그림을 만들었다.

작품에서 인간은 경직되어 보인다. 관객은 실제 등장 인물보다도 캔버스 화면을 경직되게 본다. 움직일 수 없는 조건인 캔버스 평면에 대상들을 가져와 더 평면화시켜 화면에서 탈출한다.

그의 그림이 점점 커지고 있다. 문화저변이 넓어진 사회환경 측면을 원인으로 꼽는다. 대형 공간을 가진 전시 주체들의 제안에 따른 작업이 많다. 한국미술의 역동성이 작가에게도 영향을 준다고 본다.

7월에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 선재센터의 <내 이름은 빨강> 전시는 조형성에 주목한다. 8월에는 전남 무안 오승우 미술관에서 역사와 풍경을 중심한 전시를 가진다.

암태도 소작쟁의 프로젝트  

전남 신안군으로부터 100년전 암태도 소작쟁의를 주제로 벽화 주문을 받았다. 서용선은 연륙교가 생겨 쓸모없게 된 쌀 창고 건물 자체를 기념화 시키는게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미지만으로는 역사적 사실이 왜곡될 수 있어 텍스트를 많이 넣었다. 표현 방식에서도 판재 등을 이용한 꼴라주를 선택했다.       

송기숙(1935~2021)의 소설 <암태도>에서 주인공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에 가담한 것으로 묘사된다. 7년간 암태도 면장을 지낸 서태석(1885∼1943)은 압해도 밭두렁에서 벼를 움켜쥐고 숨진 장면으로 강렬하게 묘사됐다. 작품은 항쟁 100주년을 맞는 8월쯤 공개될 예정이다.

암태도 창고에서 작업중인 서용선 작가 / 제공= Suh Yongsun Archive 

1세기 전 일어났던 암태도 소작쟁의 투쟁이 서용선이 개입하여 의미 부여가 되었다. 신안군과는 별도로 11월에 서울 마포비축기지에서 암태도를 주제로 전시를 갖는다.

콰트로첸토(Quattrocento, 15세기 이탈리아 문예부흥기)는 고대 로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1511~1574)는 고대를 예술의 완전한 실현으로, 중세를 예술의 죽음으로, 그리고 르네상스를 예술의 새로운 부활로 읽는다.(노성두/서양미술사학자)

카라바조와 미켈란젤로에겐 성서 속 인물 다윗과 바르톨로메오가 모델이었으나, 현실에서 벗어나는 순간 시작되는 역사를 대상으로 승부하는 화가 서용선에게는 늘 함께하는 자신이 모델이다. 

이 땅에는 바사리와 같은 선배 미술사가가 없었기에 단종과 암태도를 찾아 역사를 기록한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5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