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표 이준석의 시간, 고도의 정치력 시험대

‘이준석 현상’은 ‘묻지마 정권교체’ 열망이 원인 대선까지 험난한 앞길…이준석의 정치력 관심

2021-06-11     윤석규 정치전문 칼럼니스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사진=뉴스1)

이준석 돌풍을 넘어 태풍으로 격상한지 오래다. 이준석 현상에 대한 평가와 분석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젊은 바람은 눈이 휘둥그레지게 만든다.”(양상훈, 조선)와 “이준석은 불안하나 그가 가져올 변화가 기대된다”(이철호, 중앙)는 두 사람의 평가는 환호에 가깝다. 양대 보수 언론의 대표 논객의 입에서 나올법한 말이다.

주목할 점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인사들이 이준석 현상에 대해서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평가를 꼽아보면 “이준석은 세대교체 민심 여는 병따개”(강준만), “진보진영 내 주류들이 가진 한계를 보여주는 거울”(안병진), “이준석 대표의 등장은 정치권 전체에 세대교체와 변화의 바람을 불러올 일대 사건”(유창선) 등이다.

다만 이들이 진영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행태를 줄곧 비판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평가는 이준석을 응원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이준석 현상이 국민의힘의 변화를 넘어 민주당을 포함한 한국 정치 전체를 변화시키는 기폭제가 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준석 현상의 출발점과 원인을 볼 때 평자들이 이준석 현상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취임 후 처음 주재하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준석 현상의 출발은 두 지점이다.

하나는 지난 재보선에서 국민의힘이 소위 MZ세대라 불리는 2030세대의 지지를 많이 받은 것이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바로 1년 전 치른 총선에서는 2030세대가 민주당을 더 많이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도 2030세대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깨달음으로 연결된다.

다른 하나는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여론조사다. 이준석 후보가 처음으로 포함된 여론조사에서 이준석 후보는 13.1%의 지지를 얻어 15.9%를 얻은 나경원 후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한길리서치, 5/12) 이준석의 초기 지지는 주로 젊은 층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준석이 잘만 하면 당대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자, 다음 대선에서 2030세대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깨달음과 겹치면서 높은 연령의 보수 유권자들 마음이 움직였고, 돌풍이 태풍으로 진화했다.

이준석 현상의 바탕에는 ‘반드시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오직 한 가지 열망이 깔려있고, 이것이 이준석 현상의 핵심 원인이다. 일종의 ‘묻지마 정권교체’에 대한 여론의 큰 흐름이다. 많은 평자들이 마치 거대한 변화가 시작된 것처럼 여기지만 이것 말고는 다른 원인을 찾기 어렵다. 이준석 현상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나 보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이준석은 명백히 퇴행적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 대한민국이 합의를 통해 이룩한 성취마저 부정하고 있다. 공정한 경쟁의 이름으로 청년할당제, 여성할당제, 지역할당제와 같은 약자 배려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수의 정신>의 저자 러셀 커크는 보수주의자의 10대 원칙 가운데 하나로 ‘널리 오랫동안 합의된 지혜와 계속성을 중시’하는 것을 제시했다. 비록 근본적인 해결책을 아니지만 성별, 지역별, 세대별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우리사회가 집단적인 지혜를 발휘해 도입한 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보수주의자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모든 현상이 반드시 의도와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어떤 현상을 만들어낸 주체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거대한 변화로 발전한 사례가 꽤 있다. 다만 나중에라도 현상의 주체들이 변화의 크기와 성격을 자각할 때 가능하다.

이준석의 진짜 시간은 당대표가 된 후에 시작될 것이다. 이준석에 걸린 기대는 정권교체다. 본인이 직접 후보로 나서지 못하므로 그의 역할은 야권의 대선주자를 돕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국민의힘 지지율을 높여야 한다. 전당대회 직후에는 컨벤션 효과 덕을 보겠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그가 그동안 소신껏 밝힌 여러 주장들, 초기 이대남의 지지를 얻는데 도움이 되었을 ‘반페미’ 발언, 공정으로 포장된 능력주의 등이 국민의힘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품어야 하는 중도층과 이대녀 안에서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지 궁금하다.

또 하나는 야권 후보를 뽑는 일이다. 현재 야권의 후보로는 단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앞서고 있지만 그는 당 밖에 있다. 윤 전총장이 국민의힘에 합류해 당내 경선에 참여할지, 독자 세력을 구축해 활동하다 추후에 연합 또는 단일화를 시도할지, 다자구도로 계속 진행될지 아직 알 수 없다. 첫 번째 경우라면 비교적 수월하겠지만 다른 두 경우라면 매우 난해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지금처럼 이미지에 기대 당대표 자리를 차지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이준석이 발휘할 정치력을 관찰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윤석규는 서울대 인문대를 졸업하고 YMCA 경실련 등에 몸담아오다 DJ정부에서 청와대 시민사회국장을 지냈다. 2002년 노무현 캠프의 상황실장을 맡아 노무현 대선 전략의 밑그림을 그린 ‘정치전략통’이다. SNS 등에서 합리적 진보 논객으로 활동 중인 그는 날카로운 정치 분석으로 정평이 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