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택 미술딜라이트] ‘이미지의 힘’을 확장하는 서양화가 심윤

2021-08-15     심정택 칼럼니스트

이인성(1912 ~ 1950), 이쾌대(1913 ~ 1965) 등 근대 화가와 이강소(1943~ ) 및 구상 미술에 특화된 50~60대 현역 작가군을 배출한 도시, 대구. 토박이 작가 심윤의 작품 모티프는 자신이 접하는 이미지와 관념적 언어에서 온다. 그는 이미지가 가진 힘을 표현하기 위해 (유채)색을 걷어내며 작품의 크기로 확장한다. 한편으로는 시장에서 작품이 왜소해지는 것에 대한 반감 또는 차별화 차원에서 공간을 고려한 낯선 상황을 모색한다. 

요즘 나는 이런 말을 하고 다닌다. 대개 100년 미만에 소멸하는 존재인 인간이 가늠할 수 없지만, 1000년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이 세상에는 성경, 불경 등 ‘말씀’이라는 텍스트와 이미지 밖에 없지 않느냐고. 

필자는 이미지를 시각적 존재로 이해해 왔다. 이미지의 어원은 죽은 이의 얼굴 본을 뜬 밀랍 주조인 이마고(imago)이다. ‘진짜는 아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뮬라크르(simulacrum)는 순간적으로 생겨났다 사라지는 우주의 모든 사건 혹은 자기 동일성이 없는 복제를 뜻한다. 이미지와 일맥상통하는 뜻이기도 하다.  

심윤은 영상 매체를 통한 이미지에서 받는 충격,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매개로 새로운 사실에 대한 깨달음을 ‘이미지가 갖는 힘’으로 이해한다. 이를 회화적 작업으로 전환하며, 회화 고유의 이미지에서 오는 모티프를 또 다른 영상 작업으로 전환한다. 

PIETA 450.0x259.0cm oil on canvas 2021

‘피에타’(Pieta)란 이탈리아어로 연민 혹은 자비, 동정심을 뜻한다. 미켈란젤로가 로마에 머물던 시절인 25세 때 프랑스인 추기경의 주문으로 제작한 ‘피에타 상(像)’이 대표적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많은 화가, 조각가들이 오마주(hommage)하기도 한다. 물론 ‘피에타 상’에 대한 이미지는 작가마다 다르다. 

심윤에게 인간의 아들이자 신적인 존재인 예수를 안고 있는 어머니, 성모는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의 고통은 배제되어 있다. ‘피에타 상’의 이미지만을 가져왔다. 성모 대신 예수의 시신을 끌어안고 있는 이는 정장 차림의 현대인 남자가 있다. 

최근 끝난 대구 봉산문화회관 전시에 출품된 세 작품은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림>, 조각 라오콘군상, 고든 타플리의 디지털 페인팅 작품을 오마주했다.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림>은 불길한 검은 하늘과 대조되어 예수의 죽은 육신을 강하게 비추는 빛과 곡선적인 리듬감, 강렬한 반향을 유발하는 비극적인 테마는 바로크 미술 양식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1 office worker 300×259 oil on canvas 2021

3천 년 전 라오콘은 그리스 군인들이 퇴각하며 남겨놓고 간 목마를 성 안에 들여오는 걸 반대한 트로이의 아폴로 신전 신관이었다. 그리스를 지원하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커다란 뱀을 보내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질식시켜 죽인다. 라오콘군상의 원형은 기원전 150~50년으로 추정되는 청동상이며 현재 작품은 이를 모방해 기원 후 1세기에 제작된 대리석 조각이다. 트로이 전쟁이 일어난 천 년 뒤의 작품이다. 대리석이, 서늘한 뱀의 촉감으로 살아나 꿈틀거린다. 아찔한 독과 숨 막히는 고통을 관객이 화자가 되어 생생하게 체험하도록 표현하였다. 

심윤은 ‘리틀 보이’라는 네이밍이 주는 모티프를 쫓아가 보았다. 1954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이 ‘리틀 보이’이다. 길이 약 3m. 지름 71cm. 무게 약 4t. B-29 폭격기가 탑재하여 약 9,000m의 고공에서 투하하였고, 고도 약 550m에서 폭발하였다. 히로시마 시의 중심부 약 12k㎡가 폭풍과 화재로 괴멸되었고, 사망자 7만 8000명, 부상자 8만 4000명, 행방불명자가 수천에 이르렀으며, 파괴된 가옥수는 6만 호로 알려졌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인은 ‘리틀 보이’ 투하 이후 자신들이 전쟁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2018년 대구예술발전소에서의 개인전 ‘리틀 보이’ 전시에 이어 2019년 중국 베이징 산하이(山海)미술관, NaCL(‘염화나트륨’뜻)전에도 출품했다. 

DANCE DANCE 450*259 oil on canvas 2018

심윤은 ‘라이언일병구하기’, ‘밴드오브브라더스’, ‘퍼시픽’, ‘헥소고지’ 등 전쟁을 주제로 한 미국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에서 이미지를 수집하고 재가공 하였다. 수십편의 2차 세계 대전 관련 다큐멘터리들 또한 자료로 접근하였다. 
백남준(1932~2006) 또한 전쟁을 주제로 작품을 남겼다. '과달카날 레퀴엠(Guadalcanal Requiem. 1977년)'은 전쟁에 대한 기억이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상처임을 환기시킨다. 백남준은 과달카날 섬에서 그의 전략적 파트너이자 예술적 동지인 샬롯 무어먼(1933~1991)과 함께 평화를 위한 곡을 연주하고 퍼포먼스를 했다. 

<과달카날 레퀴엠>에서 샬롯 무어만이 군복을 입고 총 대신 첼로를 등에 메고 해변에서 포복하며 요셉 보이스의 펠트 천으로 싼 첼로로 백남준의 <평화 소나타>를 연주하기도 한다. 빌 비올라(Bill Viola. 1951~ )는 이 때 촬영보조로 일했다.

심윤은 “이미지 자체가 갖고 있는 힘을 강하게 전달하기 위해 색도 걷어냈다. 자칫 색이 이미지를 방해할 수 있어서다”고 전한다. 직업적 시각예술가인 심윤의 ‘이미지’라는 관념에 대한 이해이다. 한편으로는 화가들이 일반적으로 갖는 여건과는 뭔가 다르다는걸 짐작할 수도 있다. ‘색을 쓰면 산만하여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무채색만으로도 그림 속 양감을 표현하기 위해 흰색과 검정색 사이 명도를 다섯 단계로 구분한다.

38. compulsive idea 145.5*112.1 oil on canvas

작가는 인체를 통해서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린다. 회화적으로는 토르소(torso)를 오브제로 하여 스피커나 모니터에 올라타거나 앉아있는 모습으로 표현한다. 꽃은 자신의 모습을 감춘 형상과 어두운 배경이 서로 대비를 이루게 한다. 사람이 안고 있는 붉은 장미 다발을 표현하기 위해, 묽은 레드가 없어 무거운 레드를 겹쳐서 쓸 수 밖에 없었다. 피부 색 또한 불투명하게 쌓아올리고 싶어했다. 심윤은 인체중에서도 손, 발을 표현하는 게 재미있다. 

영상 작품 댄스댄스댄스(dance dance dance. 2018), 아이 소 유 댄싱(I saw you dancing. 2019)은 영화에 비쳐진 전쟁터에서 인간의 생존을 위한 다양한 행위 가운데서도 손의 동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 영상작품 동영상은 아래) 노래 ‘부기 우기 댄싱 슈즈’(Boogie Woogie Dancing Shoes) 의 강한 비트와 묘하게 어우려진다. 전쟁의 참혹함이나 비장함, 국가주의는 찾아볼 수 없다. 심윤은 육군 포병으로 근무한 제대자이다.   

그는 손과 연상되는 물건 및 행위에 대한 강박을 떨쳐낼 수가 없다. 외출하고 귀가하는 과정에서 문고리를 잘 잠궜나하는 생각 등. 강박증(compulsive idea)은 사람이나 물건(사물)에 대한 집착, 어떤 현상이나 몇 마디의 특징적인 단어에도 집착하는 듯한 현상이다. 작가는 이러한 강박증을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인들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 심리적 상황으로 간주한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3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