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양심의 목소리'가 지다… 오에 겐자부로 별세

2023-03-15     고경일 풍자만화가
고경일

일본의 대표 문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建三郞)가 지난 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88세인 그는 뛰어난 소설가이면서도 일본의 우경화와 역사 왜곡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양심적 지식인이었다. 

1935년 에히메현에서 태어난 그는 도쿄대 불문과에 진학했고, 1958년 소설 '사육'으로 23살 최연소 나이에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설국'으로 19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작품 ‘개인적 체험’으로 1994년 일본인으로서는 두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그해 일왕 아키히토는 문화훈장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을 치하하려했으나 그는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권위와 가치관을 인정할 수 없다”고 수상을 거부했다.  

그는 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실천하는 지식인’이기도 했다. 히로시마에서 피폭자와 의사를 직접 취재해 쓴 르포 ‘히로시마 노트’를 통해 원폭 피해를 고발하고 반전과 반핵을 주장했다.

그는 또 1970년대 김지하 시인이 투옥됐을 땐 단식투쟁으로 항의했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땐 군부 쿠데타 반대 성명도 발표했다. 1993년 소설가 황석영 등의 구명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2004년엔 전쟁과 무력행사를 영구 포기하는 내용이 담긴 일본 평화헌법 9조 개정에 반대하는 ‘9조의 모임’에도 참여했고, 2006년에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하기도 했다.

2015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은 아무리 사죄해도 충분하지 않을 엄청난 범죄를 한국에 저지른 만큼 계속 사죄해야 한다”고 사과를 촉구했다. 오에는 신사참배 반대와 일왕이 주는 훈장 거부 등을 이유로 죽기 전까지 일본 우익들의 협박과 위협에 시달리며 살았다.

그는 진정한 과거의 반성을 외치고 아시아의 민중들과 연대를 꿈꾸던 ‘살아 있는 양심’이었다.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입을 닫은 요즘 그의 죽음이 더 안타깝다. 

고경일은 풍자만화가이자 2001년부터 상명대 디지털만화영상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사단법인 우리만화연대 회장,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 서울민예총회원, 호아빈의 리본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오마이뉴스 한겨레신문 등에도 풍자만화를 연재했다. 벤쿠버아일랜드대학 객원교수, 모교인 교토세이카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전쟁 피해 여성들을 위한 ‘보따리’전과 언론개혁과 표현의 자유를 위한’ 굿바이展’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