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기업 대신 韓 재단 '배상'…피해자 "동냥같은 돈 안받아"

尹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위한 결단" '강제징용' 배상·사과 없어…韓 기업이 '3자 변제' 피해자 측 "배상금 아닌 기부금은 굴욕적 선택 강요" 양금덕 할머니 "동냥처럼 주는 돈 받지 않겠다"

2023-03-06     김태현 기자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6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안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

윤석열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을 국내 기업 등 민간의 자발적 기여로 마련한 돈으로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병존적 채무인수)' 을 6일 공식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발표한 방안에는 일본 피고 기업들의 배상 참여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의 직접 사과도 빠져 피해 당사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날 일제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인 양금덕 할머니는 광주 서구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정부의 발표를 온라인 생중계로 지켜본 뒤 "동냥처럼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양 할머니는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고 사죄할 사람도 따로 있는데, (제3자 변제 방식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는 사죄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양 할머니는 "노인들이라고 해서 너무 얕보지 말라. 반드시 사죄를 먼저 한 다음에 다른 모든 일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 민족문제연구소도 이날 용산구에 위치한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는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자신들의 외교적 성과에 급급해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이 아닌 기부금을 받으라고 굴욕적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며 "피해자들에게 또다시 희생을 강요하며 피해자들의 인권과 존엄을 짓밟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정부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을 통해 2018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는데, 이 발표문에는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사과나 피고 기업들의 배상안은 담기지 않았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에 대해 "일본 정부도 민간의 자발적인 기여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인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이날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 입장 발표문'을 통해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 측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한·일 양국의 공동이익에 부합하는 합리적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양국 외교 당국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우리 입장을 충실히 전달하면서, 일본의 성의있는 호응을 촉구해 왔다"고 했다.

이어 박 장관은 재원은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마련하고, 향후 재단의 목적사업과 관련한 가용 재원을 더욱 확충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재원 마련은 포스코를 비롯해 16개 가량의 국내 청구권자금 수혜 기업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우선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 장관은 일본 피고 기업의 참여가 없는 '반쪽' 해법이라는 비판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물컵에 비유하면 물컵에 물이 절반 이상은 찼다고 생각을 한다. 앞으로 이어질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서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일본으로부터 새로운 사죄를 받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며 "일본이 기존에 공식적으로 표명한 반성과 사죄의 담화를 일관되고, 또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같은 외교부 발표 이후 윤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오늘 '강제징용 판결 문제 해법'을 발표한 것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말했다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