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에 이태원 참사 분향소…100일 시민추모대회
유가족과 시민들 녹사평역서 세종대로까지 추모행진 서울광장에 시민분향소 기습설치…유가족·경찰 충돌 대통령실 인근 지날 때 "대통령은 공식 사과하라" 구호 이상민 행안부 장관 파면, 독립적 진상조사기구 요구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시민분향소를 기습설치한뒤 영정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추모대회에서 광화문으로 행진을 하던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이날 서울시청 앞 광장에 분향소를 기습 설치했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 측과 저지하려는 경찰이 대치하고 격렬한 몸싸움이 일어나 20대 유가족 한명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유가족 150여명과 시민대책회의 및 시민 1,000여명은 이날 오전 11시쯤 서울 녹사평역 합동분향소를 출발해 시민추모대회 장소인 세종대로로 행진했다.
행진은 사진 대신 ‘진실’'이란 단어를 넣은 영정을 앞에 건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이어 희생자들의 영정을 든 유가족과 시민들이 뒤따랐다.
용산 대통령실 앞을 지날 때는 ‘대통령은 공식 사과하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들어보였고, 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구호를 연달아 외쳤다. 고(故) 이지한씨 어머니, 조미은씨는 “우리 아이들이 못돌아왔는지 대통령은 충분히 유가족에게 설명하라”고 울부짖었다.
이날 유가족과 시민은 가족을 잃은 슬픔을 상징하는 빨간색 목도리와 네 개의 별이 달린 배지를 착용하고 행진했다. 네 개의 별은 희생자·유가족·생존자·구조자를 각각 의미한다.
유가족들은 세종대로로 행진하던 도중 서울광장에 이르자 예고없이 분향소 설치를 시작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경찰이 분향소 설치를 저지하려다 뒤로 밀렸고, 이후 서울시 공무원 70여명도 철거를 위해 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는 “참사 100일이 되어 평화로운 추모를 진행하는데, 경찰이 무슨 권한으로 막느냐”며 “서울시는 분향소 설치를 방해 말라”고 반발했다.
앞서 광화문 광장에 추모 공간 설치를 승인해달라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 측의 요청을 서울시가 불허하자, 유가족측은 시민추모대회 장소를 광화문광장 인근 세종대로 북단으로 옮겼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북측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할 수 있게 해달라는 유가족 요청도 거부했다. 서울시는 전날엔 경찰에 “불법 천막 등 설치를 저지해달라”는 시설 보호 요청을 했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이날 당초 예정보다 늦어진 오후 2시 40분쯤부터 서울시청 옆 인도와 차도에서 추모대회를 진행했다. 주최측은 시민 2만여명 가량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했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측은 집회 신고를 한 장소라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행진 신고만 접수됐다는 이유를 들어 “신고된 범위를 벗어난 집회”라고 해산을 요구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참사 당일) 그 많은 경찰들은 어디에 있다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국민들을 추모하는 행사에 이렇게 많은 경찰들이 나타났느냐"며 "분향소에 가서 진심 어린 마음으로 추모해달라”고 말했다.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는 추모대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이태원 참사 독립적 조사 기구 설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파면 등을 촉구했다.
이날 추모대회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민주당·정의당 소속 의원 수십명도 참석했다.
이 대표는 “평범한 유족을 투사로 만드는 이 정권의 비정한 행태에 분노한다”면서 “진정한 추모는 기억”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어 “참사 이전에도,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국가의 책임은 실종됐다”며 “심지어 희생자들을 기릴 자그마한 공간을 내달라는 유족의 염원조차 서울시는 매몰차게 거절했다”고 비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곳을 가득 메운 경찰 기동대들을 보라. 이들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 있었어야 했다”며 “조금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이곳에 꽃 한 송이 들고 와서 유족들에게 사죄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