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의 웃픈 무성영화 '키드'와 신파

[김주희 영화와의 대화]

2021-08-04     김주희 영화 칼럼니스트

찰리 채플린의 <키드>를 보게 된 계기는 지도교수님이 SNS에 공유한 기사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100년 전에 개봉했던 이 영화가 4K로 복원되어 그곳 영화관에서 상영된다는 내용이었다. 검색 해보니 이곳에서도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의 <키드>가 1921년 개봉날짜(1월 21일)에 맞춰서 올해 전국에서 재개봉했다. 재개봉 여파인지는 몰라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총 관객수는 2,460명에 불과했다.

20세기 천재 예술가 찰리 채플린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키드>가 받아든 성적은 초라했다. 어쩌면 한국적 ‘신파’가 부족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사진출처: ㈜엣나인필름

영화 <키드>는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로, 자신이 각본을 쓰고, 주연, 감독, 제작을 맡았다. <키드>는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면서 찰리 채플린이 감독으로서도 입지를 굳히게 해준 작품이다. 영화 내용은 쓰레기통 옆에서 발견한 갓난아이를 떠돌이 찰리(찰리 채플린)가 사랑과 애정으로 보살피지만, 나중에 친엄마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한국적 ‘신파’의 요소
‘신파’라는 용어에 합의된 정의는 없지만,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특히, 영화에서 사용되는 신파는 뻔한 스토리와 결말, 작위적인 상황, 감정의 과잉(눈물샘 자극)을 뜻하는 것 같다. 재미있는 사실은 신파가 갖는 부정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신파의 생명력은 길어, 여전히 TV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에서 살아남아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내용만 본다면 <키드>는 우리에게 익숙한 신파적인 소재와 특징을 갖고 있다. (물론 <키드>가 신파라는 것은 아니다). 애인에게 버림받은 여인, 버려진 아이, 가난한 떠돌이, 성공한 엄마와 자식의 상봉. 줄거리만 들어도 벌써 가슴이 아프고 슬프고 눈물이 날 것 같다. 한국에서 제작되었다면 감정의 축적과 고조를 통해 결정적 순간에서 눈물을 쏙 빼는 영화가 탄생했을 것이다.

그러나 <키드>는 보는 내내 슬픔보다는 웃음을 많이 주었다. 이것은 찰리 채플린이 당대 최고 희극배우이고 영화가 비록 감성적인 드라마 요소가 있긴 해도 코메디물 이기 때문이다. 우선 중절모자, 꽉 끼는 상의, 헐렁한 바지에 큰 구두를 신은, 짧은 콧수염의 찰리 채플린의 대표적인 캐릭터가 웃음을 준다. 거기에 과장된 몸동작 중심의 코메디는 애달프고 마음 아픈 많은 장면에서 웃게 해준다.

내게 가장 슬펐던 장면은 다섯 살이 된 소년과 찰리를 억지로 떼어 놓으려고 할 때였다. 소년은 정말 목놓아 아버지를 불렀지만, 무력한 찰리는 거의 표정이 없었다. 한국 영화에선 바로 이 장면이 신파적 순간이다. 즉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해 울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미 한국적 ‘신파’에 익숙한 한국 관객들은 이 순간에 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울지 않았다. 아마 찰리 채플린도 이 장면에서 솟구치는 울음보다는 절제된 슬픈 감정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역시 감정은 축적되면서 어느 순간에 폭발하는 경향이 있는데, 새로운 곳에 시선을 많이 뺏기다 보니 주인공들의 가혹한 현실에 동조되지 않았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아기용 해먹을 만들어 아기를 그곳에 눕히고, 찻 주전자 입구에 고무 젖꼭지를 달아 아기에 물려주는 장면에선 서글퍼하기보단 오히려 그들의 창의성에 감탄했다. 비록 그들의 현실은 너무 가혹했지만, 서로가 보살피면서 사는 삶은 행복해 보였다.

사진출처: ㈜엣나인필름

더군다나 영화의 끝부분에 찰리가 꿈을 꾸는 장면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부분이 왜 여기에 삽입되었는지?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이 지점에서 슬픔의 몰입도는 더 깨지는 것 같다. 단지, 꿈속 마지막 장면에서 소년이 찰리 품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은 둘의 만남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어쨌든 이러한 점들로 인해 ‘한국적 신파에 익숙해 있는 관객이 <키드>에 깊게 몰입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영화 흥행의 성공과 실패는 당연히 하나의 요인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희망' 전하는 코메디 장르의 무성영화  

한편, 근대화에 적응하지 못한, 소외되고 빈곤한 사람들의 고달픈 현실을 이처럼 웃음을 주면서도 담담하게, 건강하게 풀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키드>가 시간대를 넘어서 세기의 명작이 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또한, <키드>는 영화산업에 내려오는 오래된 편견을 깨고 있다. 코메디 장르는 각 나라의 문화와 연계되어 있어서 다른 나라에선 쉽게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그러나 <키드>는 달랐다. 무성영화에 코미디였지만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영화가 과장된 신체 동작을 이용한 코메디였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보편성을 띠고 있었고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였기 때문이다.

<키드>는 웃음으로써 현실의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나아가는 희망을 전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웃음이 필요한 지금이, 영화 <키드>를 시작으로 찰리 채플린의 명작을 감상해봄직한 적기 같다.

김주희 뉴질랜드 와이카토(Waikato)대학에서 ‘영상과 미디어’를 전공한 예술학 박사이다. 뉴질랜드는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2000~2003) 시리즈와 <킹콩>(2005)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영화 제작 강국이다.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다. 여전히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한 채 유튜브 <영화와의 대화>를 운영하는 유튜버로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