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들리에, 권력의 변천을 훑어내다’ 화가 정진용

[심정택 미술 딜라이트] 경기 용인 수지구 갤러리위 21일까지 

2021-08-01     심정택 칼럼니스트

인터뷰 며칠 뒤 작가에게 연락을 했다. 그가 설명한 중국화에 대한 보충 설명을 듣기위해서였다. 한국화가 중국화에 복속되지 않은 게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이다. 중국의 문화적 스펙트럼과 깊이는 엄청나지만 회화는 우리의 고려 불화, 겸재의 두 작품, 김홍도로 이어져 결코 중국에 뒤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중국 회회사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은 북송시대 범관(范寬, 990년 ~1027년 추정)의 계산행려도(谿山行旅圖, 103.3*206.3)이다. 중국산수화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화면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산, 꼭대기에만 수목이 덮인 바위산은 아랫부분이 안개 속에 잠겨 전경과 후경이 분리된다. 산과 산이 맞닿는 부분은 하얀 폭포수가 깊게 떨어진다. 전경의 바위 사이 계곡 오른편에서 등에 짐을 실은 네 마리 나귀를 앞뒤에서 재촉하는 개미처럼 작게 표현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래에서 위를 훑어보는 고원(高遠) 시점으로 그렸다. 미불(米芾, 1051~1107)은 『화사(畵史)』에서 ‘높고 험준한 모습이 항산(恒山)과 대산(岱山) 같으며, 멀리 있는 산은 정면을 향한 것이 많고 꺾이고 떨어짐이 기세가 있다’고 극찬했다.

Chandelier. RosePurple 180*140 china ink. gouche. acrylic. crystal beads on canvas 2021

북송시대 장택단(張擇端)이 그린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1120년경)'는 6m 두루마리에 당시 수도 카이펑(開封)의 번영했던 상업 활동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800여 인물, 73마리 축생, 스무 개가 넘는 수레와 가마, 20여 척 배가 저마다 움직인다. 

원말 시대 황공망(黃公望, 1269년~1354년)의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 636.9*33)속 웅장하고 광활한 자연은 담묵(淡墨)과 농묵(濃墨)의 조화 속에 활기가 넘친다. 수목의 줄기와 잎은 구륵(鉤勒·윤곽선 그린 후 색칠)과 몰골(沒骨·윤곽선 없는) 기법을 번갈아 사용해 필선의 변화를 주었다. 산의 질감을 드러내기 위해 무수히 되풀이한 피마준(披麻皴·갈필로 약한 물결 짓는 필선)은 신선하다. 그의 산수화는 후대 문인 화가들의 모범이 되었다. 중국의 10~14세기에 해당하는 우리 동시대 고려(918~1392)에는 불화(佛畵)가 있다.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 중국 천년 회화사 차원 뛰어넘어

겸재 정선(1676~1759)의 금강전도(金剛全圖, 국보 제 217호, 94.1*130.7. 1734년)는 중국 전통의 동양화를 뒤엎어버린 작품이다. 금강전도는 금강내산(金剛內山)을 부감(俯瞰)형식의 원형 구도로 그린 진경산수(眞景山水)이다. 화면의 오른쪽 위 화제(畵題)는 ‘설령 내가 발로 직접 밟아 보자 한들 이제 다시 두루 걸어야 할 터 그 어찌 베개 맡에 기대어 실컷 봄만 같으리오‘(縱令脚踏須今遍, 爭似枕邊看不慳)라면서 그림이 실제보다 낫다는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을 펼쳐 보인다. 화가는 드론의 카메라 같은 시점으로 대상을 본다. 

중국은 당나라 이전의 화론(畵論)이 따로 존재할 정도로 깊이와 스펙트럼이 넓다. 하지만 동양화 학도 정진용이 천년을 관통하는 중국 회화사 대표 작품들과, 겸재의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를 비교한 것을 보면 겸재 작품을 이해하는 차원이 달라진다.  

정선에 비견되는 이가 중국 명대 후기 동기창(董其昌), 근대에서는 리커란(李可染·Li Keran·1907~1989)이다. 리커란은 중국화의 특징을 '이대관소(以大觀小)', "큰 것으로 작은 것을 보고, 작은 것 가운데 큰 것을 본다"로 여겼다. 정선의 화법이 중국회화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이전까지 서구 기준으로 전통 중국화는 흑백의 수채화일 뿐이었다. 

'금강전도'는 이러한 차원을 넘는 엑기스만을 뽑았다. 수평과 수직으로만 그려진 준법과 필획 등은 여전히 현대적이다. 인왕산의 웅장한 자태를 최고의 필치로 묘사한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국보 제216호, 79.2*138.2, 1751년)는 정선의 나이 76세 때의 작품이다.  

금강전도 한때 소장자가 운영했던 목포극장 샹들리에도 작품 중 하나

회화, 영상 등 전방위 창작 활동을 펼치는 정진용은 주로 흑백의 강렬한 대비나 골드와 레드 등 원색을 사용했으나, 경기도 용인 갤러리위 ‘오래된 그리고 빛나는 모양들’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배경이나 대상에서 모노톤의 원색을 많이 사용한다. 

Chandelier. RoseRed 180*140 china ink. gouche. acrylic. crystal beads on canvas 2021

그는 줄곧 삼성가 소유의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의 향방에 관심을 가졌다. ‘이건희 컬렉션’에 인왕제색도가 포함된 것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사실 역사로만 등장하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은 누구의 소유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소장 이력을 따라가면, 두 작품은 서예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손재형(1902~1981)이 김정희의 세한도(국보 제180호)와 함께 갖고 있던 것이었으나, 선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저당 잡히기도 했다. 손재형은 전남 목포의 극장과 서울 집, 배와 염전으로 부채 청산후 그림을 찾으러 갔으나 새 주인에게 넘어간 뒤였다. ‘목포극장’은 1926년에 2층 목조로 지어졌다. 당시 서울 단성사와 광주의 광주극장에 이은 조선인이 운영하던 극장으로 손재형이 인수했다.

정진용이 이 과정에서 주목한 것은 목포극장의 흑백 옛 사진 한 장이었다. 극장 로비는 샹들리에(chandelier)로 인해 공간이 살아있었다. 풍경 화가가 풍경을 사진에 담아 작업실로 가져오 듯, 1930년대 시간의 허공에 매달려있던 그 샹들리에는 프랑스 국화인 아이리스의 생동감 있는 줄기와 잎을 모티프로, 황동브론즈로 캐스팅되었다. 주물의 틀자욱이나 거친 면 하나 없이 매끄럽게 반짝이는 조각 작품 같았다.

감정이 흔들렸다. 건축이라는 공간 속의 한 사물이지만 다른 위대한 사물을 지켜내지 못한 허무를 보았다. 작가의 감정을 건드린 대상은 작품이 된다.    

정진용에게 빛과 구조, 색 세 가지를 충족시키는 사물, 샹들리에는 한국의 근·현대, 동시대를 관통하며 조선의 르네상스, 영조와 겸재 정선, 장대한 중국의 회화사를 소환해주었다. 

샹들리에, ‘hangover’시리즈로 재탄생 

서양 문화에서 화려한 상류 사회 사교의 정점으로,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파티장의 상징이 샹들리에다. 정진용은 색채와 점묘로 재현한 ‘hangover’시리즈를 통해 역사적 현실에서의 생생한 모티프로 샹들리에를 새롭게 해석했다. 조선시대 영조대왕의 지원을 받은 문예권력이 된 정선의 걸작마저 지켜내지 못할 정도로 시간의 흐름은 현대 자본주의의 격랑 속 파편이 되었다.  

Chandelier. Blaze 115*90 china ink. gouche. acrylic. crystal beads on canvas 2021

‘hangover’시리즈 직전까지 정진용 작품의 구도와 색은 장중하며 묵직한 레드 와인 같거나 선은 호방하고 대륙적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림 자체보다도 시간의 흐름에 상처입지 않는 위엄을 지닌 엄숙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느낌을 추구하였다. 직전에는 샹들리에를 샹들리에처럼 그렸으나 과슈를 사용한 번지기, 꼭꼭 찍어 누르는 점묘 등 기법을 적용하면서 좀 더 회화적이 되었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부터의 초대 전시 요청의 성과이다. 고민 끝에 기존의 전시 행태를 배제하고 ‘hangover’시리즈로만 펼치기로 했다. 한 아이템만으로 20여점의 작품을 내놓는 그의 역량이 놀랍기만 하다.  

로컬리즘으로 글로벌리즘을 이긴다  

정진용은 미술의 글로벌리즘에 대항하는 해법으로 로컬리즘을 제시한다. 진경산수를 찾기위해 지방관으로만 떠돌던 정선의 ‘노매드(nomad) 로컬리즘’이 나오면서 한반도의 미술 문화는 비로소 중국에 대항할 수 있었다. 물론 정선이 화업(畵業)을 이룰 수 있도록 산수가 빼어난 지역으로 나갈 수 있게 배려한 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려 이래 약 400여년이 걸렸다.

Chandelier. azure 115*90 china ink. gouche. acrylic. crystal beads on canvas 2021

서울의 화랑가에는 작가가 너무 많다는 푸념이 나온다. 시장은 작은데 작가들은 전시 기회를 갖지 못한다. 화랑가에서 시장을 새롭게 창출할 작가는 보이지 않고 고만고만한 이들만 넘쳐나는 역설적인 현상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정진용이 말하는 로컬리즘은, 지역의 폐쇄성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생활에 구속되지 않는 작가 정신의 배태를 말한다.

역사화와 풍속화는 당대를 충실하게 기록한, 시대 현상과 정신을 담은 그림을 말한다. 현상만을 쫓는 작품이 있고, 메시지가 강한 작품이 있다. ‘hangover’시리즈는 메시지를 드러내지 않는 작가 스스로 웅크려야만 하는 인생의 한 시기 작품으로 평가 될듯하다. 한때 화려했으나 이제는 변방이 된 도시, 극장 로비 천정에 매달렸던 샹들리에는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화려한 공연을 기다리듯 전시장에서 새로운 운명을 기다린다. 경기도 용인 수지구 갤러리위 전시는 8월 21일까지이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3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