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절규의 흔적'과 남은 자의 슬픔이 채운 공간

몰려드는 인파에서 버티려고 짚은 손바닥 자욱 선명 "왜 먼저 갔어. 네 잘못은 하나도 없는데 너무 생각나" "나중에 가족 다 만나 아빠가 해주는 맛있는 밥 먹자" "더 많이 표현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오래 기억할게"

2022-11-16     김태현 기자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 10.29 참사 희생자들의 추모공간. (사진=김태현 기자)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은 여전히 10월 29일 그날에 멈춰있는 듯 했다. 가족, 친구 그리고 이름 모를 사람들을 애도하기 위해 이태원을 찾은 사람들도 '이태원 10.29 참사' 당일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왔던 158명이 이 곳, 그저 지나가던 폭 4m가량의 골목에서 목숨을 잃었다. 국가는 예방하지 않았고, 마땅히 책임을 져야하는 고위 공직자들은 책임 회피와 책임 전가에만 급급했다.

'진정어린 슬픔과 미안함이 있다면 저리 발뺌할 수는 없을텐데...' 그런 그들이 부끄러워서인지 현장을 찾은 시민들이 남긴 애도 메모엔 그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너희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바꿔낼게"라는 말들이 가득했다.

희생자의 안식을 기원하면서 "남은 우리가 바꿔낼게요"라고 적은 추모 메모. (사진=김태현 기자) 

이태원 10.29 참사가 발생한 지 보름이 넘었다. 멈춰선 듯 흐른 지난 시간을 방증이라도 하듯 사고 현장에서 20m가량 떨어진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공간을 둘러 메운 국화꽃은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었다. 지난 11일 빼빼로데이 이후에 방문한 추모객들이 놓고간 빼빼로를 비롯해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한 수많은 사람들의 글들이 1번 출구 주변을 메웠다.

추모공간에 남긴 메모에는 가까운 사람들을 보내야 하는 상황을 못내 받아들일 수 없는 슬픔이 담겼다. 직전 현실에선 미처 풀어놓지 못했던 말들로 생사의 작별 인사를 대신하기도 했다.

희생자의 지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쓴 한 메모는 "너랑 마지막 기억이 싸웠던 거라서 사실 이곳에 오기 싫었어. 너 잘 살거라고 해놓고 왜 먼저 갔어. 네 잘못은 하나도 없는데 네 생각이 너무나…"라며 회한을 내비친 뒤 "사랑해"라고 맺었다. 

희생자 임지수씨의 친구들로 보이는 이들은 "우리 마음속에 항상 함께 하자. 사랑해"라고 남겼고, 희생자 이채현씨를 추모한 메모엔 "다음 생에 또 만나자"고 그리움을 표현한 내용이 담겼다. 

희생자 박현진씨를 추모하는 메모글. (사진=김태현 기자)

함께 한 기억을 떠올리며, 그 추억에 감사하고 그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희생자 박현진씨 메모엔 "현진 언니가 너무 좋아해줬는데, 나는 더 많이 표현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우리 함께 한 추억이 너무 많아서 덕분에 오래 오래 기억할 수 있겠다. 추억 많이 만들어줘서 고마워. 평생 기억할게"라고 추모의 글이 써 있었다. 

추모 공간 메모들사이 '스파이더맨' 복장은 당일 희생자가 입었던 핼러윈 복장으로 추정됐다. 또 시들어가는 국화꽃 사이엔 합동분향소에 놓이지 못했던 희생자들의 사진들도 자리를 잡았다.

이태원역 1번출구 주변 추모공간에 놓인 희생자들 사진과 국화꽃. (사진=김태현 기자)

참사가 발생한 골목 현장 한쪽 벽면엔 참상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벽면을 짚고 인파에 휩쓸리지 않고 버텨내려고 했던 누군가의 손자국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그 곳엔 누군가가 '참사 당일 절규의 손자욱'이라는 표시와 함께 흰색 테이프를 둘러놓고 국화꽃을 꽂아 뒀다. 

158명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 현장 한쪽 벽면에 고스란히 찍혀있는 희생자의 손자국. (사진=김태현 기자)

10.29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던 이 곳에도 희생된 딸에게, 아들에게, 친구에게 그리움을 전하는 추모 메모와 국화꽃이 길을 따라 놓였다.  

희생자 이주영씨의 가족은 이씨의 사진과 함께 "우리 가족 너보고 인사하러 왔어. 하늘에서는 아프지 않고 항상 웃으면서 행복하게 지내. 나중에 우리 가족 다 만나서 아빠가 해주는 맛있는 밥 먹자. 항상 잊지 않고 있을게. 사랑해 주영아"라고 참사로 희생된 딸을 그리워하는 글을 적었다.

희생자 이주영씨의 부모가 이태원 참사 현장에 남긴 애도글. (사진=김태현 기자)

 

함께 왔다가 참변을 당한 것으로 보이는 희생자 김지현씨와 김현수씨에게 지현씨의 엄마는 "현수야 우리 지현이 잘 부탁한다. 현수랑 싸우지 말고 재미있게 잘 살아. 우리 딸 항상 기억하고 있을게 사랑한다. 딸아"라고 딸을 가슴에 묻는 슬픔을 적었다. 지현씨의 아빠도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잘 살아라"고 딸의 안식을 기원했다. 

희생자 서용현씨의 친구는 "정말 많이 의지했던 용현아"라고 부른 뒤 "정말 4년 동안 친구가 되어줘서, 날 항상 웃게 해줘서 너무 고맙고 감사해. 우리 비록 멀리 떨어지지지만, 항상 너 생각하고 너 하늘에서 행복하라고 기도할게 사랑해"라며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영원한 이별의 슬픔을 표시했다.   

합동분향소에 놓이지 못했던 위패를 올려두고 희생된 영혼을 위로하는 작은 테이블이 골목길 한쪽 벽면에 놓여있기도 했다. 희생자 박진원씨의 위패 앞에는 향이 피워져 있고,  "진원이형, 못지켜줘서 미안해 보고 싶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희생자 박진원씨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참사 현장에 차려진 위패와 향불. (사진=김태현 기자)

희생자 노승원씨, 그리고 함께 온 것으로 추정되는 희생자 유연주씨와 진세은씨 등에게도 지인들이 전하는 애도와 이별의 글이 남겨져 있었다.  

참사가 일어난 골목길 추모 메모 역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내용과 함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구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묻어나는 내용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