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복수 명쾌하나 결말 개운치 않은 영화 '리멤버'

2022-10-29     김주희 영화칼럼니스트

 <리멤버>는 두 개의 서사구조를 갖고 있다. 하나는 일제 강점기 시대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에 대한 80대 알츠하이머 환자의 복수다. 또 다른 하나는 영화 말미에 주인공 한필주(이성민)의 실체가 드러나는 반전이다. 앞의 구조는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이에 대한 설명도 명쾌하다. 반면 한필주 또한 일제에 동조했고, 그로 인해 누이의 죽음에 영향을 주었음에도 이 부분에 대한 결말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다. 끝난 후 많은 생각과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원작 <리멤버: 기억의 살인자>는 아픔의 역사를 한국적 상황에 잘 대입했다고 생각한다. 이일형 감독의 메시지는 분명해 보였다. 일제 부역자에 대한 청산은 잘되지 않았고, 끝나지 않았기에 젊은 세대들도 이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출처: ACEMAKER

원작과의 차이 (나치 독일 치하 vs 일제 강점기)

<리멤버>가 원작이 있다는 점에 매우 끌렸다. 지금까지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는 많았기 때문이다. <리멤버>는 아톰 에고이안(Atom Egoyan) 감독의 <리멤버: 기억의 살인자>(2015)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치매가 걸린 노인 거트만(크리스토퍼 플러머)이 아우슈비츠에서 가족을 죽인 나치 전범 한 명을 찾아 원수를 갚는 내용이다. 이 영화 역시 마지막에 놀라운 반전이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이 다른 국적의 영화를 한국적 상황에 맞게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일형 감독도 주인공은 역시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인을 채택했다. 하지만 나치를 일제로 대치하였고 원작에는 없는 20대 인규(남주혁)를 창작해 넣었다. ‘영화 <리멤버>기자 간담회’에서 이일형 감독은 알츠하이머 노인의 복수 외에는 거의 다 바꾸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어린이가 한필주의 기억을 되살려 주거나, 마지막 반전 구조는 공통적이다. 

출처: ACEMAKER

개인에 투영된 일제 강점기 시대의 비극

이일형은 감독은 일제시대의 아픈 역사를 한필주 가족을 통해 응축해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좌익으로 몰려, 맞아 죽고 그로 인해 엄마가 미친다. 더군다나 형은 친한 친구에 속아 탄광에 끌려가 고된 노동을 하다가 그곳에서 죽는다. 누이는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집에 돌아와서 목매 자살한다. 이런 이유로 한필주는 관련자 4명 모두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할 계획을 세웠다. 

아내가 죽고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한 순간, 한필주는 오랫동안(60년) 품어왔던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여기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의 결정에 달려있다. 이 영화에는 몇 번의 반전이 있고, 반전을 위한 복선을 미리 잘 깔아두었다. 영화 초반에 보여주는 예의 없는 손님에 대한 반격은 초반부터 관객을 몰입시켰다. 한필주와 인규가 죽음의 순간에 인규의 기지로 빠져나가는 것도, 끝부분 한필주의 생존법도 반전이었다. 

즉, 한필주는 상처받은 누이를 따뜻하게 감싸는 대신 외면하고, 자신의 살길을 찾아 일본군에 입대한다. 누이는 이 사실에도 크게 충격받았을 것이다. 한필주는 누이에게 용서받고 싶어서 복수를 더 감행했는지도 모른다.

출처: ACEMAKER

80대 알츠하이머 환자의 지나친 활약

원작과 달리 알츠하이머 환자 한필주의 활약은 대단하다. 알츠하이머 협회(2008)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병에 따른 증상은 단순한 기억 감퇴와는 많이 다르다. 알츠하이머는 의사전달이나 교환, 지식의 습득, 또한 사고나 추론 등에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에 곤란을 가져온다”고 한다. 즉, 알츠하이머에 걸리면 뇌 손상을 통해 점점 기억, 사고, 추론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한필주는 기억상실을 우려하여 자신의 손가락에 죽여할 사람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설사 기억력이 사라지더라도 기억할 수 있게. 또한 종종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잃어버린다. 그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다시 기억의 조각을 되찾는다. 

출처: ACEMAKER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그가 하는 행동은 알츠하이머 환자의 행동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다방에 들어가서 경찰을 따돌리거나, 명함을 이용해 사채업자들이 있는 장소를 찾아오는 것은 그의 전쟁 참전 경력으론 이해되지만, 병력으로 볼때는 이해하기 어렵다.

출처: ACEMAKER

<리멤버>를 보면서 기억의 저편에 있던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떠올랐다. 한참 동안 생각해 본적 없던, 잊고 살았던 일이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를 이어주는 매체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