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흔적을 붙들어 경계를 짓는 작가- 김령

2022-10-02     심정택 칼럼니스트

김령 작가는 물푸레 나무 등을 깎아 만든 얇은 목봉(木棒)을 병렬로 결합해서 형태와 볼륨(양각 및 음각)을 가진 도자기를 표현한다.

Woven Line 80.3(w)x 80.3(h) x 7(d) cm Acrylic on wood 2022

작업은 최초 ‘사물(혹은 물질)과 존재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가공되기 전 터에 뿌리를 박고 사는 나무의 모습은 대부분 도시에 정주한 인간의 삶과 닮았다. 삶은 살아온 이력, 궤적을 남긴다. 나무를 베어내면 나이테라는 ‘흔적’이 보인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는 <현전과 부재>를 흔적(trace)으로 설명한다. 현전(現前·현재 있음, presence)도 아니고 부재(不在·absence)도 아닌 흔적은 ‘있다’, ‘없다’고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비확정성’ (undecidable)을 가진다. 또는 있음과 없음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경계선이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작가의 어머니는 인간의 모습은, ‘영혼(체)을 담는 그릇’이라고 입 버룻 처럼 말씀하셨다. 도자기 형태 또한 직립형 인간의 외형과 비슷하다. 작가에게 도자기가 대상(對象)이자 매체로 선택된 이유이다.

Woven Line 45.5(w) x 45.5(h) x 5(d) cm Acrylic on wood 2022 

김령은 국내 대학에서 프로덕트 디자인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서는 3년제 석사 과정의 가구 디자인을 전공했다. 실습은 종이와 나무를 활용한 키네틱 아트로 ‘숨결’ 주제를 표현했다. 논문의 주제는 이미지(관념)와 실재의 관계에 대한 연구이다. 김령은 마지막 겨울 학기에 동급생과 ‘Rethinking seating’ 수업을 개설해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나무로 샘플을 만드는 목업(mock-up) 작업과 각종 재료를 사용한 입체 작업에 능한 김령의 작업은 회화에 쓰이는 캔버스에서 이루어진다. 당초 도자기 음각(陰刻) 작업은 대상과의 비율을 1:1 로 가져갔다. 움푹 들어간 음각은 너무 튀어 양각(陽刻)으로 전환했다. 관람객들은 재료인 나무를 회화적 작업의 오브제가 아닌 가구 재료로 이해하며 실용성을 보려는 경향을 보였다.

Container 53(w)x 72.7(h) x 12(d) cm Acrylic on wood 2022

양각 작업 과정에서 생긴 볼륨(atrium·빈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김령은 가시적인 조형미 찾기에 천착했다. 작업이 캔버스로 옮겨온 현실적인 이유는 입체 작품들은 가격 정하기가 어려워서 이기도 하다. 도자기 도상(圖像)을 의식하여 도자기의 보편적 색을 찾으려고 했으나 나무 물성에 잘 어울리는 대중적인 색 찾기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Container 53(w)x 72.7(h) x 13.7(d) cm Acrylic on wood 2022

도자기는 파장이 다른 색, 빛, 온도에 따른 컬러의 변화, 파낸 홈에 다른 흙으로 메우고 유약을 바른다. 자연의 빛 반사로 드러난 형태, 무게감, 부피와 놓인 공간의 아우라와 합쳐지며 구조 및 재료와 결합한다.

도자기에 대한 고착화된 이미지가 일정한 크기의 프레임을 가진 평면 캔버스와 합체되면서 가시적인 나무 재질로 인해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걸 느낀다.

김령은 도자기 자체가 갖는 ‘그릇; container’이라는 ‘담는다’는 개념을 중시한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 불투명 용기 안, 공간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창작은 손끝 재주에서 시작된다. 개념과 철학은 조형 이후에 완성된다.    

작가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관객은, 도자기는 단순히 작품의 도상으로서의 모티프 또는 대상으로만 간주한 게 아니라, 흙으로 빚어 구워 갖는 속성인 '고형'(固形), '무게'라는 사물에 대한 전통적 인식, 고정관념을 깨트리려 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마치 본 것처럼 드러내는 게 예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Container 72.7(w)x 100(h) x 19(d) cm Acrylic on wood 2022 

목봉을 다듬는 과정은 ‘공예적’(crafty·솜씨 좋은) 작업이다. 작품의 결과물을 ‘공예’로 이해 할 수도 있다. 김령은 종종 ‘공예’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현대 미술에서 공예는 타자화(他者化)되어 있다.

인연_테이블과 스툴_60x68x70, 32x42x32_mixed media on wood_2017

흔히 ‘현대 디자인 또는 건축의 아버지’ 로 불리는 윌리엄 모리스 (William Morris, 1834~1896)는 진정한 예술은 노동자에 의한 생활예술(lesser arts)이라고 생각했다. 건축·조각·회화 같은 거대 예술(greater arts)이 아닌 벽지, 수공예품 등 공예 예술에 주목하였다.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존 러스킨(John Ruskin , 1810~1900)과 윌리엄 모리스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대량생산에 반발하여 미술공예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을 일으켰다. 이들은 예술과 공예를 일치시킨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

윌리엄 모리스는 기계의 역할을 완전히 배척하지는 않았으며, 예술의 범주에 공예를 합류시켜 디자인이라는 새 영역을 만들었고, 중세와 현대의 공예 사조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그는 공예가 건축 공간에서 장식적 기능을 가지며 예술적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예술가의 창의성과 디자이너의 기술이 합쳐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술공예운동은 산업적 대량 생산 도자기에 반기를 든 독립적 도예 작가들을 출현케 했으며 파블로 피카소, 호안 미로 등 현대 미술가들이 도자기를 주요 매체로 작업하기도 했다. 당연히 흙으로 빚은 도자기이다.

라인_오브제_93.5x38.5x6_mixed media on wood_2017

김령 작가의 초반 작업은 나무로 선을 표현하여 그 선들을 조합한 오브제였다. 이때의 주제는 ‘삶’이었다. 살아오는 동안의 인연, 관계를 선형으로 표현했으며 그것의 조합을 표현했다. 이때의 작업은 라인들을 하나하나 조각하여 다듬었다. 

더 많은 선들을 조각해서 조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더 단순화시켜 병렬 구조로 조합하였다. 각자의 형태를 갖고 있던 선들은 목봉으로 통일되었다. 처음 목봉들은 두께가 다양했다. 

현재 평면으로 작업이 이동하면서 목봉은 두께가 하나로 표준화되었다. 제한된 시간 동안에 더 많은 작업을 할 수 있으면서 더 적은 노동력으로 제작할 수 있는 작품을 고민하다 나온 형태이다. 윌리엄 모리스가 말한 예술가의 창의성과 디자이너의 기술이 합쳐진 적절한 예이다.

김령의 ‘공예적’ 작업은 미술 시장에서의 작가 및 작품의 양극화, 문화 소비 계층의 양극화를 해소하고자 하는 정신적 사유의 과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4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