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과 국정원의 기울어진 공조...수리남

2022-10-01     김주희 영화칼럼니스트

<수리남>은 한국 영화 제작사가 제작하고,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텔레비전 드라마다. 민간인과 국정원 공조라는 산뜻한 소재가 주는 몰입감과, 서사를 이끌어가는 힘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다만 윤종빈 감독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기대치엔...' 하는 아쉬움이 있다.  

‘수리남’이라는 생소한 국가에서 마약왕 체포를 위한 평범한 사업가의 활약(어찌 보면 무모한 행동)은 경이롭다. 여기에 마약왕 전요환(황정민)을 사이비 목사로 설정하면서 극에 재미와 긴장감을 높였다. 하지만, 전요환과 조폭의 행태는 너무나 익숙하고 상투적이다. 윤종빈 감독의 전작(<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공작>)에서 그러했듯이 여배우의 활약이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론 영화를 넘어 안방 TV 드라마까지 범죄와 조폭물에 매몰되는 게 아닌가 싶어 은근한 걱정도 된다.

출처: 넷플릭스 코리아

민관 공조가 탄생시킨 민간인 슈퍼히어로 

<수리남>은 한국 법망을 피해 수리남에서 거주하면서 마약 밀매를 하던 조봉행 체포 작전에 기반을 둔 TV 시리즈물이다. 체포 작전이 3년에 걸쳐 진행되었다고 한다. 실화에 기반을 두었으나 윤종빈 감독과 권성휘 작가의 상상력이 많이 가미된 작품이다. 

강인구(하정우)는 친구의 소개로 한국에서 하던 사업을 접고, 수리남에서 홍어 수출을 시작한다. 수출한 홍어에서 코카인이 나오고 그는 마약 불법 유통으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전요환 체포에 몇 년째 공을 들이고 있던 국정원 요원 최창호(박해수)가 강인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강인구가 동의하면서 공조는 시작된다. 이후 강인구는 마약상으로 행세한다.

출처: 넷플릭스 코리아

에피소드 횟수가 지날수록 강인구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실제 공조 작전에서는 어떠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야기의 중심에 강인구가 있다. 국정원 요원처럼 교육받지도, 총을 다룬 적도 없지만, 위험한 상황을 나름의 재치와 유머, 배짱으로 타개한다. 

이를 위해 드라마 1화 초반에 9분 정도, 짧은 쇼트들과 하정우의 내레이션을 통해 강인구의 어린 시절과 성장기를 설명했다. 먹고 살기 위해 유도를 배웠고, 생존을 위해 일찌감치 학교 대신 사회에 발을 들여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동두천에 거주하면서 어깨너머로 영어와 자동차 수리를 배웠다 등. 드라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소개 방식은 낯설었다. 제작비 감소를 위한 방편이 아니었나싶기도 하다. 

전요환은 상대적으로 강인구의 자유로운 활동을 어느 정도 허용해 준다. 그 결과 중국 조폭 두목(첸진)과의 만남과 대화도 할 수 있었다. 비록 언더커버(비밀) 요원인 변기태(조우진)의 도움으로 한 번의 발각 기회를 피했지만, 강인구는 6화 거의 마지막까지 신분이 탄로 나지 않는다. 더욱이 최후에 전요환을 체포하는 것도 강인구라는 사실은 그를 영웅화시킨다. 몇 년 동안 그를 뒤쫓았던 국정원은 나중에 나타난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하다. 강인구가 국정원의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지원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해도 좀 지나친 상상력은 아닐까 싶다. 전요환에 대한 그의 복수심은 이해는 되지만, 행동력은 의문이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자신과 같은 삶을 자식에게는 물려주기 싫은 가장이라고 해도.....

출처: 넷플릭스 코리아

마약과 사이비 종교의 만남 

윤종빈 감독은 씨네21(1373호, 임수연)과의 인터뷰에서, 전요환에게 더 많은 신뢰를 주기 위해 그의 직업을 목사로 선택했다고 했다. 당연히 이점은 실화와 다르다. 조봉행은 수리남에서 초기엔 생선 공장을 차렸으나, 이후에 유럽으로의 마약 밀매를 통해 마약왕이 되었다. 

전요환은 목사로서 행세하면서 사람들을 속인다. 또한 교인들이 자신도 모르게 마약에 중독되게 하는 죄악을 저지른다. 심지어 아이들에게조차 이런 마약 음료를 음용하게 한다. 이런 행동은 어린 자녀를 둔 강인구가 전요환의 거액의 제안을 물리치고, 그를 죽이고 싶은 동기를 제공한다. 전요환은 수리남에 오기 전 한국에서도 마약을 이용한 사기로 수배 중이었다. 

출처: 넷플릭스 코리아

한 편의 드라마가 대체로 60분 이상이지만, 6부작으로 TV 드라마 시리즈로는 길지 않다. 잔인한 몇 장면이 있지만, 다른 범죄물에 비해 총격이나 참혹한 장면은 많지 않다. 대신 영화 <공작>에서 보았듯이 대사(대화)를 통해 긴장감을 고조 시킨다. 목사로서 언변이 좋은 전요환, 강인구, 최철호, 첸진(장첸) 간의 대화를 통해 극의 분위기와 톤을 조정한다. 첸진을 제외한 3명 모두 겉으로는 기독교 신자이다. 강인구와 전요환의 만남도 강인구의 아내(추자현)가 수리남에서 교회에 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성사되었다.

마약왕으로 전요환이 하는 행동들은 <신세계>와 <아수라>에서의 황정민의 악당 이미지와 많이 겹친다. 황정민의 마약왕 행세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모습으로 좀 식상하다. 마약왕들은 왜 맨날 속옷만 입고 풀장에서 양옆에 여자를 끼고 앉아 있는지, 수영장 장면은 왜 그리 많이 나오는지 알 수 없다. 수리남에서도 최소 3번 이상(3화, 5화)에서 등장한다. 

여 주인공의 부재 

<수리남>은 가부장제 아래 가장의 책임감과 부담감에 또 다른 초점을 두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수리남>에서 첸진(장첸)을 포함한 6명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 남자다. 그나마 등장하는 여배우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강인구 아내와 그의 딸(심혜연), 국정원 요원(김시현) 및 전요환의 여신도들에 불과하다. 

출처: 넷플릭스 코리아

영화 내용이 마약과 사이비 종교와 조폭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여배우의 비중은 매우 약하다. 그나마 강인구 부인조차도 많은 장면이 그의 내레이션이나, 전화 통화 속에 스쳐 가듯이 등장한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이 드라마에만 그치지 않는다. 올해 1200만 관객 이상이 관람한 <범죄도시2>에서도 여배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적극적인 여배우의 활용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윤종빈 감독은 영화감독이자 각본가이며 제작자다. <수리남>은 그가 처음 제작한 TV 드라마 시리즈물이다. 첫 출발이 매우 좋았다. 다음번엔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기존 작품과 차별되는 새로운 작품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