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서다 - 이은경 작가
이은경 개인전 'PLAY:Fight or Flight', 플레이스막에서 25일까지
지난해 전시, <살아지는 나, 사라지는 너〉는 최근 몇 년 간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어린이 학대 사건이 모티프였다.
이은경 작가는 6년여전의 ‘원영이 사건’을 비롯, 아이들 학대 사건을 피하고 외면할 수 없었다. 관련된 이야기나 사건들에 크게 마음이 요동친 감정들을 그림에 담고자 하였다. 자신이 모델인 그림 속 화자(narrator)는 인형을 껴안고 있기도 하고, 작은 인형들이 화폭 속 공간에 놓여있기도 하다. 인형으로 상징된 학대 받은 억울한 영혼들을 비롯 작은 존재들에 대한 마음을 담았다.
사건을 접하는 것 자체가 무서웠으나 작가로서, 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기로 방향을 바꾸었다.
목사이자 신학자인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1906~1945)의, 그리스도는 자신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존재이고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가 곧 교회라는 신학관은 강한 사회성을 동반한다.
그는 유대인 및 장애 어린이를 말살하려는 나치에 저항하였다. 그가 남긴 메시지는 동시대에 여전히 영향을 미친다.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다”
“한 사회의 도덕성은 그 사회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 주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작품 <마당놀이>를 보면서 독일 바우하우스(1919~1933) 시절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1888~1943)가 무용과 음악, 의상 세 가지를 결합해 발표한 '삼부작 발레(Triadic Ballet. 1922)'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삼부작 발레>는 세 명의 무용수가 등장하고 교향악적, 건축학적 구성이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용, 음악, 의상이 하나로 융합되어 12편의 춤을 펼친다. <막대 춤 Pole Dance>, <블록 놀이>는 동작 역학, 공간 개념, 소품, 시각 예술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은경은 마당이라는 무대에 가면(탈)과 ‘다양한 생명체’(또는 생명 없는)의 인물을 등장시켰다.
인형과 함께 등장한 비둘기, 사람들은 비둘기에 먹이를 주지 말라고 플래카드가 붙은 골목 길 끝에 죽은 비둘기를 보며 시선을 거둔다. 골목 안 누군가 먹이를 풀어놓았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아야 함에도.
자신의 인생을 짜 밀어 넣은 그림들
러시아어 따라깐(таракан)은 ‘바퀴벌레’라는 뜻이다. 작품에서는 죽음과 관련된 도상(圖像)임을 알 수 있다. 습한 여름이면 낡은 아파트에는 종종 바퀴벌레가 출몰하였다. 목격한 바퀴벌레는 세상을 떠나고 수개월 뒤에 발견된 이웃집 부패한 할머니의 시신과 관련되었다고 추정하였다.
할머니의 ‘가장 빛나는 시절’에 작가 자신과 아름다운 여성의 몸을 대입하였고, 할머니의 영혼인 이마에 붙은 따라깐을 위해 승리의 트로피를 대신 안았다. 따라깐은 지상을 떠난 그녀의 영혼에 대한 위로이며 작가 스스로 어린 시절부터 가진 왠지 모를,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대신한 자발적인 주홍글씨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현실적 풍경’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 현상 만을 말하지 않는다. 예술가에게는 자신의 의지가 작용했던 하지 않았던 지나온 삶의 궤적 전체가 현실적 풍경이듯이 사회가 존재해왔던 그 너머의 풍경을 보고자 한다.
현실과 심미성 사이에는 균열과 파열이 있다. 이은경은 그 갈라진 틈새에서 솟아나는 것을 그린다.
이은경의 대학 시절 스승인 서용선 작가는 수년 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작가는 전시를 통해 관객에게 뭔가 불편한 것도 필요하다고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이은경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피하는 사회적 문제, 현상을 드러낸다.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화가가 감당해야 할 일과 사명이 현실 속에 있다고 본다.
흔히들 인물화는 회화 작가의 마지막 작업 단계라고 한다. 이은경은 그 마지막 단계인 인물을, 더군다나 자신을 모델 및 대상으로 삼아 소위 말하는 센 그림을 내놓는다. 자화상은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매개이기도 하다.
어느 사회에 놓여있든 이방인이 될 때(스스로 그렇게 느낄 때), 그 사회 안에서 살아갈 만한 생존의 공간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한국 사회는 유난히 우리와 그들로 구분한다. 심리적으로 우리에 흡수되지 못할 때, 외부자와 내부자의 시선을 동시에 갖고 있는 작가 자신은 누구이고 무엇인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1906~1975)는 자신의 책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자유란 타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짜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했다. 이은경은 우리 사회 타인들과 그림으로 이야기를 짠다. 공감의 매개는 자신의 인생을 짜 밀어 넣은 작품이다.
아프리카 세네갈 다카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작가가 지나온 삶의 특별한 여정과 궤적이 눈에 띤다. 자신이 나고 자라지 않은 다른 나라, 다른 도시는 대개 타자화된다.
떠나온 지 30여년이 지났으나 생명을 부여 받아 나고 자란 어린 시절은 한 인간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술가에게는 정체성의 출발일 수 밖에 없다.
1980년대, 프랑스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세네갈은 여전히 가난한 나라였으나 이은경은 부유한 프랑스인들이 사는 동네에서 자랐기에 풍성한 기억뿐이다. 하지만 차로 수도 다카르 도심을 한 두 시간만 벗어나도 치료받지 못한 나병 환자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복합적인 괴리로부터 오는 이상한 죄책감이 종종 짓누를 때가 있었다. 다카르를 떠날 때쯤 세네갈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평원 지대라는 인식이 들기 시작했다.
생명과 사물에 대해 마술적 신비감에 젖는 나이, 도착한 곳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이은경은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마치는 동안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 풍경화의 대가 이반 쉬시킨(Ivan Shishkin·1832 ~ 1898),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가 일랴 레핀(Ilya Yefimovich Repin·1844~ 1930)을 좋아했으며 직접적으로 영향 받았다. 소련 연방이 무너지는 혼란기였지만 러시아 사실주의에서 색감의 사용, 형태의 구성, 독일 바우하우스의 맥으로 이어져온 극적인 무대 배치 등을 배웠다.
레핀 대학교에 입학한 해, 생경한 부모의 고향 한국으로 들어와야 했다. 레핀 대학교에서는 일반교양 과목도 미술 수업으로 구성될 정도로 교과과정이 그림 그리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연습량이 압도적이었다. 인물화 수업만 해도 모델을 두상, 상체, 전신, 누드 별로 구분하였고 유화, 수채화, 연필로 각각 그려야 했다. 한 학기에 최소 각 15점은 그려야 했다. 전체와 부분으로 나누어 완벽히 습득시키는 연습이 엄청난 강도로 반복되었고 재료에 대한 이해는 작업에서 체화하는 수준으로 전통적 수업 방식이 고수되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서 보다
만신(萬神·여자 무당) 김금화(1931~2019)가 시퍼런 날이 선 두 개의 작두 위에 올라가 춤을 추는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이은경은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한지 제법 된 뒤 굿판을 마주하였다. 김금화 만신은 이미 고령으로 접어들어 굿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제자들이 진행하고 중간중간 짧게 등장하면서 전체 흐름을 잡아주는 역할만 하였다.
김금화는 서해안 배연신 굿과 대동 굿을 성행한 큰 무당이었다. 비교적 훤칠한 키의 김금화 만신이 소매를 펼치면 너나없이 굿판에 뛰어든다. 삶의 앙금이 다 빠지는 피부 호흡의 체험, 그것이 만신 김금화의 굿이었다는 평가이다. 사람들은 서슴없이 '나라만신(國巫)'이라 불렀다.
이은경이 참관한 굿판은 한편의 뮤지컬이나 오페라 같았다. 굿판은 오감을 빈틈없이 자극하는 강렬한 느낌과 몰입감이 있었다. 굉장히 강한 기(氣)나 아우라가 느껴졌고 구성 방식이 틀에서 벗어났기에 제사 의식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공연에 참여하는 느낌이었다.
하나로 이어져 휘날리는 쨍한 오방색 천은 이은경이 살았던 세네갈이나 러시아에서 보지 못한 색 조합과 구성으로 이질적이거나 촌스럽지 않았고, 공간을 장악하는 밀도감이 압권이었다.
이은경은 예민해서 높은 볼륨의 소리를 장시간 듣지 못하나 굿판의 그 쨍쨍 찢어지는 소리는 시각적 자극들을 완성시키는 기폭제였다. 시각과 청각이라는 범주를 무너뜨리면서 하나로 이어지는 극한의 공간,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 시공간을 구성해내는 듯이 느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굿을 본 이후로 여운이 오래 남았고 그 강렬한 현장을 다시 확인하고자 젊은 날의 상당 기간을 굿판으로 쫓아다녔다.
사람들의 죽음 의례가 재생을 염원하는 방향으로 설정되고 구조화되었다. 대부분의 죽음의례에서는 죽은 자들이 살아나거나 거듭나고 재생하는 의식과 놀이와 관련한 상징물을 만들어 세우고 관련한 연극을 꾸미며 관련한 노래를 지어 부른다. (…)날마다 다시 뜨는 해와 달처럼 혹은 계절처럼 가역적인 인생으로 바꾸어놓기 위해서다. (이윤선)
이은경이 마주한 굿판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무너진 새로운 차원의 시공간이었다.
명절이면 산 자나 죽은 자 앞에 고기와 과일, 떡이 쌓이거나 놓인다. 비유로 쓰이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라는 말, 실제 굿판에서는 굿을 주관하는 이는 상당한 복채를 내어야 한다. 명절 상차림 이상의 추가 비용도 든다.
한 편의 오페라, 뮤지컬과도 같은 굿판을 보는듯한 이은경 개인전, <PLAY : Fight or Flight>는 플레이스 막(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622번지)에서 9월 25일까지이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4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