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들의 대선, 반(反)정치주의는 경계하자
[윤석규 정치 맥점을 짚다]
1. 2012 대선 안철수의 실패는 반(反)정치주의가 원인(?)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안철수 대표가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주저앉은 원인 가운데 하나는 정치를 모른다는 것과 아울러 반(反)정치주의에 가까운 그의 정치관이다. 정치에 대한 그의 식견과 관점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많다. 한 해 앞선 2011년, 안철수 대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후보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자 김종인 전 위원장은 서울시장 출마보다 다음 해 총선에 출마해 국회의원부터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 대표는 “서울 시장은 행정이라 할 일이 많지만, 국회의원은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인데 왜 하느냐”라고 답하면서 거절했다 한다. 국회의원 정수를 100명 줄이자는 말은 유명하다. 그는 대선을 준비하면서 정당을 만들 시간과 기회가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창당도 하지 않았다. 건네 들은 말이다. 그의 최측근 인사는 ‘국정을 운영하는데 유능한 전문가 수 백 명이면 충분하지 정당이 무슨 필요가 있겠나’라 했다고 한다.
2011년 그는 서울 시장 보궐선거의 유력 후보로 부상했지만 박원순 변호사에게 시장 후보를 양보했다. 대중은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는 거물급 정치인으로 한 단계 더 도약했다. 정치적으로는 아마 그 때가 그의 정점이었다고 본다. 만약 총선 전에 그가 대선까지 염두에 두고 창당을 했다면 그 후 그의 정치적 운명과 한국정치 지형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궁박한 처치에 놓인 민주당은 시민사회세력과 친문원조세력이 중심이 된 ‘혁신과 통합’과 합당하는 형식으로 명분과 세를 불렸고, 당 밖에 있던 박원순 시장도 이 때 당에 참여했다. 안철수가 독자 창당을 추진했다면 그에게 결정적 도움을 받은 박원순 시장과 시민사회세력이 거리낌없이 민주당에 합류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총선 결과도 사뭇 달랐을 것이며, 연말 대선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의 선택은 달랐고, 그 밑바탕에는 그의 반정치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2.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이 아웃사이더 불러들여
반정치주의 고수하는 권력 성공 어려워
반정치주의는 장외에서 갑자기 등장한 정치인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태도다. 장외 정치인이 자주 소환되는 현상 자체가 한국 정치, 기성정당, 기성정치인이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정당에 속해 있더라도 주류보다 아웃사이더가 더 각광을 받는 것은 이러한 현상의 다른 버전이다. 2002년 노무현은 당시 민주당 주류의 눈에는 아웃사이더였다. 2007년 이명박도 한나라당 안에서 아웃사이더였을 뿐 아니라 정치인으로서의 성과 대신 성공한 기업인과 유능한 서울시장 이미지에 힘입어 대통령이 되었다. 친문을 등에 업고 민주당을 장악했지만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운명이 불러냈을 뿐이라 말한 문재인 대통령도 사실 장외 정치인에 가깝다. 민주당의 유력 후보 이재명 지사도 0선의 단체장 출신이다.
반정치주의는 부정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바람직하지 않다. 반정치주의는 권위주의 정권이 아무 견제도 받지 않은 채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국회와 정당, 정치인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 일부 언론과 지식인이 동조했고 국민들은 큰 문제의식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반정치주의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강화하고, 정치발전을 가로막는다. 정당이 발전하지 못하고, 좋은 사람들이 정치에 뛰어들기를 꺼린다. 후진적 정치의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반정치주의가 불러냈다고 해서 반정치주의에 계속 올라타는 정치인은 권력을 잡아도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 심지어 위험하다. 그런 사람이 권력을 쥐면 국회와 정당이 약화되고, 정치의 역할은 사라지고, 청와대를 중심으로 권위주의적이고 일방적인 통치가 이루어지기 쉽다.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 정부라 불리는 것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반정치주의가 그의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비록 아웃사이더였지만 당을 존중했고, 야당에게 대연정을 제안하는 등 끊임없이 정치를 복원하려고 시도했던 노무현과 대비된다.
3. 범 야권 윤석열 최재형 김동연 다 장외인사
이재명도 민주당 소속이지만 아웃사이더
현재 범야권의 유력 대선 후보인 윤석열 전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모두 정치권 밖에서 소환된 장외 인사이다. 조만간 등장할 김동연 전 부총리도 있다. 여권의 이재명 지사는 민주당 소속이지만 그가 아웃사이더란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번 대선도 어쩌면 장외인사와 아웃사이더가 맞붙는 선거가 될 판이다. 혹자는 이를 한국정치의 역동성과 변화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추어올릴지 모르겠다. 그런 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 사람들이 유력후보로 떠오른 데에는 자신들의 덕성도 한 몫 했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반정치주의가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 캠페인 과정에서 반정치주의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대한민국과 한국정치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
그동안 이재명 지사의 정치관은 그다지 분명하게 드러난 적이 없다. 지금까지 단체장 활동을 주로 보여주어서 그런 듯하다. 단, 도정을 운영하는 모습에서 정치를 대하는 그의 관점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지난 9월, 이 지사는 같은 민주당 소속 신정현 도의원(고양3)이 지역화폐의 실효성에 대해서 질의하면서 44분간의 설전을 벌였다. 그는 대단히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6개월 후 신 의원은 기본 시리즈 정책에 대해 이 지사를 상대로 도정질의를 할 예정이었으나 이 지사는 코로나19 의심 증세를 들어 도의회에 불참했다. 그밖에도 그가 성남 시장과 경기 지사로 일하면서 보여준 업무추진 스타일을 보면, 그는 한 마디로 대화와 토론, 합의보다 효율성과 일사분란을 훨씬 중요시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자칫 저런 스타일이 국정운영까지 이어진다면 야당 존중, 국회 존중은 기대하기 어렵고, 대화와 타협이 중시되는 정치는 실종될 가능성이 크다. 당은 거수기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같은 아웃사이더 출신 노무현과 많이 다르다. 매우 우려되는 대목이다.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김영우 전 의원을 캠프 책임자로 임명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장외에서 정치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이 정치인을 꺼리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최재형의 인선은 달랐기 때문이다. 최재형은 국민의힘 입당도 신속하게 마무리했다. 장외 출신이지만 기존 정치권과 거리를 두지 않겠다는 생각을 드러낸 셈이다. 대선 여정에서 국민의힘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끌어안겠다 선언한 것이다. 그의 빠른 입당이 그가 대선에서 승리하는데 도움이 될지 아직 알 수 없으나 기성 정치권과의 관계를 빠르게 정리하고 불확실성을 없앴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제 국민들은 최재형이라는 정치인에 대해 판단할 근거를 많이 갖게 되었다. 그는 국민의힘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지향을 가지고 있고,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사람들과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미루어 보건대 그는 최소한 정치에 대한 선입관이나 편견은 없어 보인다.
4. 윤석열, 입당과 제3지대 세력화 아직도 불투명
윤석열 전 총장의 정치관이 가장 미심쩍다. 충분한 정보가 알려지지 않았고, 그도 정치관을 명시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출마선언 이후 그의 행보로 짐작할 따름이다. 초기단계이기는 하나 대선 캠프가 주로 관료, 교수, 기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만나 의견을 나눈 사람들도 정치인들보다 교수와 학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아직도 그가 왜 김종인, 윤여준, 금태섭 같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국민의힘에 입당할지, 제3지대 후보로 나설지, 제3지대에서도 세력화만 할지 아니면 창당을 할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선택과 대비된다. 정권교체를 말하지만 정권교체가 된다면 다음 정권의 주역들이 누가 될지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이제 출마의사를 밝힌 지 한 달도 안 지났다 변명하지만 그건 그냥 준비가 안 됐다는 소리에 불과하다. 유인태 전 사무총장이 지적한대로 그는 장외 출신 정치인들이 지닌 전형적인 태도인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경계심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으로는 대선 전망이 밝지 않을뿐더러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국민들이 윤석열 한 사람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국민의힘 경선이 시작되는 8월 전에 입당하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면 지금으로서는 독자 창당이 최선의 선택으로 보인다. 당이 후보를 만드는 대신 후보가 정당을 만드는 것도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당 없이 개인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더 나쁘다. 반정치주의에 다름 아니다. 나중에 타 정당 후보와 단일화를 해도 단일화 이후 대선에서 승리하면 연정을 해야 하는데 개인과 정당이 어떻게 연정을 하겠는가? 단일화에 승리하면 국민의힘에 입당한다? 처음부터 그런 계획을 밝히지 않고 그리 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효과도 없다. 단일화 전에 중도와 탈문진보를 충분히 지지층으로 결집한다 해도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순간 그 지지층이 본선까지 따라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총장은 이제라도 본인의 정치관과 정치세력화에 대한 계획을 밝히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게 옳다.
윤석규는 서울대 인문대를 졸업하고 YMCA 경실련 등에 몸담아오다 DJ정부에서 청와대 시민사회국장을 지냈다. 2002년 노무현 캠프의 상황실장을 맡아 노무현 대선 전략의 밑그림을 그린 ‘정치전략통’이다. SNS 등에서 합리적 진보 논객으로 활동 중인 그는 날카로운 정치 분석으로 정평이 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