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이야기 '날씨 클래식'을 시작하며...
날줄과 씨줄처럼 인문학 스토리로 엮어내는 클래식 이야기 프레너미 관계 음악가와 작품 배경 시리즈부터 선보일 예정 7월 3일 부터 매주 일요일 연재 예정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그 무서운 종교재판에서 자신의 지동설을 부인하고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독백을 했다던 시절은 17세기 초반이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카톨릭 종교재판소에서만 몰랐을 뿐, 이미 과학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 이전까지 세상 사람들은 지구는 평평하며, 대륙과 바다에 끝이 있다고 믿었다. 배를 타고 그 끝에 도달하면 마치 절벽 같은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믿었는데, 이 상상은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편에서 실감나게 그려졌다.
그들을 그 무서운 바다 끝까지 가게 한 것은 바로 경제적 이유였다. 1453년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동로마제국이 멸망했을 때 카톨릭 세계였던 유럽은 큰 충격을 받았다. 역사가들은 중세의 종말이자 근세의 시작을 이 연도로 잡는다.
고급 식재료의 보관·저장이 쉽지 않던 시대에 육류는 어쩌다 한번 도살하면 바로 소비할 수 없었던 비싼 것이었고, 그래서 육류를 최대한 오래 먹으려면 향신료가 필요했다. 서양은 이미 고대 로마 시절부터 향신료를 적극적으로 수입했다. 로마의 요리서에 보면 후추는 이미 80%의 레시피에 쓰였을 정도로 흔했다. 향신료를 구해오느라 로마에서 막대한 금과 은이 유출되었다. 7세기 이후 북아프리카에서 이슬람 제국이 아랍과 페르시아에 이르는 막대한 영토를 점유하면서 아시아발 무역의 패권과 그에 따른 부(富)도 그들에게 넘어갔다. 서유럽은 이슬람세력권으로부터의 향신료 수입이 늘었고, 이슬람 문화가 수입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문헌의 사본들도 유입되어 르네상스의 원천이 된다. 기존의 동방무역로가 원활하지 않자, 상인들은 새로운 부의 항로를 찾게 된다.
1492년, 유럽의 서쪽 끝인 스페인에서는 카스티야 왕국의 여왕 이사벨라와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가 결혼하여 성립한 스페인 왕국이 800년간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와있던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축출한다. 이로써 40년만에 유럽기독교 세력은 동로마에서의 패배를 일부 위로받게 되었다.
이 승리를 기회로 지도제작자였던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 크리스토퍼 콜롬보는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탐독했다. 세상은 그다지 크지 않으며, 바다 서쪽 끝에는 낭떠러지가 아닌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지구는 둥글 테니까 서쪽으로 계속 항해하다 보면 중국과 인도에 닿을 수 있으니 오스만 제국을 거치지 않고 교역할 수 있다고 주장해 마침내 이사벨라 여왕으로부터 탐험의 후원을 얻어냈다.
1492년 8월 3일 스페인 카디스를 떠나 2달 10일 뒤인 10월 12일 지금의 바하마 제도에 상륙한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상륙한 곳이 아시아로 알고 죽었다. 그가 콜럼버스로 알려진 것은 영어식 이름을 미국이 널리 홍보해서다. 1503년 이탈리아의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콜럼버스가 항해한 곳은 아시아가 아니고, 신대륙이라며 자신의 이름을 따 아메리카 대륙이라고 명명한다.
그런데, 실제로 향신료 무역은 1498년 5월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가 남쪽으로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면서 본격화했다. 대항해시대는 또다른 무역항로를 찾은 데서 시작되었고, 향신료에서 금은으로 확대되었으며, 마지막으로는 식민지 개척을 넘어 노예무역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무역과 세력권의 확대는 지도의 제작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에서 1402년에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는 당대 모든 지리정보를 모아 만든 당시로서는 가장 정확한 지도였고, 중국에 온 서양 신부 마테오 리치는 서양과 동양의 지리정보를 모아 1602년 ‘곤여만국전도’를 만들었는데, 오늘날의 세계전도와 거의 흡사할 정도였다.
나침반이 널리 보급되고 항해를 위한 지도가 더 정밀도를 요구받으면서 16세기의 지도학자 메르카토르는 구형의 지구를 평면의 격자로 표시하는 메르카토르 투영법을 창안하는데 여기에 지도의 가로줄인 위도(緯度 latitude)와 세로줄인 경도(經度 longitude)가 처음으로 제대로 표시된다. 경도는 1884년 국제회의에서 당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런던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본초자오선을 표준으로 삼고 지구의 동서를 각 180등분하여 지도의 표준으로 삼았다. 당연히 위도는 적도를 기준으로 북쪽과 남쪽으로 각 90등분하여 표준으로 삼는다.
오늘날, 운전자들은 아무리 모르는 지역에 처음 가더라도 길을 헤멜 일이 없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내비게이션과 맵, GPS의 도움으로 위치를 정확하게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GPS는 원래 폭격이나 미사일의 정확한 표적을 지정하려는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되었지만 지금은 일상생활에도 널리 쓰인다. 경도와 위도만 알면 정확한 위치가 잡히고 어디서 어디로 가야할지 헤매지 않을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그냥 혼자서 일어나는 일이 없다. 원인과 결과, 연쇄반응의 관계로 얽혀있다. 지구에서 별로 크지 않은 지역인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이 전세계 공급망을 어그러뜨려 식량위기가 찾아오고 에너지 가격이 치솟아 세계경제를 위기로 몰아넣는 지금의 현상이 그 증거다.
클래식음악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가 다른 모든 조건과 무관한 예술성으로 인해 ‘절대음악’이라고 부르는 작품들도 그 작곡가가 살던 시대와 환경, 개인적 삶의 궤적과 그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들이 날줄(경도)과 씨줄(위도)을 이루어 베를 짠다. 그 베가 바로 작품이라면 그 위에 수놓아지는 색깔과 무늬, 그리고 쓰임새는 작품이 남긴 감동과 가치, 역사적 평가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 평범한 한 사람의 삶도 풀어놓으면 대하소설 하나쯤은 너끈히 나온다고 한다. 하물며 세기를 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예술작품 또한 그 뒤에 수많은 날줄과 씨줄의 이야기들이 교차하며 짜여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날씨 클래식'은 날줄과 씨줄을 요즘 젊은이들 방식인 '날씨'로 줄여 만든 코너 제목이다.
앞으로 날줄과 씨줄처럼 클래식 음악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가면서 시대를 넘어 감동을 주는 위대한 예술과 예술가들을 만나보려 한다.
매주말마다 뉴스버스 독자들을 만나게 될 첫 번째 주제는 프레너미(frenemy)다. 친구(friend)와 적(enemy)이 합성된 신조어로 앙숙인 듯 보이지만 결국 서로에게 자극을 주는 선의의 경쟁자 정도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서 프레너미 사이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풀면서 그들의 걸작들에 대한 풍부한 배경까지 더해 독자들에게 감동을 조금이나마 전해줄 수 있다면 글쓰는 즐거움도 더할 것이다.
김용만은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문화예술TV 프로듀서를 역임한 뒤 콘서트와 컨벤션 등을 기획 연출하는 일을 했다. (사)5·18서울기념사업회의 상임이사 등 사회활동에도 몸담았다. 그는 음악전문지의 편집장과 공연예술전문지의 발행인을 지냈고, 다수의 셰익스피어 희곡, 영화, 방송 번역 경력도 쌓았다. 오랜 기간 클래식 음악에 대한 칼럼을 쓰고, 강의, 방송 출연 등도 해왔다. 현재는 한국장애인신문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