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제2의 독일’로 불리는 이유

[봉화식 스포테인먼트] 4일은 미국 건국 245주년 독일계 혈통이 미국 인구 중 14.7 % 압도적 1위 트럼프, 독일식 ‘드룸프’에서 개명 혐오범죄 시달리는 아시아계 6%…한인은 0.4%

2021-07-04     LA= 봉화식 객원특파원

평소 잘 아는 듯 하면서도 막상 제대로 알기 어려운 미국. 

지구촌 250여 국가 가운데 영토-인구 부문에서 모두 3위에 올라있다. 땅덩어리는 러시아-캐나다가 훨씬 더 크지만 겨울철 거주가 불가능한 얼음덩어리가 대부분이라 효용성은 형편없다. 인구 역시 14억을 넘나드는 중국-인도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50개주-각 지역별 쾌적한 환경 아무 곳에서 살수 있는 선택권이 돋보인다. 4일 건국 245주년을 맞이한 미 합중국은 본토 중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한국 교민들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민으로 구성된 나라답게 인종의 용광로(멜팅 팟, 샐러드 보울)로 통한다.

트럼프, 베이브 루스, 월트 디즈니 등 유명인 배출

이러한 미국은 '제2의 독일'로 불리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영국계 주민이 가장 많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실은 다르다. 잘 알려진대로 17세기 초반 종교의 자유를 위해 영국에서 배 타고 건너온 청교도들이 정착해 세운 나라다. 그렇지만 최신 2020 센서스 결과 독일계 혈통이 압도적 1위로 드러났다. 약 3억3100여만 미국인 가운데 독일계는 전체 14.7%인 4640여만 명으로 나타났다. 독일(8000여만 명)을 제외하고 지구촌 게르만의 절반 이상이 북미에 거주하는 셈이다. 수도 베를린 인구보다 많은 350만명이 사는 펜실베니아주는 미국 최대 독일계 거주지다.

독일 이민자들이 증가한데는 경제적 이유가 첫손에 꼽힌다. 19세기까지 독일은 유럽에서 변방아 취급을 받았다. 대영제국 기치 아래 전 세계에 '해가 지지 않는' 식민지를 건설한 영국, 유럽대륙을 좌지우지한 나폴레옹의 프랑스보다 국력이 한참 떨어졌다. 농민의 토지 소유권이 규제 받고 가혹한 세금 징수-무한 징집 제도에 종교탄압으로 정부에 대한 원성이 높아졌다. 흉작과 기업도산도 연례행사가 됐다. 더 나은 삶과 자유를 찾아 수많은 천주교-개신교-유대계 서민층이 앞다퉈 대서양을 건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9년 6월 3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오산공군기지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가장 널리 알려진 독일계 미국인은 지난해 11월 재선에 실패한 도널드 트럼프 전직 대통령(75)이다. 그의 성은 원래 독일식 '드룸프'지만 발음하기 쉬운 미국식 '트럼프'로 개명했다. 이같은 법적 행위는 anglicize(앵글리사이즈 / 영국식으로 만드는 것)로 불린다. 이 밖에 유대인 학살과 세계대전 촉발로 악명 높은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와 거리를 두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신장은 191cm에 달하며 체중도 100kg을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모친은 스코틀랜드계이며 3번째 부인이자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여사는 슬로베니아 공화국(옛 유고슬라비아 연방)  태생의 수퍼모델 출신이다.

스스로 '아리안'으로 칭한 게르만족 남녀 평균 신장은 더치(네덜란드계)에 이은 세계 2위다. 이들은 체격뿐 아니라 체력도 왕성하다. 현지에 가면 화장실 소변기가 너무 높아 곤욕을 치르는 한인 관광객도 많다. 트럼프 외에 만화 기업인 월트 디즈니와 닥터 수스, 기업인 존 록펠러, 작가 존 스타인벡, 영화배우 겸 전직 캘리포니아 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출생은 오스트리아), 메이저리그 홈런왕 베이브 루스, 사이영 상에 빛나는 투수 잭 그레인키(휴스턴 애스트로스)  등이 모두 독일계 셀럽이다.

이탈리아계의 미국식 ‘신분갈이’...힌두 이슬람은 금기

'앵글리사이즈' 행위는 비단 독일계의 전유물은 아니다. 한때 '케서방'으로 불린 할리우드 스타 니콜라스 케이지는 영화 '대부'를 지휘한 이탈리아계 영화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조카다. 그러나 "마피아 이미지가 싫다"며 성을 갈아치웠다. 특정 이름이 주는 영향력-부정적 그림자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마스터스 우승에 빛나는 PGA 베테랑 '맨손 골퍼' 프레드 커플스 역시 이탈리아 이름인 코폴라를 미국식으로 교체한 경우다. '성을 갈겠다'는 말이 최고의 모욕으로 통하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케이스들이다. 이는 피해자격인 유대인 그룹도 마찬가지다. 스키-베르크-버거-스타인 등으로 끝나는 성을 미국식으로 수정한 사람이 많다.  이같은 신분 감추기는 모두 과거 역사의 슬픈 단면을 증거하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미국도 서부 개척 시절 동부에서 죄를 짓거나 지명 수배된 사기꾼들이 서부로 도망친뒤 이름을 바꾸었다.

이에 반해 문화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미국에서 '절대로' 성을 바꾸지 않음은 물론, 이름(first name)마저 미국식을 거부하는 종족이 있으니 다름아닌 인도(힌두교) 및 파키스탄계(회교)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모국 문화를 바꾸거나 버리는 행위를 철저히 금기시하며 2세들에게도 자랑스런 정체성을 지킬 것을 주문한다. 미국인 입장에서 길고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을 고수하며 모국에 대한 자긍심도 남다르다.

한편 대륙으로 이민 오는 독일사람과 더불어 저먼타운이 늘어나자 미국 의회는 1795년 공문서에 독일어를 추가하는 방안을 잠시 검토하기도 했다. 현재 캘리포니아를 앞세운 서부지역이 가정통신문-공문서에 스페인어, 심지어 한국어를 함께 인쇄해 배포하는 것과 흡사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독일계는 어느 민족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은 채 '미국에 동화된 순수 미국인' 행태에 집중한다. 향우회 등 서로 단합하는 일도 자제하고 후손에게 독일어-역사를 가르치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10월의 맥주잔치 '옥토버 페스트'를 여는 정도다. 미국에서 유대인 파워가 워낙 거센 현실도 눈치 보기에 한몫 한다.

독일과 관련된 현대사가 너무나 잔혹한 탓이 크다. 70년대 인기 TV 드라마 '전투'에서 묘사된 독일군 이미지, 세계대전 당시 다수의 독일계 미군 병사와 독일군이 유럽 격전지에서 서로 많이 죽인 일도 아직 생생하다. 71년전 발발한 6-25 전쟁에서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한국 상황과 너무 비슷하다. 2차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연합군 사령관 역시 독일계였다. 히틀러를 섬멸한 '아이크'는 이후 미국 대통령직까지 올랐다. 기묘한 인연이 아닐수 없다.

독일-아프리카계-아일랜드계 순 인구

독일에 이은 2위는 12.3%의 아프리카계 흑인으로 4060만명으로 추산된다. 노예제도의 희생자인 흑인은 단일 국가가 아닌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기준으로 계산했다. 3위는 11%의 멕시코계로 3710만명이다.  그러나 중미-남미 등 라틴(히스패닉)계 전체를 합할 경우 18%인 6000만명 이상으로 최상위권에 오르게 된다. 불과 150여년전까지 고구려 영토의 수십배에 달하는 광활한 서부-남부지역이 멕시코 영토였던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다.  멕시코계는 라티노중에서도 '치카노'로 불린다. 한인으로 치면 '조선족'이라고나 할까. 현재 미국 땅에서 멕시코계 불법체류자는 400만명에 달한다.

독일계 현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꺾고 역대 최고령 백악관 입성을 이룬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운데)가 지난해 4월 LA코리아타운 한복판의 멕시코 식당 '겔라케차'에서 한인을 비롯한 소수 인종 그룹의 적극적인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봉화식 기자)

다음 순위는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조 바이든 대통령을 배출한 아일랜드계로 10.6%인 3350만명이다. 한때 같은 영연방 소속이던 7.8%(2480여만명)의 앵글로-색슨과 합치면 독일계 못지않다. 그러나 아일랜드 공화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영연방에서도 탈퇴한 후에는 별도로 집계한다. 이밖에 혼혈은 7.2%인 2270만명, 이어 이탈리아-프랑스-폴란드-스코틀랜드-푸에르토리코-노르웨이계 순이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미국 이민 역사가 가장 빠른 중국이 385만명이며 대한민국은 불법체류자를 제외하고 160만명으로 전체의 0.4%를 차지했다.

특정 인종 가운데 가장 괄목할만한 추세는 라틴계의 급증이다. 20여년전만해도 흑인과 비율이 비슷했지만 이후 5%P 차이로 앞섰으며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반면 아시아계는 한국-중국-일본-필리핀-태국-베트남-라오스-인도네시아-몽고를 모조리 더해도 전체 6% 미만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 이후 아시아 혐오 범죄가 늘어나는 와중에 숫자 싸움에서는 아직 미미한 현실이다.

봉화식은 남가주대(USC)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88년부터 중앙일보 본사와 LA지사에서 근무했다. 기자 생활의 절반씩을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보냈다. 주로 사회부와 스포츠부에서 근무했으며 2020 미국 대선-총선을 담당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영 김-미셸 박 스틸 연방 하원의원 등 두 한인 여성 정치인의 탄생 현장을 취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