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내는 조각가 김영궁

2022-04-10     심정택 칼럼니스트

경기도 안양 인덕원 인근 의왕시 학의동 작업실을 방문하기 전 김영궁 작가는 ‘지난 인터뷰(2020년 7월) 이후 작품을 많이 못했다’고 알려왔으나 ‘집’ 연작에 몰두하고 있었고, 아트리움(atrium)이 보여지는 작품을 구현해 내었고, 목조입상(木造立像)에 아크릴 페인팅을 입힌 작품도 실험중이었다.

집 연작, 바람이 분다 2022년 / 사진제공 = 김영궁 

1998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 때 발표한 평면 중심의 공간에 입체적으로 흩어놓은 설치작품 같은 <생명력>의 무릎 높이 오브제는 사람 키를 넘는 볼륨으로 확장되어 있었다.   

생명력. 1998년. 가변크기 / 사진 제공 = 김영궁

거친 질감의 대형 작품 위주로 발표한 첫 개인전을 가진 다음 해인 1999년, 자작나무 집성(集成) 합판 재료를 만났다. 재료와 맞부딪쳐야하는 조각가에게 집성 합판은 새로운 길이었다. 얕게 켠 합판을 마치 반도체의 집적도를 높이기 위해 쌓는 3차원 구조의 건축적인 스택(stack) 방식으로 이어 붙여 확장하며 형태를 만들었다. 나무 물성이 갖는 내부 공간(solid)과 형태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게 가능해 보였다. 그랬기에 2002년 두 번째 개인전 이후,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그는 작업을 떠날 수가 없었다.  

조각의 물성 자체에서 오는 무게를 이기는 방법을 연구하는 중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목조불상(木造佛像)의 속이 비었다는 데서 영감을 얻었다. 이후 작품들은 대개 보이드(void) 방식을 취한다. 건축적으로는 건물에 평면 바닥에서 위로 음각한듯한 작은 아트리움(atrium)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그는 이 아트리움이 보여지는 작품을 ‘많이 못했다는 기간’에 작업을 했다. 

관계1. 2022년 / 사진제공 = 김영궁

집성 합판은 적층(積層)에서 오는 형태미 구현이 가능한데, 원목이 갖지 못하는 장점이다. 김영궁은 최근, 부조(浮彫)로 보이는 전체적으로는 밋밋하지만 레이어가 있는 미세한 높이가 드러나는, 흐르는 원(fluid form)의 형태, 촉감조차도 그러한 곡면에 평면의 자개를 덧붙이는 작업을 한다. 이 작업은 점, 선, 면, 입체, 공간 개념의 모든 요소 및 상관 관계가 집합되어 있다.

관계1 –부분 이미지 / 사진 제공 = 김영궁

그에게 집은 30대초까지도 부모님과 같이 살았던 그리움의 모체이다. 부친은 충청도 공주에서 서울로 이사 후 집을 지어 파는 소위 집장사를 하셨다. 마지막 직접 지은 집에 들어가 정착한 곳이 서울 관악구 봉천동(奉天洞)이다. 지명은 험하고 높은 관악산을 마치 ‘하늘을 받드는’(奉天)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필자에겐 이 곳에 대한 추억이 있다. 숭실대에서 서울대입구역 방향의 봉천 고갯길을 살피재라고 부른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던 어느 해, 이 고갯길을 걸어 올라간 적이 있다. 

집으로 향한 길은 홀로가기도 누군가와 동행하기도 한다. 그 집이 어디 있든. 그 집 앞에서 돌아나오기도 한다.  

김영궁에게 집은 정신이 쉬는 곳이기도 하다. 정신의 집은 육신이기도 하다. 작가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집을 떠나 소위 작업장 생활을 오래했다. 컨테이너로 지어진 작업장은 집이 아니다. ‘집에 간다’는 것은 여행의 종료를 말한다. 여행은 자신의 집을 떠나 낯선 곳, 익숙하지 않은 공간을 체험하는 것이다. '집에 들어섬'은 부유하고 방황하던 정신이 발을 딛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 안온한 장소에 당도함을 말한다.       

집 연작 - 그리움 2022년 / 사진제공 = 김영궁

‘집으로 오라’는 것은 초대한 이를 최고로 환대하겠다는 뜻이다. 현대인들은 부동산은 가지고 있고 광적으로 집착하나 거주해야 될, 살아있는 동안 육신과 영혼이 쉴 집을 갖지 못한다. 

집이라는 실체와 상징은 평면으로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다. 누가봐도 시공간적으로 집일 수 밖에 없는 작품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한 집은 하우스(house)가 아니라 홈(home)이다. 홈 중에서도 스위트홈이다. 조각가 출신의 부인이 운영하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의 미술학원에서도 ‘스위트홈’이라는 주제로 아이들의 작품으로 전시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스위트홈은 집이라는 상징이 갖추지 못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결핍이 채워진 현실에 발을 디딘 유토피아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복합적인 의미의 집을 생각하면서 집 작품을 만들었다. 집은 작가 내면의 또 다른 자아이다. 김영궁이 생명, 자연을 주제로 유기적(有機的) 작업을 하면서 직선 형태를 가미하기 시작한 게 집이다. 집의 형태를 나타내는 데는 도식적으로 직선이 필요했다. 집은 평지붕으로는 상징이 드러나지 않는다. 박공(∧) 모양의 지붕 형태로 조금은 과장되고 정형화되어 있다. 집이라는 사고의 중심에 자리잡고 계셨던 부친은 지난해 세상을 떠나셨다.

얼굴-부분과 전체 자작나무, 90x80x115cm, 2019년 / 사진제공 =김영궁

두상 작품 <얼굴-부분과 전체>에서 보듯 모델은 자기 자신과 사회적 인간 관계이다. 인간 관계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을 수도 있다. 작업의 주제로 천착하는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 전체와 전체 간의 유기적 '관계'가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언젠가부터 모발이 자라지 않는 그 머리에 끊어낼 수 없는 온갖 유기적 인간 관계가 들러붙어 있는 것처럼 형상화했다.   

욕망하는 인간 2020년 / 사진제공 = 김영궁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실내에 놓이는 크기와 재료를 고려해 제작되지만 야외에도 놓이는 대형 크기에 대한 저항은 없다.  

야외 대형 조형물을 만들던 시절, 작품이 놓이게 될 특정 공간의 주변 환경 분석을 하곤했다. 모형을 만들어 주변의 주요 건축물들과 잘 관계맺을 수 있는지, 심지어 건축물과 건축물, 조형물과 건축물간 거리 간격의 단차들도 고려하였다.   

작품이 놓일 장소 주변 집이나 일터를 다니는 사람들의 활동이나 삶의 방식에서 맥락을 찾고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했다. 건축의 맥락주의, 공공미술가들이 염두에 두는 장소성을 작업의 첫째 조건으로 꼽는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4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