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작가 박춘숙의 영혼, ‘보리와 억새’- (하)

2022-03-27     심정택 칼럼니스트
광주백토+양구백토, 천목유 구릿가루와 금가루 보리음각 달항아리 / 보정 = 신경섭 사진작가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의 대가 켄 로치(Ken Loach, 1936~ )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은 700여년 아일랜드를 지배한 영국이 제국주의 침략의 원흉이라고 폭로한다. 보리밭은 약자들의 침투 통로이며 은폐(camouflage)를 위한 보호 구역이다.

광주백토+양구백토, 천목유+구릿가루+사파이어 가루 그라데이션 보리음각 달항아리 40kg(건조중) / 보정 = 신경섭 사진 작가

“난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거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성장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에 나오는 문장이다. 호밀(rye)은 보리(barley)와 밀(wheat)을 교배한 품종으로 겉 모양은 보리와 다름없다. 호밀밭은 자유와 평화를 상징한다. 지킴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Wheat Field with Crows)은 그가 자살하기 직전인 1890년 7월 파리 근교 오베르에서 그려졌다. 이 작품 속 들판, 너무 익어버린 밀은 더 이상 부드럽게 살랑거리지 않고 맹렬하게 이글거리는 화염처럼 요동친다. 반고흐에게 밀밭은 환경이자 풍경이었으며 연극이 끝남을 알리는 무대 막과 같다. 

보리(barley), 밀(wheat), 호밀(rye)은 서양 문화 전반에 상당히 중요한 소재이다. 동서 공통의 기호(signage)이기도 하다. 수년전 잠시 뉴욕 첼시 화랑가에 선보였던 박춘숙의 작품들이 소리 소문 없이 팔려나갈 수 있었던 문화적 배경이기도 하다.

박춘숙의 보리와 억새는 디지털 시대에도 일정한 범위의 미학적 공간을 담보한다. 최첨단 곡면 디지털 디스플레이에 펼쳐질만한 이미지를 상상해 보라. 남서해안 섬의 보리밭, 산간 능선에 펼쳐진 억새 군락지가 펼쳐 보인다. 무게와 부피를 가진 도자기의 겉 표면은 균일한 물질을 가진 입체이며 캔버스이다. 캔버스는 실제 공간을 보여주기 위한 가상의 틀이지 않나. 

박춘숙은 이 캔버스에 보리와 억새를 도각하고, 수개월씩 말리며 유약을 바르고, 바람의 흐름이 좋은 5월이나 9월, 가마에 넣는다. 재벌 후 3벌을 더 굽는다. 밤하늘 아래 보리알이 반짝이기도 하고 듬성듬성 은하수 빛을 뛰는 신비의 세계가 펼쳐진다.

도자기는 자연의 빛 반사로 드러난 형태, 무게감, 부피와 그 작품이 놓인 공간의 아우라와 합쳐진다. 도자기는 구조 및 재료와 결합하여 효과가 증폭되었기에 회화적이며 건축적이기도 하다. 

박춘숙은 '세계 도자기엑스포 1998 경기도' 특별 자문위원장을 맡은 이후 ‘관요(官窯) 부활’론을 강하게 주장한다. 임창열 경기도 지사가 계획한 광주-여주-이천 세 축의 분사시스템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박춘숙은 엑스포 전후 조선 왕실의 전통인 백자에 도전하였다.  

광주왕실백자 청화 접시(실크로드) / 사진제공 = 박춘숙 작가

1998년 엑스포를 전후 당시 국내 대학 도예과는 도자 전문 석·박사 학위 과정이 전무하였고 족적없는 석·박사들이 교수직을 맡는 풍토였다. 박춘숙은 경기도의 예산 출연으로 이공계인 명지대 산업대학원 무기학과에 산학연 프로젝트를 설립, 광주왕실백자 청화 접시를 제작했다. 대중화(수출)를 고려, 양산 가능한 전사(轉寫) 방법을 도입하였고 ‘실크로드’라는 브랜드까지 붙였다. 청와대가 국내외 귀빈들에게 증정했던 문화상품이기도 했다.  

한반도는 오랜 전통의 관요가 있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설치 운영되었다. 관요 조직은 감관을 비롯하여 경영의 실무를 담당하는 이와 실제 제조를 하는 사기장, 사기 번조(燔造)를 위한 잡역으로 나뉘어 철저히 분업화되어 제조·운영되었다. 

지금의 상업주의 체제에서는 고려의 청자나 조선의 백자 같은 도자기 황금 시대의 걸작이 나올 수 없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도 사요(私窯)에서는 최고의 작품이 나온 적이 없다. 그가 주장하는 관요는 협동조합의 정신을 필요로 한다. 한국 도자기는 외부 요인보다는 자체 붕괴했다고 본다.

다른 작가들과의 분업화가 되어 있기에 혁신이 가능하다고 본다. 현대판 창작스튜디오인 관요는 반드시 흙이 나는 곳에 만들어질 필요는 없다. 물류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기에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곳이면 어디든 가능하다.

사진제공 = 박춘숙 작가 

관요 시스템 도입은 조선 백자 부활과도 관련된다. 흙은 썩지 않는다. 경기도 이천 만권당은 임창열 경기 지사가 세계 도자기 엑스포를 준비하면서 만들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 일본 지질학자들이 조사 연구한 지역별, 등고선별 흙 성분이 표기된 일본어 책들이 있다. 이 자료를 근거로 당대 흙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외부의 빛을 반사하지 않고 흡수해 특유의 은은한 자태를 드러내는 백자와 청자에 필수적인 도토와 청자토는 전북 지역에 많으며 유약의 숨은 원료인 칼리장석은 전남 순천 지역에서만 나는 것으로 알려진다. 

장작 가마, 물레 등의 방식이 정통이라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발로 물레를 돌리는 행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달항아리는 대부분 상반과 하반을 붙여서 작업한다. 단 한 번의 물레질로는 형태가 무너져 내린다. 기술이 부족하여 등장한 형태미를 문화로 오도하면 안 된다. 

박춘숙은 천연 재유 작가이다. 도예가가 마지막 가는 길이 재유이다. 옥수숫대, 볏짚과 각종 나무를 태운 잿가루로 만든 천연 재료를 직접 만들어 작업한다. 모든 잿가루를 거르는 채의 목수의 종류만 6가지이다.  

국내에서는 자연 흙을 구하기가 힘들다. 일본 도자기 성지인 사가현(佐賀縣) 아리타(有田)에서는 제주 옹기토 등 한국 흙을 구할 수 있다. 업계 종사자들이 제주 흙을 파서 재료로 일본에 공급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사진 제공 = 박춘숙 작가 

도자기 작가들은 대체로 미술의 타 장르보다 은퇴 시기가 빠르다. 흙과 불을 다루는 예술이기에 고되다. 인간은 유한적 존재이고 죽음 앞에 평등하다. 비록 그녀의 나이 이제 60대 중반이나 스승없이 사숙(私淑)하여 경지에 이른 작가의 임무를 마칠 준비를 한다. 삶에 겸손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작품이 거주할 공간(shelter)을 찾는 일은 작품으로 역사를 쓰는 컬렉터의 몫이다. 아카이브로 남은 그 역사를 해설하는 이는 후세의 미술사가이다. 

뉴질랜드 출생의 여성 감독인 제인 캠피언(Jane Campion)의 영화 <여인의 초상>( The Portrait of a Lady)에서 주인공 이자벨은 극심한 혼란과 상처를 안고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돌아온다. 이자벨을 말없이 사랑해온 사촌 랠프는 죽음의 문턱에서 말한다. 

“깊은 고통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이유없는 고통은 없으며 네가 겪은 아픔도 슬픔도 널 해치진 못한다”

고통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무감각해질 뿐이다. 특별한 상황과 시간대에서 공감을 얻은 개인의 고통은 카타르시스가 되기도 한다. 뒤늦게 만나 교류하는 전주 성심여중 후배들이 선배 박춘숙에게 바치는 오마주는 역설적이다. 

“언니의 고난, 영광, 주홍글씨, 노동, 고달픔은 우리에게 위안이었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4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