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격리자 사전투표 해봤더니...건물 밖 장시간 대기시켜

투표용지 미리 배부하겠다고 했다가, 투표소에서 배부 중앙선관위 "불편 송구하지만, 부정 소지 없다"

2022-03-06     전혁수 기자
사전투표 둘째 날인 5일 오후 경기 고양시 덕양구 삼송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코로나 확진·격리자들이 사전투표를 위해 건물 밖에 줄서 대기하고 있다.  (사진=전혁수 기자)

20대 대선 사전투표율이 36.93%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지만, 코로나19 확진·격리자에 대한 투표 관리 부실로 선거 막판 논란의 '불씨'를 안겼다.

코로나 확진·격리자로 사전 투표를 해보니, 준비 부족으로 인한 투표 관리의 허점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

5일 오후 5시 40분 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삼송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를 찾았다. 정부는 코로나 확진·격리자의 20대 대선 참정권 보장을 위해 사전투표 둘째날인 5일 오후 5시부터 코로나 확진·격리자의 임시 외출을 허용했다. 오후 6시 전에 도착, 사전투표사무원의 안내에 따라 별도 마련된 기표소에서 투표를 하도록 했다. 코로나 확진·격리자의 경우 본 투표일엔 일반 시민들 투표권 행사가 끝난 오후 6시부터 오후 7시30분까지 투표를 할 수 있다.

투표소에 도착해보니 아픈 몸을 이끌고 나온 코로나 확진·격리자들이 건물 밖에 길게 늘어서 줄을 서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나온 젊은 부부도 있었고, 노인도 적지 않았다. 줄이 줄어드는 속도는 매우 느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수도권의 한 지역에서는 기다리다 쓰러진 확진자가 나오기도 했다. 

오후 6시가 되자, 선거사무원이 '번호표'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오후 6시까지 도착한 시민들에 한해서만 투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뒤에서 4번째에 서 있었는데, 97번 번호표를 받았다. 적어도 101명이 투표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거사무원들은 코로나19 확진자 투표 의향서와 신분증을 걷었다. 신분증을 걷을 때 마스크를 잠시 벗고 사진과 얼굴 대조로 본인 확인이 이뤄졌다. 신분증을 받아가 투표용지 인쇄기에서 투표용지를 출력해 다시 전달해주겠다고 했다. 선거사무원은 "일반인과 확진자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선관위의 요청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100여명의 인원은 50분여를 밖에서 추가 대기해야 했다. 일부 인쇄된 투표용지를 들고 나온 선거사무원이 먼저 출력된 투표용지를 나눠주며 이름을 호명하는 과정에서 항의가 터져나왔다. 장시간 추위에 떨며 대기했음에도 줄의 순서와 관계 없이 무작위로 투표용지를 뽑아왔기 때문이었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삼송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5일 오후 코로나 확진·격리자들에게 미리 투표용지를 교부하겠다며 걷어간 신분증을 선거사무원들이 이름을 불러 나눠주고 있다. 정작 투표용지 교부는 투표소 내에서 이뤄졌다.  (사진=전혁수 기자)  

"책임자 나오라고 해" "이럴 거면 줄은 왜 섰느냐" "대기라도 건물 안에서 하게 하든가 해야지, 이게 뭐하는 짓이냐"  

흥분한 일부 시민들은 선거사무원들을 향해 육두문자 섞인 말까지 쏟아냈다. 결국 오후 6시 50분경 선거사무원은 주민센터 1층에서 대기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오후 6시 55분, 선거사무원은 3층으로 올라가달라고 했다. 시민들은 계단을 통해 3층 투표장으로 올라갔다. 질서를 통제하는 사람은 없었다. 3층에 올라가자 덕양구 주민과 타지역(관외) 주민으로 나눠 두 줄을 세웠다. 

투표용지를 출력한다며 걷어간 신분증은 이름을 호명하면서 돌려줬다. 신분증을 돌려받은 확진·격리자들은 투표장에 입장해 신분증을 제출하고 투표용지를 받았다. 이후엔 일반적으로 투표하는 방식대로 진행됐다. 신분증을 걷어 투표용지를 뽑아서 대기중에 미리 배부한다고 했는데, 그 절차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이다. 사전에 신분증을 걷어갈 이유가 없었다.

결국 오후 7시 20분, 사전투표장에 도착한지 1시간 40분이 돼서야 사전투표를 마치고 주민센터를 나설 수 있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코로나 확진·격리자로 투표를 마친 일부 시민이 선거사무원에게 계속 항의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다행히 기자가 투표한 투표소에선 기표한 투표용지를 직접 투표함에 넣었지만, 다른 투표소에선 투표사무원이 기표된 투표용지를 받아 대신 투표함에 넣는 식으로 진행되면서 혼란이 발생했다. 일부 투표소에선 확진·격리자의 기표된 투표용지를 종이 봉투, 쇼핑백, 플라스틱 바구니, 소쿠리 등에 임의로 담아 전달하며서 투표 관리의 허술함을 드러냈다.   

중앙선관위는 6일 입장문을 통해 "전날 실시된 코로나19 확진 선거인의 사전투표에 불편을 드려 매우 안타깝고 송구하다"면서 "임시 기표소 투표 방법은 법과 규정에 따른 것이며, 모든 과정에 정당 추천 참관인의 참관을 보장해 절대 부정의 소지는 없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사전 투표일에) 드러난 문제점을 파악하고 면밀히 검토해 선거일에는 국민이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