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영향 분석] 安지지자 李쪽 이동 많지만 부동층은 尹쪽 쏠림 경향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최종적 영향은 미지수 이재명 측, 위기의식 자극 표결집 효과 노릴 듯 윤석열 측, '압도적 정권교체' 강조 기세 올릴 듯
1. 안철수, 절호의 '단일화 타이밍' 놓쳤지만 실리 선택
앞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김동연 새로운 물결 후보가 단일화를 이뤘고, 사전투표일을 하루 앞두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전격적으로 단일화에 합의했다. 이번 대선의 마지막 남은 변수가 해소되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크게 봐서 양 진영의 대결로 귀결되었다.
사실 안철수 후보는 한 때 대선판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1월 중순, 정권교체를 바라지만 윤석열 후보에게는 실망한 유권자들이 안 후보지지로 옮겨오면서 다자대결시 안 후보의 지지율이 17% 정점에 이르렀다.(한국갤럽 기준) 그 때 선제적으로 단일화를 제안했다면, 윤석열이냐 안철수냐 하는 질문이 설 연휴기간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화제를 지배했을 것이고, 안 후보는 상당기간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을 것이며, 지지율이 20%대에 머물고 있던 윤석열 후보 측은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지율 상승에 고무된 안 후보 측은 ‘단일화는 안일화’뿐이라 선언했다. 아마도 독자 힘으로 지지율을 20% 위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듯하다. 윤 후보 선대위가 전열을 재정비하면서 윤 후보는 반등했고, 안 후보 지지율은 하락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절호의 기회를 앗아갔다. 이미 지지율이 꺾인 2월 들어 단일화를 제안했지만 그 이전 같은 힘을 발휘하기는 어려워졌다.
좋은 기회를 놓쳤지만 그래도 안철수 후보의 선택은 합리적이다. 그가 옳은 선택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선택을 했다는 의미다. 현재의 지지율과 최종 득표 가능성 을 감안할 때 독자 완주의 전망이 녹녹치 않았다. 양 강의 대치가 팽팽할수록 사표방지심리가 작동하고 제3후보의 득표율은 떨어진다. 최근의 여론조사 지지율로는 두 자리 수 득표를 자신할 수 없었고, 그렇게 선거가 마무리될 경우 선거자금 보전도 받기 어려워 질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얻을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인간은 종종 다른 변수의 영향을 받아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 아마도 이준석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일각에서 나오는 자극적인 발언이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고, 합리적 선택을 가로막았던 듯하다.
윤·안 단일화가 주춤했을 때 이재명 후보가 안 후보에게 적극적으로 구애의 손짓을 했다. 안 후보 측도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몸값을 높이기 위한 제스처였을지 모르나 애초에 불가능한 방안이었다. 안 후보 입장에서는 이 후보와의 단일화는 명분과 실리가 모두 없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안 후보는 출마선언 이래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정권교체를 주장했는데 여당후보와 손을 잡는 것은 이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다. 명분이 없다. 안 후보가 이 후보와 손을 잡으면 더 많은 것을 약속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승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그 약속은 무의미하다. 실리가 아닌 것이다.
2. 이재명 측, 위기의식 자극 표결집 효과 노릴 듯
윤석열 측, '압도적 정권교체' 강조 기세 올릴 듯
윤·안 단일화가 발표되자 민주당은 적지 않이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선거대책위원회를 24시간 비상체제로 전환해 총력 대응에 나서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일화에 대한 비판도 함께 나왔다. 우상호 민주당 총괄선대본부장은 아침 선대본 회의에서 두 후보의 단일화를 ‘자리 나눠먹기형 야합’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지난 며칠간 안철수 후보에게 통합정부 운영을 제안하면서 이재명-안철수 단일화에 공을 들이던 것은 민주당이었다. 민주당발 단일화 비판이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일컬어지는 윤건영 의원은 “2002년에 정몽준 후보가 단일화를 철회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후보에게 부정적일 것이라고 했는데 오히려 지지층 결집 또는 중도층의 변화를 이끌어냈던 적이 있다"며 "어떤 것이 더 유리하다, 어느 쪽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긴 아직 이르고, (중략) 민심이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며 지지층 결집에 기대를 걸었다.(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윤후덕 선대위 정책본부장은 “국민들의 집단지성이 판단하시리라고 그렇게 생각을 한다. 저희는 국민만 믿고 또 끝까지 간다"며 지지를 호소했다.(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민주당의 반응을 요약하면, 일단 충격을 받았고, 한편으로 단일화의 정당성을 깎아내리고, 다른 한편 민주당 및 이재명 후보 지지자들의 위기의식을 자극해 단일화가 역작용을 낳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실제로 윤·안 단일화가 최종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단일화의 영향을 따질 때 우선 참고할 것은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움직임이다. 중앙일보가 의뢰한 엠브레인리퍼블릭 조사(2/28~3/2)에서 단일화 이전 안 후보의 지지층 가운데 이 후보 지지로 옮겨간 비율이 31.2%로, 윤 후보 지지로 옮겨간 응답자(29.2%)보다 2%p 많았다. 8.5%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의뢰한 한국갤럽 조사에서(3/1~2) 안 후보를 포함한 4자대결과 안 후보를 뺀 3자 대결을 조사해 비교한 결과 3자대결시 안 후보 지지자가 윤 후보로 26.8%만이 이동한 데 비해 이 후보로 이동한 비율은 36.9%로 10.1%p 많았다. 1주 전에는 반대로 윤 후보로 이동한 비율이 17.0%p 많았다.
두 조사에 따르면 단일화 효과가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한국갤럽조사에서는 심지어 4자대결시 이재명 39.2%, 윤석열 40.6%인데, 3자대결시에는 이재명 42.2%, 윤석열 42.5%로 나타나 두 후보의 차이가 1.4%p에서 0.3%p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아마도 윤 후보와 안 후보 간 단일화 결렬 소식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엠브레인리퍼블릭에서는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이 있다. 단일화할 경우 기타후보 지지층 가운데 41.1%가 윤 후보로 이동하지만, 이 후보로 이동하는 유권자들은 10.0%에 불과했다. ‘지지후보 없음/모름’에선 19.3%가 윤 후보로, 14.0%는 이 후보로 선회했다. 이 조사결과는 단일화는 안 후보 지지층이 이동하는 것보다 기타후보 지지층이나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이 윤 후보로 쏠리게 하는 효과가 더 크다는 의미다. 종합적으로 다자대결일 때는 윤석열 43.7%, 이재명 40.4%로 3.3%p의 차이를 보이지만 단일화 이후에는 윤석열 47.4%, 이재명 41.5%로 두 후보의 격차가 5.9%p로 커진다. 엠브레인리퍼블릭 조사가 한국갤럽조사와 차이를 보이는 것은 전자가 ‘단일화할 경우’란 조건을 붙였는데 비해 한국갤럽 조사는 붙이지 않은 것에 일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단일화가 대선 결과에 최종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단일화를 양 후보 진영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 여부에 달려있다. 민주당은 앞서 살펴본 반응처럼 한편으로는 단일화를 계속 공격하겠지만 지지자들에게 선거에 질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자극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내는데 주력할 것이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압도적 정권교체를 외칠 것이다. 위기의식을 자극하는 전략과 사기를 높이는 전략이 맞서는 셈이다. 어느 쪽 전략이 더 효과를 거둘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사전투표가 시작된 마당에 부유하는 중도층을 더 잡으려 노력하는 것보다 양쪽의 지지자들을 더 많이 투표하게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양쪽이 각각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다.
3. 유권자 피곤한 '단일화 쇼' 없애려면 결선투표제 도입해야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나라에서 결선투표제는 집권세력의 정당성을 강화해 정치 안정을 이룩하는데 매우 결정적이다. 프랑스는 1962년 개헌을 통해 결선투표제를 도입했다. 프랑스에는 여러 정당이 있고, 매번 후보가 난립하지만 결선투표제를 통해 과반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을 선출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987년 개헌 당시 결선투표제를 도입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양김의 분열을 계산에 넣었던 당시 군부세력의 집요한 노력과 승리를 자신한 양김의 안이한 판단으로 결선투표제 도입에 실패했고, 이는 두고두고 한국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질곡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당장 87년 선거에서 양김의 분열로 민주진영은 대선에서 패배했다. 그 이후부터 대선 때만 되면 후보단일화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97년 DJP연합으로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효과로 선거결과를 뒤집으면서 단일화의 유혹은 더 커졌다. 진보진영의 후보는 민주당 계열의 정당으로부터 매번 단일화 또는 사퇴 압박에 시달렸다. 유권자들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를 찍는 것으로 충분해야 하건만 대선 때면 소위 전략적 투표를 강요받았다.
한국정치에서 단일화쇼는 이번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현행 대통령제의 틀이 유지된다면 하루 빨리 결선투표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아울러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도 결선투표제를 적용해야 한다. 유권자들은 아무 다른 고려 없이 자신의 기준에 따라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에게 표를 줄 권리를 가져야 한다.
윤석규는 서울대 인문대를 졸업하고 YMCA 경실련 등에 몸담아오다 DJ정부에서 청와대 시민사회국장을 지냈다. 2002년 노무현 캠프의 상황실장을 맡아 노무현 대선 전략의 밑그림을 그린 ‘정치전략통’이다. SNS 등에서 합리적 진보 논객으로 활동 중인 그는 날카로운 정치 분석으로 정평이 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