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헤테로토피아, 목포’ 그리는 작가 김건국

2022-02-27     심정택 칼럼니스트
삼학도 겨울노을1 90.9× 60.5 acrylic on canvas 2021 / 사진 제공 = 김건국 

목포에서 만난 김건국 작가, 40여년간 열망을 놓지 않았기에 화업에 정진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배운, 특히 구상에 열심이었던 교육자들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은 전신이 사범대였기에 미술 교육 교과 과정으로서 구상(具象)이 강했다.   

그는 육군 학사장교(기갑)로 임관, 전방 부대 복무 중에도 스케치를 놓지 않았다. 동계 야외 훈련장 휴식시간, 탱크 포탑에 앉아 훈련장 주변 엄동(嚴冬)의 풍경을 그렸다. 전역 후 서울에서 미술고 실기 교사를 하며 학생들에게 소묘의 다양성을 가르치면서 재료의 다변화를 꽤하였다. 지난 2월 11일 전남 무안 전남교육청 전시장 작품 관람 후 그의 작업실에 들러서 본 작품은, 붓펜으로 그린 스케치이지만 마치 목탄으로 그린 듯 명암과 구도가 선명했다. 

그는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중반까지 고지대인 서울의 금호동에 거주하면서 한편으로는 쇠락해가고 또 한편에서는 대형 아파트가 들어서는 중첩된 풍경을, 한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도시·자연의 변화무쌍함과 함께 담아내곤 했다. 

도시-상황 162.3× 130 oil on canvas 1989 / 사진 제공 = 김건국 

하루 10시간이 넘는 입시 위주의 강의는 너무 고달픈 일이었다. 작업할 시간이 절대 부족했다. 고향 목포는 안정적인 직장을 마련하고 그를 불렀다.  

그의 풍경은 30여년이 지나 목포라는 도시를 그린다. 전시 타이틀 <백걸음의 여행 - 목포 프롤로그>는 그가 최근에 마련한 목포시 유달로 101번 길의 작업실 오르는 계단을 상징한다. 교사 정년을 앞두고 작업실을 마련한 기쁨과, 자신만의 창조 공간에서 잉태한 작품들로 전시회를 갖는 감회를 표현했다.  

작품들의 선명한 구도는 대상(對象)을, 공간과 장소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주 등장하는 가로등, 나무, 전봇대는 반고흐의 키 큰 상록수 사이프러스처럼 화폭에서 수직적 선과 비례를 나타내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

삼학도 겨울노을2 90.9×60.5 acrylic on canvas 2021 / 사진 제공 =김건국

회화다운 회화는 붓터치 자욱의 선명함이 있는 날것 그대로를 기본으로 한다. 19세기 사진의 발명 이전 회화의 본래적 기능이었던 재현(representation) 목적과는 분명 다르다. 사실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 사실 그대로를 써서는 안되듯이 말이다. 그의 작품이 몽환적인 동양화 느낌이 나는 것은, 다색 적층(多色 積層), 색과 색이 겹치면서 오는 레이어에서 오는 아우라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하늘을 덜어내고, 도로가 이어지는 산동네인 온금동, 평지인 대성동, 이로동 등으로 바뀐다. 그의 하늘은 노을과 노을 진 후의 두 가지 배경으로 구분된다. 그는 하루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목포에서 낚시꾼이 물 때를 알 듯이 그날 그날의 노을의 변화를 걸으면서, 운전하면서 느끼고 관찰한다. 어느 곳이든 도시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나 그의 그림에는 사람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 

이로동 둘레길 60.6×90.9 acrylic on canvas 2021 / 사진 제공 = 김건국

미국 가수 돈 맥클린(Don McLean·1945 ~ )이 부른 ‘빈센트’(Vincent·1972)는 이런 해넘이가 오기 전 ‘보랏빛 아지랑이로 소용돌이치는 구름’(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을 노래했다. 목포는 매일 매일 노을을 예고하는 구름이 산등성이와 해안가를 덮는다.  

김건국 작가의 부모는 목포에서 배로 한 시간여 걸리는 비금도 출신이다. 부모님은 뭍으로 나와 고개 마루 동네에서 쌀 가게를 했다. 어린 시절 작가는 북항쪽 바다를 조망하며 살았다. 밤이면 종종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가 되어 보기도 했다.

산정동 겨울밤 90.9×90.9 acrylic on canvas 2018 / 사진 제공 =김건국 

작품 제목에 자주 등장하는 ‘분분하다’는 표현을 물어 보았다. 꽃이 필 때 또는 피고 난 뒤 꽃이파리가 흩어지면 작가의 마음도 흩어진다. 목포는 눈이 잦지 않다. 눈이 내리는 밤, 도로에 닿으면 녹아내리는 그 눈도 분분하다. 꽃이파리든 눈이든 화창할 때, 추울 때, 음산할 때 마음의 분분함은 더해진다. 

인간이 유한하다는 자각, 사람 사는 도시는 자연의 변화 속에서 허무할 수도 있는 순간의 찰나를 이미지로 그려낸다. 

그는 스스로 감동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붓질 한 번도 작가가 살아 온 경험과 감정이 묻어나온다. 그 찰나 조차도 오랜 시간대에 걸쳐 경험한 풍경의 반영이다. 작품으로 계절에 감응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가수 최백호는 노래한다. 

거리엔 어둠이 내리고
안갯 속에 가로등 하나
비라도 우울히 내려 버리면
내 마음은 갈 곳을 잃어(...)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인간은 끊임없이 움직여야하는 존재이기에 그의 화폭 속 겨울은 떠나 온 곳인지, 떠나갈 출발지인지 분명하지 않다. 대상과 모티프가 목포의 어디쯤이라는걸 짐작할 뿐이다. 

유달산 동구 겨울 표정 73×30 acrylic on canvas 2021 / 사진 제공 = 김건국

목적지든 출발지든 화폭 속 공간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1926~1984)가 말한 비일상(非日常)·한시적 유토피아인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s)이다. 실제 위치를 갖지만 모든 장소들의 바깥에 있는 곳이다.

‘구름에 달 가듯이’를 노래했던 시인이 지칭한 ‘남도’(南道)는 보편적으로 대상화되고 타자화 되었다. 작가에게 일상인 공간은 ‘눈 발이 날리는 곳’이기도 하다.

김건국은 근대를 간직하면서 현대화된 도시를 관통하는 동시대를 살면서 그의 정신은 자연과 조응하는 순간의 멈춰진 풍경을 그려낸다. 

작가는 목포를 가장 목포스럽게 그려내는걸 지향한다. 그가 교육받고 직장 생활한 서울, 문화적·경제적으로 밀접한 광주와는 다른 시간성과 장소성을 추구한다. 

일제강점기인 1942년 가수 이난영(1916~ 1965)이 불렀던 ‘목포는 항구다’는 목포를 규정해 버렸다. 당시에도 목포 출신의 가수에게는 타지에서 바라보는 ‘그리운 고향’일 뿐이었다. 그래서인가. 김건국의 그림에는 항구, 선창가, 바닷가가 잘 없다. 그는 ‘목포는 항구다’는 드라마를 깨뜨린 듯 보인다. 

온금동 연가 72.7×29 acrylic on canvas 2021 / 사진 제공 = 김건국

공간-존재의 한계를 위반하는 반공간, 헤테로토피아는 유토피아가 현실의 중력에 의해 끌어당겨졌을 때 드러나는 균열과 틈새를 직시하게 해준다. 그의 ‘미의식’은 ‘무엇을 유토피아라 하고 무엇을 헤테로토피아라고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의식이다.

한때 사각 모양과 줄무늬를 기계처럼 반복한 작품으로 유명한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1936~ )는 “보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 그 자체다” (What you see is what you see)고 말했다. 작가나 관객의 감정 및 경험을 반영하지 말자고 말한다. 

구상(具象)은 구상이다. 언어로 덧쓰워지기 전의 날것 그대로의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여전히 ‘목포는 항구다’가 맞다.

시간의 축선을 걸어가는 인간이라는 존재, 목포라는 내재적 도시와 그 공간의 일상을 살아가는 순간의 연속성은 작가에게 모티프를 제공한다. 

작가의 작업실은 내항(內港)을 바라보는 멋진 곳에 있으나 대형 회화 작품을 그려내거나 조각 등으로 장르를 확대할 전진 기지로는 좁아보였다.   

독일 뮌스터의 아제(Aasee) 주변에는 클래스 올덴버그(Claes Thure Oldenburg·1929 ~ )의 지름 3.5미터짜리 세 개의 구(球)로 구성된 작품 ‘Giganten Pool Balls’(1977년)이 자리잡고 있다. 올덴버그는 당시 뮌스터 도시 전체를 거대한 당구대처럼 상상하고 당구 게임을 실제로 진행하면서 거대한 구들을 그의 지시에 따라 조각 프로젝트가 열리는 기간 동안 장소로 이동설치하게 하였다. 

김건국은 숫자를 헤아리는 게 무의미한 당구 최고수이기도 하다. 그가 이루어나갈 예술적 성취가 내륙과 바다, 섬으로 어우러진 목포라는 당구대 공간에서 무한히 확장되어 펼쳐지기를 바란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4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