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회피 그리고 용서와 치유의 드라마- '드라이브 마이 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가 관객 6만명을 넘어 순항 중이다. 예술영화가 5만 명 이상을 넘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보아야 할 영화목록 리스트에 있었지만, 기회가 잘 닿지 않았다. 5만 명 관객 돌파 뉴스를 들으면서 지금이 영화를 볼 적기라고 생각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여자 없는 남자들> 중 동명의 에피소드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영화 초입부터 충격적이지만, 거의 3시간에 달하는 상영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영화는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으며 현실 외면은 깊은 상처와 죄책감을 가져오지만, 사람을 통해서 이 또한 치유됨을 말하고 있다.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잔잔하면서도 여운을 남긴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매력
<드라이브 마이 카>는 남자 주인공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어버릴까 무서워, 아내의 외도를 알면서도 묵인한다. 갑작스럽게 아내가 죽고, 가슴에 상처를 품고 살아간다. 그의 운전사 미사키(미우라 토우코)를 만나면서 서로의 아픔을 치유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 보면, 왜 이 영화가 많은 곳에서 작품상, 감독상과 함께 각본상을 받았는지 알게 된다. 소설의 주요 구성요소(주요 등장인물, 자동차 등)만을 가져왔고, 영화 내용은 원작과 사뭇 다르다. 영화의 주 배경도 동경에서 히로시마로 바꾸었다. 가후쿠의 아내, 오토(키리시마 레이타)의 소설 이야기, 그리고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연극 연습과 공연 장면 등은 원작에 없다. 이런 풍부한 내용이 영화를 다채롭게 만들었다. 특히, 오토를 사랑한 두 남자가 알고 있는 오토의 이야기 결말이 다르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바냐 아저씨> 소설 내용을 미리 알고 영화를 본다면,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더 많은 감동을 느끼면서 감상할 수 있을 것같다. 영화를 보고 소설 <드라이브 마이카>을 읽는다면, 영화와 비교하는 재미가 더 해질 수 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바냐 아저씨> 연극 대사가 또 한 명의 등장인물로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영화 속 상황과 분위기에 맞는 대사가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면, 마치 차 안에 3인이 타고 있는 느낌을 준다. 이 연극 대사는 가후쿠의 대사 암송을 위해 오토가 녹음 한 것이다. 어쨌든 가후쿠는 미사키와의 대화, 그리고 아내를 사랑했던 남자와의 솔직한 대화를 통해 아내를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된다. 또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영화 속 연극 공연 대사를 통해 본인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한다. 그는 일본 및 세계에서 주목받는 신예 감독이다.
빨간색 사브(SAAB) 자동차는 가후쿠와 오토, 가후쿠와 미사키를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가후쿠와 미사키와의 관계 변화도 차 안에서의 변화를 통해 포착된다. 가후쿠 좌석 이동(뒷좌석-> 앞좌석), 차내 금연에서 차내 허용 등. 사브 자동차는 차량 이동 수단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차량 위로 손을 내밀어 같이 담배를 피우는 섬세하고도 따뜻한 장면은 감독의 연출방식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국제공동제작 모범 사례
<드라이브 마이 카>는 국제공동제작의 바람직한 사례를 제시했다. 영화 속에서 <바냐 아저씨> 연극을 하는 배우들의 국적이 일본, 한국, 중국으로 달랐다. 배우들이 굳이 이렇게 다양한 국적일 필요가 없었는데도 그렇게 뽑았다. 영화에 참여한 한국인 배우도 3명이었다. 3명 중 연극배우로 두 명의 한국인이 참여했는데, 그중 한 명은 수어를 하는 역할이었다. 좀 파격적인 캐스팅이었다.
더군다나 일본어가 아니라 자신의 언어로 대사를 했다. 대사 전달이 너무도 중요한 연극에서 각국의 언어로 연기하고, 대사를 번역해 화면에 띄워서 보여주다니 정말 신선했다. 가끔 오페라 공연에서 외국어 대사를 번역해 보여주는 것은 보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일본어, 한글, 중국어, 심지어 영어(?)까지 있는 큰 자막이 있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
국제공동제작에 관해 논문을 쓴 나조차도 공동제작은 줄거리(콘텐츠) 상 필요가 있을 때 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을 했다. 그런데 이 연극에선 이런 필요성이 없었다. 모두 다 일본 사람으로 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여러 국가의 사람을 뽑아, 그들의 언어로 연기를 시켰다. 우려와 달리 영화 속 연극은 잘 끝났다. 내가 보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수어의 힘은 강력했다. 한마디로 평소에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뿐 아니라 국제공동제작이 꼭 유명한 감독이나, 배우가 아니어도 되고, 나아가 시각 효과 같은 기술적인 부문에서만 이루어질 필요가 없으며,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와의 협업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국제공동제작을 염두에 두고 있는 영화인들은 이 사례를 참고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여타 일본 영화처럼 뚜렷한 기승전결이 없지만, 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예측되는 결과가 무서워 현실을 회피하지 말고 마주하라는 것 같다. 무언가 새로운 영화를 찾고 있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다.
김주희는 뉴질랜드 와이카토(Waikato)대학에서 ‘영상과 미디어’를 전공한 예술학 박사이다. 뉴질랜드는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2000~2003) 시리즈와 <킹콩>(2005)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영화 제작 강국이다.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다. 여전히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한 채 유튜브 <영화와의 대화>를 운영하는 유튜버로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