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판 딜레마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나?' 질문 던져

'킹메이커'- 선거판 뒤에 가려진 스핀닥터의 비애 다뤄 부정한 방법에 대한 대응 수단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2022-02-06     김주희 영화칼럼니스트

여러 번의 연장 끝에 영화 <킹메이커>가 개봉했다. 공교롭게도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선거 자체보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거 참모, 엄창록에 방점을 찍고 있다. 드라마 장르의 형식을 취했지만, 다큐멘터리의 느낌이 많았다. 변성현 감독이 이름도 김운범(설경구)과 서창대(이선균)로 바꾸고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했지만, 몰입이 어려웠다. 영화적 재미보다는 현재 대선 국면에서도 깊이 생각해봤음직 하는 숙제를 던지고 있다는 데 의미를 둬야 할 것 같다.

출처:메가박스 플러스엠 

<킹메이커>는 선거의 귀재, 네거티브의 달인이라 불렸던 엄창록에 초점을 둔 영화다. 1961년 강원도 인제군 재보궐 선거부터 시작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엄창록과의 관계를 소재로 했다. 엄창록은 함경북도 출신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를 만나기 전 1954년부터 4번이나 선거에서 계속 졌다. 그러나 엄창록은 1961년 재보궐 선거부터, 1963년과 1967년 국회의원 선거, 1970년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승리를 이끌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이 영화가 던지는 화두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이다. 영화에서는 주로 1961년부터 1971년 대선까지의 선거 과정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특히 1967년 선거에서 박정희 정권이 관권과 금권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이용해 부정 선거를 하려 할 때, 서창대는 기발하지만, 때론 비열하고 치졸한 악의적인 선거 운동을 한다. 예를 들면, 상대방 민주공화당원으로 가장해 지역구 주민에게 선물을 주고 다시 뺏거나, 당원은 양담배를 피우면서 주민에게는 국산 담배를 권하는 식이었다. 서창대의 논리는 상대방이 권력을 동원해 악의적이고 적대적으로 나온다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선거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김운범은 그의 전략 덕분에 선거에서 이긴다. 

출처:메가박스 플러스엠

물론 서창대가 매번 편법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는 밑바닥(대의원) 표심을 훓는 조직적인 작전을 통해 승리를 가져온다. 그러나 대선을 앞에 두고 김운범과 서창대는 견해 차이를 보이고 결국에는 갈라선다. 대의 명분은 같았지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는 생각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메가박스 플러스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머리를 아프게 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단지 정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삶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상대방이 옳지 않은, 부정하고 부당한 방법을 쓸 때 우리에게 허용되는 옳지 못한 수단의 수위는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그것은 누가 결정하는가? 아니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옳지 못한 수단을 사용해서는 안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일정 부분의 답은 서창대가 왜 전면에 나서지 못했는지와도 관련 있다. 그가 필요하지만, 그를 전면에 내세우긴 꺼림직하기 때문이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영화 속 선거들과 현재 대통령 선거를 비교해 보자. 거의 6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상대방에 대한 흑색선전과 네거티브는 변하지 않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단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공간만 옮겨 갔을 뿐이다. 이번 선거는 경쟁이 격화되면서 이러한 양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또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 활용한 영호남 지역 갈등 조장의 결과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태다. 이런 전략이 김운범 캠프에서 쫓겨난 뒤 박정희 쪽을 돕게 된 엄창록의 아이디어였는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정치가 지역으로 국민을 갈라놓은 것은 사실이다. 요즘 선거에서는 세대 간, 성별 간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는 의도가 다분하다. 정치인의 선거판 노림수에 말려 부화뇌동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잘 따질 필요가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금권 선거는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김대중 자서전(1)에, 엄창록은 “선거 판세를 정확히 읽고 대중 심리를 꿰뚫는 능력을 지녔다. 무엇보다 조직의 명수”라고 기록되어 있다. 자서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엄창록의 부재를 매우 안타까워했다. 만약 엄창록이 계속 그의 진영에 남아 있었다면 선거 양상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 점에서 영화적 나래를 펴기 위해 변성현 감독은 김운범과 서창대 라는 이름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출처:메가박스 플러스엠

변성현 감독은 <킹메이커>에서 김운범과 서창대의 관계를 영화의 주요 동력으로 사용하려 했지만, 잘 작동되지 않았다. 그 둘 간에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의 두 주인공이 보여주었던 수 싸움은 없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서창대와 김운범이 마주 앉은 (상상의) 자리에서 알 수 있듯이, 둘 사이에선 서창대가 일방적으로 간절히 원했던 김운범의 인정과 신뢰가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관객은 마치 지난 역사를 박물관에서 관람하 듯 영화를 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에 의한 갈등과 분열 조장을 왜 적극적으로 차단해야 하는지를 이 시점에서 메시지로 던지고 있는 점은 수확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